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디슈’ 지상 카체이싱 이어 ‘밀수’ 해저 해녀 액션까지 “스태프들, 제가 스카이다이빙 시키는 악몽 꾸기도”
누구도 건드려본 적 없는 장르를 처음으로 개척해나간다는, 반쯤은 모험이고 나머지 반은 도박이었던 이 작품은 개봉 직후부터 흥행 순항을 이어나가고 있다. “만들고 싶은 걸 만든다”는 류 감독의 자신과 뚝심이 그대로 묻어나는 ‘밀수’에서는 기존에 그가 보여준 것과는 조금 다른 색의 연출과 스토리 구성도 엿보여 대중들로부터 새로운 호평을 받아내기도 했다. 일요신문은 류승완 감독과 만나 ‘밀수’의 제작 비화부터 류 감독이 이야기 곳곳에 묻혀낸 변화의 흔적들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이하는 류승완 감독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 해녀들이 밀수 범죄에 가담한다는 흥미로운 소재가 인상적이다. ‘밀수’를 영화로 제작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한데.
“저희 회사 부사장이 영화 ‘시동’을 제작할 때 군산 촬영을 갔다가 그곳의 지역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거기서 1970년대 군산에 밀수가 횡행했는데 해녀들이 가담했었다는 아주 짧은 사료를 보고 이 소재를 갖고 개발하면 좋겠다고 기획하게 됐다. 저는 ‘모가디슈’ 촬영을 다 마치고 후반 작업을 하는데 초안 각본이 나온 걸 보고 ‘바다에서 해녀들이 이런 활극을 벌인다고? 이건 내가 어디서도 못 봤던 건데’ 싶어서 ‘이거 내가 연출하면 안 돼?’ 그랬다(웃음). 그 말에 강혜정 (제작사 외유내강) 대표가 ‘시간 되시면 해 보시든가요’ 해서 시작하게 됐다(웃음). 제가 가장 안 해봤던 걸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제가 본 적 없다는 건 관객들에게 그만큼 새로운 걸 보여드릴 수 있다는 거니까. 그게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 같다.”
― 영화사상 처음 제작되는 ‘해녀 액션’이다 보니 대중들에겐 조금 생소할 수도 있다. 흥행을 장담하긴 어려울 것이란 우려는 없었는지.
“저는 작품을 하고자 했을 때 물론 흥행도 생각하긴 하지만 그냥 제가 하고 싶으면 한다. 이게 맞다고 생각하면, 그런 확신이 들면 말이다. ‘모가디슈’도 아프리카에 가서 민간인이 고립되고 그러는 것에 흥행 요소가 뭐 있었겠나. 제가 지금까지 만들어 온 영화들로 우연찮게 제가 흥행 감독처럼 돼 버렸는데, 저는 흥행 숫자보다 영화를 관람하고 난 관객 분들의 반응과 그들의 마음 속에 이 영화가 얼마나 각인돼 있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렇게 깊게 각인된 영화는 당대에 흥행하지 못해도 언젠가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 조인성 배우가 맡은 권 상사의 스타일리시한 액션 신은 ‘밀수’의 관객들로부터 큰 호평을 들었다. 촬영 당시의 연출 방향은 어떤 것이었나.
“권 상사의 액션은 굉장히 장르적인 멋과 쾌감이 넘쳐나는 장면이길 바랐다. 제가 영화를 만들면서 지금까지 가상의 지역으로 설정한 게 ‘짝패’하고 ‘밀수’ 두 작품인데, 가상의 지역이란 건 ‘이건 장르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라는 일종의 안내 같은 거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폭력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런 (영화 같은) 싸움이 벌어질 수는 없지 않나. 다만 저조차도 액션영화의 팬으로서 멋진 액션을 보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다. 관객들이 볼 땐 액션 동작이 아무리 화려하고 멋있어도 그 인물에 몰입이 안 되면 겉으로만 화려한 것으로 끝이 되니까 세부적인 상황 속에서도 권 상사가 갖는 멋과 품위, 격렬한 상황 안에서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멋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 질문을 제가 던지면 조인성 배우가 다 채워준 거다.”
― 박정민 배우가 맡은 장도리의 액션 신도 권 상사의 것과 대비되면서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장도리의 액션은 또 장도리만의 멋이 있다. 권 상사와 장도리가 맞붙는 두 장면은 액션 설계부터 모든 게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다. 장도리만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건 무엇인가를 고민했는데 처절한 몸부림을 보이지만 대신 권 상사가 갖지 못한, 활어 같은 팔딱거리는 맛을 보여주고자 했다. 장도리의 액션은 뭔가 아주 정교하게 설계돼 있지 않은 것 같지만 오히려 그런 장면이 부상 위험이 더 커서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 제가 제안은 이렇게 하더라도 과연 이 안에서 어떻게 설쳐줄 것인가, 그건 배우가 해내야 하는 몫인데 제 생각보다 훨씬 더 훌륭하게 해내줬다. 제가 특별히 지시를 한 것은 없고 모든 건 배우들이 다 알아서 해줬다.”
― 권 상사와 춘자(김혜수 분)는 묘한 기류를 형성하면서도 일부 관객들이 기대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이 둘의 관계성을 어떻게 연출하고자 했는지.
“권 상사의 액션 장면을 만들기 위한 동력은 ‘기사도’다. ‘멋있게’라고 표현하지만 사실 지금으로써는 사라져가는 태도이자 가치이지 않나. 남성이 여성을 보호한다는 것도 지금은 ‘뭐?’ 이럴 수 있다(웃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둘의 로맨스를 형성시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저 동료로서 동지로서, 권 상사의 태도는 그때 명확하게 드러난다. 남녀관계가 아니라 그냥 (춘자는) 내 편인데 내가 좀 더 세니까 일단 내 뒤로 숨게 해주고 자기가 앞으로 나서는, 권 상사는 전형적인 옛날 사람이다. 저는 그게 둘이 로맨스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이뤄냈다고 생각한다. 엔딩 후 깜짝쇼를 할 때도 어떤 로맨스 이상의, 의리의 감성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런 관계들이 더 흥미로웠다. 자신들의 성별을 넘어서는 위치에서 서로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 올 여름 개봉하는 대형 영화 가운데 유일하게 여성 투톱을 내세우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영화가 여성 투톱의 영화인가, 라고 한다면 여성 배우 두 명이 리드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엄진숙(염정아 분)이란 한 캐릭터가 있고 그 주변 사람들이 변하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군상 활극에 가깝고 해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주요 배역으로 나오는 것이다. 대본의 골조상 진숙과 춘자 두 친구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어떤 계산도 이뤄지지 않고 본능적으로 김혜수와 염정아가 떠올랐다. 그 둘이면 당장 저라도 보고 싶으니까(웃음). 둘이 주인공이라는데 안 볼 이유가 특별히 없지 않나. 그런 지점에서 굉장히 모범적인 선택이었다고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그렇게 모험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적당한 선에서 살아보려는 사람이다(웃음).”
― 수영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염정아와 물 공포증이 있는 김혜수. 이 사실을 캐스팅 직전까지 전혀 몰랐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제가 다 공황이 올 뻔 했다(웃음). 두 분을 사무실로 부르는데 혹시 대본만 읽고 나서 안 한다고 할까봐 준비한 영상이나 이런 것들을 최대한 보여줬다. ‘우리가 이정도로 준비했어!’ 하는 것처럼. 이렇게 보여줬는데도 안 한다 하면 그건, 아닐 거야…(웃음). 전 처음에 두 배우가 해녀 영상, 바다 영상이 촤악 하고 펼쳐지는 걸 보면서 둘 다 너무 감동 먹은 표정으로 말도 못하고 입만 벌리고 있기에 ‘이렇게까지 감동할 건 아닌데?’ 싶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혜수 선배는 공황이 온 거고 정아 씨는 ‘난 수영을 못하는데…’ 이러고 있어서 대화가 끊겼던 거다. 나 혼자서 ‘이렇게까지 감동하다니, 난 대단한가 봐’ 이러고 있었다(웃음).”
― 그럼에도 두 배우가 해녀 연기를 완벽하게 해낸 데에 감독으로서도 뿌듯함을 느낄 것 같다.
“사실 배우 분들은 너무 심각한 상태였는데도 이걸 너무 하고 싶어서 제게 말을 못하고 계셨다. 그렇게 어렵게 결정했는데 정아 씨는 사람이 되게 쿨하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3개월 수중 훈련에 들어갔다(웃음). 그런데 혜수 선배는 공황이 심해서 수중 훈련 때 물에 발을 딱 담그는 순간 공황이 와서 대기실에서 30분 간 누워계셔야 했다. 진정이 된 후 다시 훈련을 시작하는데 함께 하는 해녀 배우들이 다들 응원해주니까 어느 순간 물속에서 연기를 막 하고 있더라. 해녀를 맡은 김재화 배우, 박준면 배우, 박경혜 배우, 주보비 배우도 정말 잘 해줬다. 저랑 ‘모가디슈’를 같이 했던 박경혜 배우와 주보비 배우는 제가 ‘자기들 수영 좀 해?’ 하고 물어봤는데 눈치들이 빨라가지고 바로 ‘뭔가 있다!’ 하고 감을 잡았다. 박경혜는 ‘그럼요, 물개죠!’ 이렇게 답장 했는데 알고 보니 수영을 못 하더라. 그걸 촬영 중반까지 모를 정도로 진짜 기가 막히게 움직였다(웃음).”
― 실제 바다와 바닷속을 완벽히 구현해 낸 세트장을 오가며 촬영을 했다고 들었다. 바다에서 촬영할 때 특별히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사실 바다에서 찍을 수 있는 게 1년에 며칠이 안 된다. 제가 언젠가 ‘캐리비안의 해적’을 제작한 제리 브룩하이머와 저녁을 먹은 적이 있다. 그 양반은 ‘탑건’으로 하늘에서도 찍고, ‘캐리비안의 해적’으로 바다에서도 다 찍어봤으니 바다 촬영 노하우 좀 알려달라고 해 봤다. 그랬더니 씨익 웃으면서 ‘가급적이면 바다에 안 가는 게 제일 좋아’ 그러는 거다(웃음). 저도 이 영화를 찍고 나니까 왜 그분이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겠더라. 배를 타고 가는 장면은 다 바다 위에서 찍은 건데 스태프들은 쾌속정을 타지만 배우들은 통통배를 타야 한다. 그러다 보니 미리 촬영해야 하는 스태프들은 찍다가 근처 섬에서 고립되기도 했다(웃음). 정말 위험하고 시간도 많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래도 저희가 최대한 노력하고 고생해서 수중 장면 같은 건 정말 잘 만들었다고 자부한다. 처음엔 찍으면서 ‘모가디슈가 끝인 줄 알았는데 산 넘어 산이다’ 그랬다(웃음). 한번은 촬영 오퍼레이터가 자다가 꿈을 꿨는데 꿈에서 제가 스카이다이빙을 훈련시키고 있더라는 거다. 누가 그 사람보고 ‘너 이거 훈련해야 돼. 류 감독이 하늘에서 찍는대’ 이렇게 말하는 악몽이었다고(웃음).”
― 올 여름에 ‘밀수’를 포함해 텐트폴 영화가 연달아 개봉 중이지만 관객들의 영화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코로나 시국 이전으로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모든 영화인들에겐 현 상황이 부담이자 과제로 느껴질 것 같은데.
“요즘 굉장히 중요한 화두인 것 같다. 저는 옛날 사람이라 영화는 거대한 스크린에서 제대로 설치된 음향 시설과 다 같이 함께 보는 것, 그게 영화라고 생각한다. 때를 놓치면 극장에서 계속 관람할 수 없지 않나. 그런데 코로나 시국을 거치면서 영화에 대한 개념 자체가 많이 바뀐 것 같다. 요즘 현대 관객들은 너무 어린 시절부터 휴대폰으로 영상 매체를 보기 때문에 영화라는 개념이 바뀌어져 버렸는데, 어떻게 보면 영화의 사전적 정의는 20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니 세대가 바뀌면서 사람들의 개념 자체도 바뀌는 게 아닌가 싶다. 그것에 대해 ‘여러분은 틀렸다’ 할 수 없겠더라. 다만 부탁드리는 건 영화를 핸드폰으로만 보지 않으셨으면(웃음). 물론 그렇게라도 안 보시는 것보단 감사한 일인데, 가급적이면 만든 분들의 의도라는 게 잘 구현되는 곳에서 보셨으면 한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저는 극장이란 공간이 큰 변화를 맞이하지 않을까 싶다. 극장이 사라질 것 같진 않고, 형태의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극장용 상업영화도 그에 맞는 변화가 생길 것 같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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