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이미지 벗고 ‘걸크러시’ 해녀 리더 변신…현장에선 ‘홈메이드 식혜’ 선사한 다정한 정아씨
“제가 원래 물에 대한 공포가 있어서 수영을 아예 안 할 생각으로 살았거든요(웃음). 그러다 ‘밀수’에서 해녀 역을 맡게 됐는데 원래 처음엔 그냥 ‘이건 내가 어떻게든 하면 되겠지’하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훈련을 하다 보니 정말 조금씩, 조금씩 되는 거예요(웃음). 사실 수영도 못하면서 이 영화를 선택했던 건 너무 하고 싶어서였어요. 류승완 감독님 영화고, 대본도 재미있는데, 혜수 언니랑도 같이 할 수 있으니까요. 감독님이 처음엔 저한테 ‘수영은 그렇게 직접 안 해도 된다’ 그랬는데 촬영 들어가니까 다 해야 되더라고요(웃음).”
영화 ‘밀수’에서 염정아는 군천이라는 가상의 바닷가 마을에서 물질을 하며 살아가다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밀수 범죄에 뛰어들게 된 해녀 무리의 리더 진숙 역을 맡았다.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절친 춘자(김혜수 분)와 함께 일자리를 잃은 해녀들을 이끌고 밀수 생활을 이어가던 진숙은 더 큰 ‘한탕’을 할 수 있다는 욕심에 위험한 금괴 밀수에 뛰어들었다가 발각돼 아버지와 남동생을 잃고 자신은 징역살이를 하게 된다. 그 난리통에 오직 춘자만이 도망쳐 나갔다는 사실을 알고 그가 밀수 신고를 한 것이라 오해한 진숙은 춘자에게 깊은 배신감을 느끼며 복수를 꿈꾼다.
“진숙을 연기할 땐 혼자서 괴로워했던 기억이 나요.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웃음). 그런 포인트를 류승완 감독님이 굉장히 잘 잡아주셨고, 제가 고민하며 어찌 해야 할지 헤맬 때마다 감독님께 많이 의지했어요. 사실 진숙은 제가 처음 해보는 캐릭터였으니까요. 또 극중에서 어려서부터 친구이자 자매처럼 생각했던, 내게 있어 하나뿐인 존재인 춘자에 대한 마음들이 계속해서 변화해야 했거든요. 그런 것들에 어떤 수위로 변화를 주며 연기를 해야 할지가 참 많이 고민됐고 헷갈렸어요. 그럴 때마다 감독님께 질문하면 바로 답을 주셨죠(웃음).”
염정아의 말대로 진숙은 이제까지 염정아가 보여준 캐릭터들과는 완전히 다른 결로 존재한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어촌의 삶에 찌들어 늘 찌푸린 표정인 진숙은 그럼에도 자신이 지켜야 할 해녀들의 앞에선 숙였던 고개를 쳐들고 불의를 향해 당당히 따질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책임감’으로 정의되는 진숙을 연기하기 위해 염정아는 ‘스카이 캐슬’ 때와는 또 다른 ‘생존형 숏컷’으로 등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제가 처음 카메라 테스트를 할 땐 단발머리였거든요. 그런데 그 상태로 봤을 땐 진숙이 같은 느낌이 없는 거예요. 계속 보면서 ‘이건 진숙이 같지 않은데?’ 하고 있었는데, 그때 아마 제 아이디어였나? 머리를 잘라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게 됐어요. 그래서 잘라 봤더니 이제야 진숙이 같더라고요(웃음). 진숙이를 보면 옷도 점프수트 같은, 살짝 보이시한 걸 입고 있고 그렇죠. 제가 예전에 ‘스카이 캐슬’ 때도 숏컷을 해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이렇게 짧게 자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더라고요(웃음).”
염정아의 진숙과 김혜수의 춘자가 보여주는 의리 넘치는 ‘워맨스’는 ‘밀수’의 호평을 이루는 여러 커다란 줄기 가운데 하나였다. 사랑하는 친구였기에 배신의 아픔도 깊을 수밖에 없었던 진숙과 그 오해를 풀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직 진숙을 위해 모든 걸 감내하는 춘자의 서사를 두고 많은 관객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이런 환호에는 두 명배우, 염정아와 김혜수의 기막힌 만남이 너무 늦게 이뤄진 것이냐는 아쉬움도 섞여있다. 염정아는 “오히려 서로 많은 경험치를 쌓고, 서로에게 어떻게 어우러져야 하는 것을 알게 된 지금에서야 만나 더욱 좋은 것 같다”며 웃어보였다. 줄줄이 쏟아지는 김혜수에 대한 칭찬도 당연히 그 뒤를 따랐다.
“언니는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촬영 들어가기 전까지 엄청나게, 철저하게 준비를 많이 해요. 저는 그렇게까지 준비하시는 분을 정말 처음 봤어요. 극 중에서 춘자가 보여주는 의상이나 헤어 그런 게 다 언니가 준비했던 자료를 토대로 만들어진 거예요. 혜수 언니는 현장에서도 맏언니인데 제일 애교도 많고, 웃음도 많고, 눈물도 많아요(웃음). 워낙 사랑이 많으신 분이거든요. 저도 이번 작품하면서 진짜 김혜수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연기도 하고 밥도 같이 먹고 그랬죠(웃음).”
그런 염정아 역시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다. 영화 ‘시동’에서 모자 관계로 나왔던 박정민은 물론이고 이번 ‘밀수’에서 새롭게 만난 배우들에게도 애정이 물씬 묻어나는 칭찬이 이어졌다. 한 명 한 명 손가락을 꼽아가며 기억한 이 배우들과의 현장이 너무 좋아서 자기 몫의 촬영이 다 끝난 뒤에도 집에 가기 싫어 계속 붙어있었다는 뒷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혜수 언니는 정말 힘이 있는 배우라고 생각해요. 김혜수가 뭘 하고 나면 다른 사람이 그걸 하는 게 상상이 안 될 정도로요. 박정민은, 연기를 너무 잘하고 똑똑하고 예쁘죠(웃음). 전 정민이 보면 항상 좋아한다는 표현을 아끼지 않고 하는데 그러면 정민이는 쑥스럽다는 듯이 ‘아, 감사합니다’ 그래요(웃음). (고)민시는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막내! 정말 다들 예뻐했어요. 예쁘고 착한데 연기까지 잘해. 또 조인성 씨와는 이번이 첫 작품이었는데. 현장에서 얼마나 좋은 배우인지 듣다가 직접 확인 해보니 정말 마음이 넓고 제 생각보다 훨씬 인간적인 사람이었어요. ‘저렇게 잘생겼는데 저렇게 인간적이기까지 해?’ 이런 생각도 들고(웃음).”
사랑이 넘치는 염정아의 식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었다. 감독부터 출연 배우들, 그리고 스태프들에게도 나눠줬다는 염정아 표 식혜는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받은 사람들의 ‘맛있다’는 말을 들으니 신나서 몇 병이고 만들게 됐다는 그는 “이제는 힘들어서 더 못 만들겠다”며 손사래를 쳤다.
“제가 주는 식혜를 받았을 때 보여주시는 반응이 너무 좋아서 밤이고 낮이고 만들었는데, 이제는 진짜 힘들어서 그만큼은 못 만들죠(웃음). 하루에 딱 세 병밖에 못 하거든요. 10인분짜리 밥통으로 만들면 2리터들이 페트병으로 세 병이 나오는데 그걸 하는 데만 6시간 정도 걸려요. 혜수 언니는 제가 벌써 세 번을 드렸는데 ‘언니, 또 줄까?’하면 ‘너 힘들잖아, 그만해’ 그래요. 그러면서도 ‘근데 (이 식혜가) 파는 거라면 또 먹고 싶어’ 그러더라고요(웃음).”
도회적이면서도 다소 냉랭해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수더분하면서도 다정한 마음 씀씀이는 이미 ‘삼시세끼-산촌편’을 통해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졌었다. ‘밀수’를 본 후배 여성 배우들이 염정아를 향해 애정을 아낌없이 보낸 것도 그의 이런 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후배들의 칭찬이 늘 쑥스러우면서도 고맙다는 염정아는 어떤 현장에서든 ‘같이 일하면 재미있고, 즐거운 선배’이길, 그리고 그런 애정에 걸맞은 ‘잘하는 배우’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밀수’ VIP 시사회에 후배들이 많이 와서 봤는데 그분들에게 저와 혜수 언니는 훨씬 선배잖아요. 그런데 저희의 모습을 보고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다는 말을 들으니 그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저를 두고 롤 모델이라고 불러주는 말도 너무 좋아요. 제 연기를 다 봐주신 데다, 심지어 좋게 봐주신 거잖아요? 어떤 작품에서 어떤 캐릭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본 지 꽤 오래 됐는데, 아마 제가 나이를 먹어가며 할 수 있는 역할들이 조금씩 변할 거예요. 이제까지 해보지 않은 역할도 계속 맡게 되겠죠. 그런 만큼 이번 ‘밀수’에서도 관객 분들이 ‘밀수’ 재밌다, 염정아 잘했다, 하시는 말씀이 듣고 싶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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