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합병으로 생긴 자사주 매입만 해도 경영권 승계 가능…“역합병은 경영 효율화 목적” 입장
(주)삼표는 지난 1일 자회사인 삼표산업으로 역흡수합병했다. 합병 비율은 (주)삼표와 삼표산업이 1.8742887 대 1로 결정됐다. 삼표가 2013년 골재, 레미콘 및 콘크리트 제조 부문을 삼표산업으로 물적 분할한 지 10년 만에 다시 한 회사가 됐다.
업계에서는 물적 분할했던 자회사와 다시 합병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자회사가 합병법인인 경우는 이례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역합병이 정대현 사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작업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주)삼표의 ‘대규모 기업집단 현황 공시’에 따르면 역합병 전 (주)삼표는 정도원 회장이 지분 65.99%를 보유하고 있었다. 정 회장의 아들 정대현 사장의 지분은 11.34%였다. 여기에 정 사장이 71.95% 지분을 보유 중인 ‘에스피네이처’가 삼표 지분 19.43%를 보유 중이다. 이 두 지분을 더하면 30.77%로 정 회장 지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정 사장 자력으로 경영권을 이어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번 역합병으로 오너 일가의 지분은 대폭 감소했다. 정도원 회장의 지분은 약 30.33%로 줄어들 전망이다. 정대현 사장도 약 5.21%로 축소된다. 그러나 (주)삼표가 보유 중인 삼표산업 주식이 자사주로 바뀐다. (주)삼표는 삼표산업 주식 1025만 351주를 보유하고 있었다. 지분율은 44.73%에 달한다. 정대현 사장이 자사주를 활용할 경우 아버지 정 회장의 도움 없이도 경영권 승계가 가능하다.
삼표그룹은 역합병 목적이 경영 승계 차원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삼표그룹 관계자는 “이번 역합병으로 최대주주의 변경은 없었으며, (주)삼표와 삼표산업 재무구조 개선과 경영 효율화가 목적”이라며 “(주)삼표는 물류사업만 하는 지주회사이고, 삼표산업은 레미콘·골재·몰탈 및 부동산 개발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회사다. (주)삼표가 수행하던 물류사업과 삼표산업의 레미콘·골재·몰탈 사업이 통합으로 인한 사업 시너지 효과와 조직·운영의 효율화를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합병 발표 직전 삼표산업이 유상증자를 진행했다는 점이 일각의 시각에 힘이 실리고 있다. 삼표산업은 지난 3월 9일 유상증자를 통해 600억 원 상당의 보통주 195만 주를 신주 발행했다. 이 주식의 인수자는 에스피네이처다. 감사보고서 당시 지분이 1.74%에 불과했던 에스피네이처는 합병 전 순식간에 지분을 17.21%까지 확보했다. 이에 대해 삼표그룹 관계자는 “최근 금리상승으로 인한 이자율 부담을 고려해 에스피네이처가 보통주로 투자했다. 유상증자는 삼표산업의 재무구조 개선과 성수 부동산개발 프로젝트의 안정적인 수행이 목적”이라고 전했다.
다만 에스피네이처는 2020년 (주)삼표의 신주 109만 2000주도 유상증자로 획득했다. 덕분에 (주)삼표와 삼표산업 지분을 모두 보유 중인 에스피네이처는 역합병에도 약 18.23%의 지분율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절반 가까이 차이 났던 삼표그룹 오너 부자간 지분 격차는 약 6.89%로 좁혀졌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다. 따라서 삼표그룹과 정대현 사장이 자사주를 어떻게 활용할지가 관전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삼표그룹 관계자는 “역합병으로 발생한 자사주는 합병법인의 재무구조개선을 위하여 활용할 것이며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단순히 정대현 사장이 자사주를 매입해도 정도원 회장에게 주식을 증여받는 것보다 이득이 될 수 있다. 역합병으로 부자 간 주식 수 차이는 약 157만 주로 좁혀졌다. 에스피네이처가 지난 3월 유상증자로 삼표산업의 주식을 취득할 때 주당 가격은 약 3만 377원이었다. 이를 토대로 정대현 사장은 483억 원 이상의 자사주를 매입하면 정 회장의 지분을 넘어설 수 있다.
정대현 사장에게 자금은 충분하다. 정 사장에게는 에스피네이처라는 든든한 자금줄이 있기 때문이다. 에스피네이처는 2013년 (주)대원에서 인적 분할했던 신대원이 사명을 변경하면서 탄생한 업체다. 에스피네이처는 계열사 합병으로 몸집을 키워 나갔다. 2017년 삼표기초소재, 2018년 남동레미콘, 2019년 알엠씨, 당진철도, 경한, 네비엔, 네비엔알이씨, 당진에이치이 등을 흡수·합병했다.
에스피네이처는 인적 분할 2년차인 2014년부터 배당을 시작했다. 정대현 사장이 9년 동안 에스피네이처에서 받은 배당금만 517억 7962만 원에 달한다. 배당금으로만 삼표산업 자사주를 매입해도 정도원 회장의 지분을 넘어설 수 있는 셈이다.
정대현 사장이 정도원 회장에게 주식을 증여받는다면 증여세 폭탄을 피할 수 없다. 정 회장은 이번 역합병으로 주식 수가 약 695만 주로 늘었다. 앞서의 삼표산업 주당 평가가액으로 계산했을 때 정 회장의 총 주식 평가금액은 약 2139억 원에 달한다. 정 사장이 이를 이어받는다면 증여세로만 약 1032억 원을 내야 할 수 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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