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인정 요건 까다롭고 지원 업무 공조 삐그덕…관계부처 협의해 체계적 지원 시스템 구축 필요
#심사에 최소 2달 이상 소요 전망
지난 6월 28일 국토교통부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는 265명을 첫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했다. 6월 1일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한 지 약 한 달 만이다.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에 따르면 국토부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된 사람만 1년 이내 직접 경매 유예·정지 신청, 경매·공매절차에서 우선매수권 지급, 임대인 국세 우선 징수 특례 등 혜택을 받는다. 피해자가 신청하면 지방자치단체에서 기본 요건을 조사한 후 위원회가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적으로 인정하는 방식이다.
악성 전세사기로 인한 피해 가구수는 약 2만 6000가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약 1%가 피해자로 인정받은 셈이다. 그마저도 특별법 통과 전인 5월경에 사전 접수한 인천 미추홀구 피해자들 중심으로 피해자 인정 결과를 통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6월 초에 지자체 창구에 접수한 피해자들의 경우 8월은 지나야 결과가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 이 때문에 심사 기간이 지나치게 길어 피해자 지원 속도가 더딘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이번에 인정받은 사례는 인천 미추홀구의 건축왕 사례처럼 이미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인 경우라서 전세사기를 판별하기 까다롭지 않지만 향후 다른 지역의 피해자들을 심사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심사가 길어지는 이유 중 하나로 피해자 인정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점이 꼽힌다. 특별법에 따르면 △전입신고를 마치고 확정일자를 갖출 것 △임대인의 파산 등 절차적 요건을 갖췄으며 다수의 피해가 발생이 우려될 경우 △임차 보증금이 3억 원 이하일 것(2억 원 추가 상향 가능) △수사 개시 혹은 임대인의 기망 등 전세사기 의도가 존재할 경우 등 피해자는 4가지 요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팀장은 “피해자들은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데 최소 두 달 이상 심사가 필요할 만큼 요건을 까다롭게 만든 것은 문제가 있다. 입주 전에 사기를 당한 경우나 보증금 요건 등도 사각지대에 해당해 보완입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업무 공조도 원활하지 않아 피해 접수 업무가 지연된 사례도 확인된다. 경기도의 경우 특별법 제정 전에 선제적으로 전세피해지원센터를 만들어 경기주택도시공사(GH)에 운영 위탁을 맡겼는데, 정작 조사 권한은 도지사에게만 있어 국세청이 소득 증빙 자료를 공유해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의 김주호 팀장은 “국토부와 국세청과 경기도청이 업무 공조가 빨리 안 됐다. 인천 같은 경우는 이미 피해 실태 조사를 다 했는데 경기도에서만 왜 유독 이런 어려움이 생겼는지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렵고 답답한 일”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인정을 받지 않은 임차인도 이용할 수 있는 수 있는 대환대출 역시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환대출은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이 기존에 받은 전세 대출을 저금리 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는 금융상품이다. 그런데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환대출이 시행된 이후 6월 22일까지 피해 임차인이 접수한 대환 대출은 총 171건뿐인 것으로 집계됐다.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운 탓이다. 부부합산 연소득이 7000만 원 이하, 보증금 3억 원 이하, 전용면적 85㎡ 이하(수도권 제외 도시지역이 아닌 읍·면 지역 100㎡)인 경우에만 이 상품을 이용할 수 있다.
#피해자들의 혼란은 점점 가중되는데…
현장에서는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철빈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국토부 보도자료와 달리 실제로 창구에 가 보면 디테일이 다르다. 예컨대 경락자금 지원대출도 실제로 상담을 해보면 주택만 가능하기 때문에 오피스텔이나 근린생활시설 거주하시는 분들은 이용하지 못하고 기존에 버팀목 대출을 받으신 분들은 대환대출을 이용하지 못한다더라”며 “각 지원 대책이 다 따로 논다. 피해자들은 혼선이 너무 심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은행마다, 지점마다 요구되는 서류나 방침이 달라 혼선을 겪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인천시에 거주하는 한 피해자는 "인천의 경우 임차권 등재 기간이 1~2달 정도인데 아직 등기가 안 됐다는 이유로 대출 연장을 거부한 은행이 있다. 다른 은행에서는 임차권 등기 후 실거주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대출 연장이 거부당한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철빈 공동위원장은 "당장 대환대출만 따져도 시중은행 1금융권에서 사무 개시한 지 두 달이 넘어가는데 실제로 은행에 가보면 ‘우린 안한다’ ‘해본 적이 없다’고 거절하면서 돌려보내는 사례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은행권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창구에서 대환대출을 잘 모른다며 응대를 거부하는 태도에는 문제가 있겠지만 중구난방이라는 지적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저희는 보증기관의 규정에 맞게 기준을 갖고 일관되게 처리한다. 고객 입장에서야 다 같은 대출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고 대출마다 전세대출 보증서를 발급해주는 보증기관도 다 다르기 때문에 다 살펴보고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권 다른 관계자는 “고객은 이 서류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인지가 부족할 수 있지만 직원 입장에서는 뭔가 더 확인해야 해서 요구했을 확률이 높다”며 “대출과 관련해서는 권리조사업체 등에서 인수를 거절하는 경우도 있고 이 경우 은행도 도움을 드릴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앞서의 이철빈 공동위원장은 “저희는 국토교통부가 책임 주체라고 생각하는데 문의하면 금융 쪽은 금융위원회 소관이라고 응대한다”며 “사실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주택과 금융 문제가 분리되기 어렵고 책임있는 정부 기관이 통합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주길 원하는데 창구가 너무 분산돼 있고 업무 공조도 되지 않아 막막한 경우가 너무 많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한 관계자는 “금융 이슈도 국토교통부의 주택 기금으로 처리하는 일이기 때문에 각 방침을 체계적으로 일선에 전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국토부 쪽에서 매뉴얼을 잘 만들어서 홍보하고 알기 쉽게 배포할 필요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정부가 은행을 운영하는 게 아닌 만큼 피해자들이 원하는 수준의 원스톱 서비스가 이뤄지기는 힘들다”며 “그렇지만 피해자들의 어려움을 고려해 국토부를 비롯한 정부 관계부처가 잘 협의해서 구체적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준과 사례를 정리해 제시해줄 필요는 있을 것“라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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