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정 전경. | ||
현재 국제상사의 대주주는 이랜드이지만 법정관리 중이기 때문에 회사 매각에 대해서는 창원지방법원이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창원지법이 4월 초 이랜드를 제쳐두고 매각입찰을 통해 E1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것이다.
창원지법은 현재 4000만 주의 주식에 4000만 주를 추가로 증자하고 이를 E1에 매각해 기존 지분에 ‘물타기’를 할 방침이다. E1은 50%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게 되고, 현재 51.8%의 지분을 가진 이랜드는 주식 수는 그대로이지만 지분율은 25.9%로 낮아지게 된다. 대주주인 이랜드가 발끈할 수밖에 없는 상황.
결국 이랜드는 5월 4일 ‘국제상사 제3자 매각중지를 요청하는 가처분 신청’을 신청했다. 그런데 이를 신청한 곳도 창원지법이다. 매각을 추진하는 당사자에 매각중지를 신청한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때문에 창원지법의 법적 판단에 대해 업계의 호기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제상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간 것은 1998년 8월 외환위기를 맞은 때였다. 2002년 6월 이랜드는 채권자인 우리은행이 담보로 보유하고 있던 주식과 전환사채를 550억 원에 인수해 45.2%의 지분을 확보했다. 이후 추가적으로 시장에서 주식을 매집, 현재 51.8%를 보유하고 있다. 대주주지만 국제상사가 법정관리 중이라 경영권 행사는 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논란의 중심에 선 국제상사 측은 “매각 당사자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법원의 판단에 따를 뿐이다”라며 공식입장을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상사 노동조합은 이랜드가 회사 정상화보다는 회사가 소유한 부동산 등의 자산에 더 관심이 많다는 이유로 거부감을 갖고 있다. 이랜드가 국제상사 주식을 매입하는 과정도 석연치 않았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우리은행의 주식 및 전환사채 매각 당시 최고가 입찰 원칙을 무시한 채 이랜드에 넘어갔다. 당시 상황을 보면 우리은행은 입찰 당일(2002년 6월 19일)이 아닌 6월 24일 결과를 공식 발표했는데, 이랜드는 공식 발표가 나기도 전인 6월 21일 스스로 낙찰자라고 언론에 공표하는 등 당시 투명하지 않은 입찰 과정에 대해 특혜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 측은 “당시 부실채권을 내부 규정에 따라 매각해야 했다. 입찰과정을 거쳐 공정하게 처리했다”며 의혹을 일축했다.
국제상사 노조가 이랜드를 반대하는 데는 기업 정서가 전혀 맞지 않은 것이 실질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노조 측에 따르면 이랜드가 대표적인 노조탄압 회사이고, 직원들에게 특정 종교를 강요한다는 점, 일요일에 휴무하는 원칙이 주말에 매출을 올리는 대리점들의 반발을 살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고 있다.
▲ 인기 탤런트 윤은혜를 모델로 기용한 국제상사의 대표 브랜드 프로스펙스 지면광고. | ||
국제상사 소유로 서울 용산지역의 랜드마크 역할을 해왔던 국제센터빌딩은 용산지역의 개발 여파로 현재 수천억원대로 가격이 상승했다. 이랜드조차 550억 원을 투자해 매입한 주식가치가 부동산 가치 상승으로 현재 2500억 원을 넘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국제상사 노조에서는 이랜드가 그간 보여준 M&A 방식에서 그 반대 이유를 찾고 있다. 이랜드는 2005년 6월 4개의 뉴코아 점포의 빌딩을 매각하고 임대로 전환하는 ‘세일&리스백’(sale & lease-back) 방식으로 실탄을 확보해 왕성한 M&A에 나서기도 했다. 매입한 회사의 자산으로 매입대금을 확보하는 LBO(leveraged buy out)방식을 국제상사 인수에도 이용할 것이라는 얘기다. 노조 측은 “주식인수 자금조차 차입에 의존하고 있는 등 재무능력과 경영능력이 있는지 의심된다”고 이랜드를 비난하고 있다.
최근 이랜드는 프랑스계 할인점인 한국까르푸를 1조 7500억 원에 매입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매각대금 중 이랜드가 직접 투자한 자금은 3천억 원이고, 차입금이 1조 500억 원에 이른다. 5월 9일 한국신용평가는 이랜드 그룹 전체 규모와 맞먹는 까르푸 인수 대금을 갚기 위해 일부 점포의 빌딩을 매각해 이를 되갚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 놓기도 했다.
이랜드는 이런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국제센터빌딩을 팔지 않고 최첨단 오피스 빌딩으로 리모델링하고 국제상사 회사명도 그대로 유지할 것이다. 지난 2월 인수한 삼립개발(하일라 콘도 리조트)과 연계해 종합적인 레저 브랜드로 육성할 방침”이라며 국제상사를 달래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한편 효성을 따돌리고 우선협상대상자가 된 E1은 공식적인 입장은 자제하면서도 내심 이랜드에 불만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법원이 정당한 절차를 거쳐 매각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랜드가 명분도 없이 이를 물고 늘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E1 측은 “실사를 진행해 보니 지금 국제상사는 추가 자본투자 등 정상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시간끌기를 할수록 국제상사는 또다시 부도의 위기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이랜드가 국제상사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대주주와 법정관리인의 입장이 충돌할 때 법원은 어떤 판결을 내려야 할까. 대법원은 이에 대해 애매한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지난해 6월 대법원은 창원지법과 이랜드의 관계에 대해 “회사의 부채총액이 자산총액을 초과하는 경우 이외에는 주주는 주식수에 비례해 의결권이 있고, 증자 등 정관변경이 주주에게 불리할 때는 이에 대한 주주들의 결의가 필요하고 증자가 필요하면 주주에게 우선 배정권을 주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랜드 측은 이를 자신들의 대주주 자격을 인정한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E1 측은 “이는 대주주와의 합의를 갖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의미이지 이랜드의 주주 자격을 인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의미를 축소했다.
현재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랜드와 창원지법의 합의가 필수적이다. 그렇지만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국제상사와 E1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이랜드가 가진 주식을 E1이 비싼 값에 매입하는 것으로 결론나지 않겠느냐고 예측하기도 한다. 까르푸 인수로 채무상환이 절실한 이랜드가 지분을 매각하기 위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하는 이유다.
그러나 어떻게든 해법이 나오지 않는다면 창원지법 파산부가 진행하는 사항을 창원지법 재판부가 판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재판부가 어떤 결과를 내릴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