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안바이오 CB 발행에 박연주택 ‘깡통전세’ 담보로 141억 납입 공시…주가 반등 틈타 안 대표 대량 매도 후 CB 발행 취소
전세사기 피해자 A 씨의 말이다. 올해 초 국내에서 가장 화제가 된 금융 범죄는 전세사기다. 전세사기 조직은 전세금 하나밖에 없는 젊은 신혼부부와 변화에 어두운 노년층 등을 주 타깃으로 엄청난 범죄 수익을 거뒀다. 수많은 가족이 유일한 재산인 전세 보증금을 날릴 상황을 맞으면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보도가 쏟아지고 사회가 발칵 뒤집히면서 전세사기 지원 특별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등 정치권에서도 집중적인 관심을 쏟아냈다.
그런데 전세사기 업체 중 가장 규모가 컸던 조직으로 꼽히는 박연주택과 상장 폐지된 코스닥 바이오 회사 자안바이오의 연결고리가 발견돼 눈길을 끈다. 상당히 이질적인 두 곳이 연결됐다는 것 자체도 의외지만, 그 연결고리가 전환사채(CB)라는 점도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박연주택은 전세사기 업체 중 가장 큰 피해를 양산했다고 알려진 소위 ‘2400 조직’이 만든 일종의 페이퍼 컴퍼니 가운데 하나다. 전세사기 업계를 잘 아는 A 씨는 “3000채 가까운 빌라 사기가 이뤄진 업체 전화번호 끝자리가 2400이어서 조직 이름을 흔히 2400이라고 부른다. 2400 관리 조직이 만든 페이퍼 컴퍼니 중 하나가 박연주택이다. 이들 조직은 법인 설립 시 이름을 만들기도 귀찮았는지 바지(명의대여자) 이름 일부를 따서 짓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A 씨 말처럼 박연주택도 바지 명의자 이름 중 일부를 따서 만들어졌다. 이들이 가진 또 다른 법인 이름인 마니주택 역시 바지 명의자 이름의 마지막 글자가 ‘만’으로 끝나는 데서 착안한 듯 보인다. 박연주택은 전세사기로 명의를 취득하게 된 빌라 수백 채를 보유하고 있었다. 앞서 자안바이오와의 연결고리는 이 주택들을 통해 발생했다.
자안바이오는 구 한솔씨앤피가 이름을 바꾼 회사다. 한솔씨앤피는 휴대전화, 태블릿과 같은 IT 기기 외장에 사용하는 특수 도료를 제조 및 판매하는 회사였다. 이 회사는 2019년 기준 자산 346억 원, 매출 438억 원, 영업이익 4억 원을 냈고, 연평균 7억 원가량 영입이익을 내는 흑자 회사였다. 다만 한솔케미칼은 한솔씨앤피 실적이 악화하면서 이 회사를 매각하기로 했고, 2020년 3월 자안그룹으로 매각했다.
한솔씨앤피는 자안그룹에 인수된 뒤 실적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한다. 회사는 사명을 자안으로 변경하고 마스크 등 바이오 사업을 시작했다. 2020년부터 자안은 매출이 반토막 이상 줄어 163억 원으로 급락했다. 부채도 급속도로 늘어 전년 92억 원에 불과했던 부채가 1년 만에 550억 원으로 늘었다. 영업 손실이 약 90억 발생하면서 회사는 적자로 전환됐다.
2021년 3월 자안은 자안바이오로 사명을 변경했다. 자안바이오는 2021년 들어 실적이 더 나빠졌다. 영업적자는 100억 원을 넘어섰다. 당기순손실 규모는 약 969억 원이었다. 손실 규모가 늘어난 이유도 황당해 당시 언론 보도로 이어지기도 했다. 자안바이오는 자안그룹에 소속된 뒤 ‘브랜드 사용료’로 무려 373억 원을 썼다. 연간 매출 두 배 가까운 액수를 자안이란 이름을 사용하는 대가로 쓴 것이다.
자안바이오 부채가 쌓이면서 전환사채 발행 공시가 1년에 수차례 올라왔다. 박연주택은 2021년 8월 자안바이오 전환사채 8회차 발행 공시에서 이름이 등장한다. 2022년 7월 22일 공시에 따르면 박연주택은 빌라 등 117개 주택을 전 아무개 씨에게 담보로 신탁해 141억 원을 자안바이오에 납입하기로 했다. 문제는 박연주택이 보유한 117개 주택은 전세사기에 사용된 물건으로 명의만 보유했을 뿐 아무런 가치가 없는 소위 ‘깡통 전세’ 매물이라는 점이다.
앞서 A 씨는 “박연주택이 신탁한다고 한 117개 주택은 개수가 많을 뿐 아무런 가치가 없다. 모든 임차인이 전세가를 초월한 가격에 들어가 있었다. 이걸 담보로 돈을 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117개 주택을 담보로 잡고 돈을 내준다는 전 아무개 씨는 박연주택 이사로 전해진다. 전세사기 조직이 만든 법인의 이사였던 전 씨가 박연주택 117개 주택 상황이 어땠는지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어쨌든 이 소식에 반응했는지 주가가 반등하기 시작했다. 부도 위기로 몰렸던 자안바이오에 141억 원이 들어온다는 소식에 주가가 하락세에서 반짝 반등한 것이다. 2021년 3월까지만 해도 2만 원에 가깝던 주가는 2021년 4월부터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해 2021년 7월 5000원 중반까지 빠졌다. 그런데 8차 전환사채 발행 소식이 알려지고, 주가는 반등해 6000원선을 회복했다.
2021년 7월 자안바이오는 대주주인 안 아무개 자안그룹 대표의 지분이 변동됐다는 공시를 여러 차례 올렸다. 안 대표는 7월 초부터 장내 매도를 계속했다. 이어 안 대표는 박연주택 공시 이후 주가가 반등한 7월 21일부터 28일까지 거의 매일 주식을 대량으로 매도했다. 공시에 따르면 21일부터 28일까지 안 대표는 약 23만 4000주를 매도했다. 8월 초까지 안 대표 지분 매도는 계속됐고, 결국 6월까지 50%가 넘던 지분은 8월 6일 1.29%까지 낮아진다.
장내 매도가 끝나고, 2021년 8월 9일 자안바이오는 박연주택을 통한 전환사채 발행 취소 공시를 낸다. 당시 공시를 통해 자안바이오는 ‘전환사채 발행결정 취소에 대한 이사회 결의’가 있었다고 알렸다. 취소 사유는 계약상대방의 계약상 의무 불이행이었고, 취소로 인한 위약금 등은 없었다. 즉, 깡통 매물을 담보로 한 전환사채 발행 공시를 했고, 이를 취소했음에도 회사 표면적으로는 어떤 변화도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주가 반등이 있었고 그 사이 대주주 매도가 계속됐다.
자본시장 업계 관계자 B 씨는 당시 CB 발행 공시는 대주주인 안 대표를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B 씨는 “대주주 매도 직전 나왔던 공시는 안 대표 외에 이득이 없었다. 결론적으로 자안바이오, 박연주택 둘 중 어느 쪽도 CB 발행에 손해를 보는 측이 없고 그 사이 이득을 보는 사람이 한 명 있다면 그를 위한 공시 아니었겠나”라면서 “피해 보는 사람은 오직 소액주주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자본시장 업계 관계자 C 씨는 안 대표도 일종의 피해자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C 씨는 “어디까지나 가정이고 안 대표를 알지 못하지만, 공시 등으로 살펴봤을 때 이건 안 대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안 대표가 자안바이오를 인수하기 전까지 자안그룹은 회사 상태가 나쁘지 않았는데, 자안바이오 인수 후 마치 작전주 같은 전혀 다른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C 씨는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면서도 “자안바이오 막판 행보는 마치 소위 ‘꾼’들이나 할 것 같은 공시와 주가 매도가 계속됐는데, 이는 정상적인 사업을 하는 사람이 벌인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일요신문은 이와 관련한 입장을 듣기 위해 자안바이오 측과 연락을 취하려고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자안바이오는 IBK기업은행 역삼남지점에서 발행한 전자어음 12억 8700만 원을 결제일인 2021년 9월 1일 갚지 못해 부도처리됐다. 2022년 1월 5일 자안바이오는 상장 폐지됐다. 이후 자안바이오는 홈페이지도 사라졌고, 회사 내선 번호 등도 결번 처리된 상태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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