LG만 보고 다른 투자 제안 물리쳤는데…발등의 불 왓챠 “새 투자자 유치 결정된 것 없다”
#불안한 OTT 시장, ‘뒷배’ 없는 왓챠
OTT업계에 따르면 왓챠는 최근 팬덤 플랫폼 ‘뮤빗’을 운영하는 음원 제작·유통업체 블렌딩 지분 51%를 오지큐에 매각했다. 왓챠는 2021년 음악 사업 진출을 목표로 블렌딩 지분을 매입했지만 2년 동안 이렇다 할 사업을 벌이지 못했다. 이번 지분 매각 가격은 약 80억 원으로 알려졌다. 한때 블렌딩 기업가치는 400억 원대로 언급되기도 했다. 왓챠의 자금 상황이 악화되면서 헐값에 정리했다는 평가다.
왓챠의 실적은 다른 OTT와 비교해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왓챠는 2019년부터 자본잠식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왓챠의 자본총액은 2019년 말 마이너스(-) 557억 원에서 2021년 말 -346억 원으로 점차 회복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지난해 말 -600억 원으로 다시금 악화됐다. 재무구조가 악화되는 원인으로는 지속되는 영업손실이 꼽힌다. 왓챠의 영업손실은 2019년 108억 원에서 꾸준히 늘어나 지난해에는 555억 원에 달했다. 왓챠의 지난해 매출은 733억 원으로 영업손실률이 75.7%에 이른다.
이는 OTT 시장의 근본적인 모순에 기인한다. 글로벌 1위 OTT인 넷플릭스가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해 자체 콘텐츠를 쏟아내고 있다. 국산 OTT 입장에서는 넷플릭스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콘텐츠 투자를 멈출 수 없다. 자체 콘텐츠가 곧 경쟁력이고, 구독자를 끌어 모을 수 있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금력은 물론 시청자 층을 놓고 보면 넷플릭스는 버거운 상대다.
소비자가 여러 OTT를 구독하는 이른바 ‘중복구독’도 한계가 있다. 국내 OTT 총 사용자는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화)을 계기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여기에 ‘누누티비’ 등 불법 서비스 등장에 따른 타격도 컸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티빙, 쿠팡플레이, 웨이브, 왓챠 등 국산 OTT의 5월 월간 활성 이용자(MAU)는 1410만 명이었다. 앞서 지난 3월 MAU는 1308만 명이었다. 언뜻 보면 두 달 사이 102만 명이 늘어난 듯 보이지만 OTT업계에서는 누누티비가 지난 4월 폐쇄된 영향이라고 분석한다. 즉, OTT업계는 그간 누누티비로 인해 적지 않은 피해를 입어왔던 것이다.
티빙과 웨이브 등은 합종연횡과 모기업의 자금, 콘텐츠 생산력을 바탕으로 생존하고 있다. 티빙은 CJ와 JTBC가 콘텐츠를 맡고, KT와 네이버도 연합했다. 웨이브는 지상파 3사(KBS·MBC·SBS)와 SK텔레콤이 함께한다. 왓챠만이 든든한 ‘뒷배’가 없는 것이다.
#악연으로 끝난 LG유플러스와 인연
왓챠에게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LG유플러스는 지난해 왓챠 인수를 시도했다. LG유플러스는 국내 IPTV 시장에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를 처음 들여왔으나 넷플릭스 독점 제공 기간은 종료됐고, 디즈니+는 생각만큼 사용자가 늘지 않고 있다. 또 통신 라이벌인 SK텔레콤과 KT가 각각 웨이브, 티빙과 손잡은 반면 LG유플러스는 국산 OTT 파트너가 없다. 통신망과 자금력을 지닌 LG유플러스가 왓챠와 결합하면 LG유플러스는 콘텐츠를, 왓챠는 자금력과 판로를 얻는 상생이 기대됐다.
그러나 LG유플러스의 왓챠 인수는 계약 성사 직전에 무산됐다. LG유플러스의 왓챠 인수 추진 과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LG유플러스와 LG그룹 모두 왓챠 인수를 포기한 배경에 대해 명확하게 입장을 내놓지 않으면서 왓챠 내부의 혼란이 가중됐다”고 귀띔했다.
왓챠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왓챠는 10개월 동안 LG유플러스와 협상하며 타 기업의 투자 제안을 물리쳤다. 그런데 자금이 씨가 마른 상황에서 LG유플러스가 발을 뺀 것이다. 여기에 LG유플러스가 자체 OTT 플랫폼 출시에 나설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왓챠 내부를 비롯한 스타트업 업계는 분노에 가까운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LG유플러스는 올해 초 최고콘텐츠전문가(CCO) 조직을 구성하고 스타 프로듀서(PD)를 영입해 자체 콘텐츠 제작에 나서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한 스타트업 임원은 “10개월 동안 왓챠를 실사하며 내부 사정을 속속 빼내고는 마지막 딜을 엎어 박태훈 왓챠 대표의 마음고생이 심하다”며 “LG유플러스가 OTT를 출시해도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내 한 콘텐츠 스타트업 대표는 “스타트업 경영자 입장에서는 투자금이 씨가 마른 시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왓챠 인수 무산과 스타트업 업계의 지적에 대해 LG유플러스 측은 특별한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왓챠는 새로운 투자자 유치에 나서고 있지만 복잡한 지분구조로 인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왓챠는 박태훈 대표가 지분 15%를 갖고 있지만 KDB산업은행,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컴퍼니케이파트너스, 카카오벤처스, 엘에스프라이빗에쿼티, 삼호인베스트먼트 등 수많은 업체도 왓챠 지분을 보유 중이다. OTT업계 한 관계자는 “각자 투자 유치 방안에 관한 계산이 달라 이제 와서 새 투자자를 확보한다 해도 의사결정이 빠르게 이뤄지긴 힘들다”고 말했다. 이에 왓챠는 블렌딩 지분 매각과 함께 ‘액면가 증자’까지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왓챠 관계자는 “다방면으로 검토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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