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로맨스 드라마 ‘실장님’ ‘전무님’ 캐릭터 다시 등장…판타지 통한 대리만족 제공해 인기
#‘본부장님’부터 ‘대표님’까지…성공을 부르는 그 이름
10% 안팎의 시청률을 거두며 넷플릭스 비영어권 흥행 순위 1위를 기록하기도 한 JTBC 드라마 ‘킹더랜드’는 ‘시대착오적 드라마’라는 오명도 쓰고 있다. 그 내용 구성을 보면 2000년대 초중반 방송됐던 ‘파리의 연인’ 혹은 ‘시크릿가든’의 판박이다. 남자 주인공은 대부분 출생의 비밀이나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까칠한 인물이다.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데 딱 하나가 없다. ‘싸가지’다. 여자 주인공은 어떤가. 항상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가장 노릇을 한다. 하지만 구김이 없다. 특유의 붙임성으로 주변 이들에게 사랑받는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전형적인 ‘캔디’다.
‘킹더랜드’는 이 공식에 한 치의 오차 없이 부합한다. 게다가 주인공 구원(이준호 분)의 직책은 ‘본부장’이다. “인턴부터 시작하라”는 아버지의 명으로 첫 출근을 하지만 여러 사람 곤란하게 만든 후 결국 본부장 자리를 꿰찬다. 그런데 타인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던 구원이 자신에게 유독 냉랭하게 대하는 천사랑(임윤아 분)에게는 매력을 느낀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돼 화제를 모은 드라마 ‘셀러브리티’도 같은 맥락이다. SNS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인플루언서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에서 주인공 서아리(박규영 분)는 의도치 않은 기회에 인플루언서의 삶을 살게 되는 인물이다. 갑작스럽게 이 업계에 등장해 빠르게 팔로어를 늘려 가는 서아리를 곱게 보는 시선은 드물다. 무시하고 배척하기 일쑤다. 하지만 그에게는 든든한 조력자가 있다. 코스메틱 브랜드 대표인 한준경(강민혁 분)이다. 날고 기는 인플루언서들의 선망의 대상이지만 눈길조차 주지 않는 한준경이 유독 서아리에게는 마음을 뺏긴다. 서아리를 만나기 위해 스스로 “성추행을 했다”며 경찰서에 가서 자수한 뒤 피해자인 서아리를 만나게 된다는 설정은 시계를 20∼30년 전으로 돌려놓은 듯하다.
이외에도 배우 신혜선, 안보현이 주연을 맡은 tvN 드라마 ‘이번 생도 잘 부탁해’에는 ‘전무님’이 등장한다. 전생에서 사랑을 나눴던 남녀가 현생에서 전무 문서하(안보현 분)와 팀원 반지음(신혜선 분)으로 만나 다시 사랑을 키워간다는 설정이다.
이런 드라마가 다시금 제작된 계기는 지난해 초 방송된 SBS ‘사내맞선’의 성공에서 찾을 수 있다. 푸드회사 사장 강태무(안효섭 분)와 직원 신하리(김세정 분)의 사랑을 그린 ‘사내맞선’은 ‘킹더랜드’에 앞서 ‘클리셰 덩어리’라 불리던 작품이다. 어디서 한번쯤 봤을 법한 진부한 장면과 다음 대사를 알 것 같은 판에 박힌 대화, 전형적인 인물 구성 등이 이들 드라마의 특징이다. 남녀 주인공 외에 서브 커플을 등장시켜 얽히고설킨 관계 속 오해를 극복하고 진실한 사랑에 이르게 되는 과정은 ‘교과서’같다. 하지만 대중이 소비한다. 그러니 또 만들 수밖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백마 탄 왕자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인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는 고전이라 불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든 통용되는 정서와 가르침을 담은 대작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어 본 이들은 알 것이다. 이 소설을 현대 드라마로 만든다면 단박에 ‘막장’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게 될 것이란 사실을.
‘오셀로’를 보자. 부관의 간교한 혀에 놀아난 오셀로는 질투에 사로잡혀 결국 정숙한 아내를 죽게 만든다. 그 안에는 불륜과 의심, 미움과 거짓이 한데 뒤섞인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이 ‘고전’이라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감정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으로, 백마 탄 왕자님과 신데렐라, 혹은 캔디는 항상 대중 곁에 있는 캐릭터였다. 이는 일종의 판타지고, 대중은 항상 판타지를 갈구한다. 팍팍한 현실의 고통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는 탈출구이기 때문이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분석 대상으로 살펴보자. 이 드라마에는 4명의 남자 의사가 등장한다. 이익준(조정숙 분)은 유머와 최고의 의술을 동시에 갖춘 데다 채송화(전미도 분)를 향한 해바라기 사랑을 보여준다. 안정원(유연석 분)은 재단 이사장의 아들이지만 돈 욕심 없이 신부가 되려 한다. 그러다가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신부의 길을 포기한다. 김준완(정경호 분)은 어떤가. 겉으로는 까다롭지만 누구보다 속정이 깊고 지고지순하다. 그리고 양석형(김대명 분)은 외모만 곰 같을 뿐, 속은 누구보다 섬세하고 또 따뜻하다. 결국 ‘실장님’이나 ‘전무님’으로 불리는 재벌 2세 캐릭터를 4명에게 고루 나눠줬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들의 직업군을 의사로 설정하면서 전문직 드라마의 탈을 썼을 뿐, 이 드라마 역시 백마 탄 왕자님들을 잔뜩 등장시킨 판타지 드라마와 진배없다.
결국 대중이 원하는 바는 명확하다. 현실에서는 이루기 힘든 판타지를 통한 대리만족이다. 다만, 이를 풀어가는 방식이 좀 더 세련돼지고 있을 뿐이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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