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1일 치러진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장남 원태 씨의 결혼식(위), 지난 27일 최신원 SKC 회장 장녀 유진 씨 결혼식 후 가족사진 촬영 모습. | ||
비슷한 시기에 결혼식이 이어지다 보니 각기 다른 가문의 특징을 반영한 이들 결혼식의 이채로운 모습도 화제다.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부장은 충북대 정보통계학과 김태호 교수의 딸인 김미연 씨(27)와 결혼했다. 김 교수는 3대 중앙정보부장과 8, 9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재춘 씨의 장남이다. 재벌가와 정치가 집안의 결합인 셈이다. 이들은 경기여고 선후배 사이인 양가 어머니가 독실한 불교 신자로 오랫동안 친분을 쌓아와 서로를 소개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혼식은 영종도 인천공항에 인접한 대한항공 소유 ‘하야트 리젠시 인천’ 호텔에서 열렸다. 일반적인 재벌가 결혼식이 식장에서 식사까지 함께 하는 것과 달리 극장식으로 좌석을 배치하고 별다른 장식 없이 식장을 꾸며 간소해 보이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날 방명록은 전자서명으로 받는 독특한 풍경을 보였다.
정계와 재계의 결합이다 보니 김종필 박태준 이홍구 이한동 이수성 등 전직 총리만 7명이 참석했고,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재벌총수들이 함께 했다. 주한 프랑스 대사, 영국 대사가 참석하는 등 국내외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조양호 회장은 영어와 한국어로 감사의 말을 전해야 했다.
주례는 신랑 조원태 부장이 현재 재학 중인 미국 USC 경영대학원의 드보르닉 경영연구소장이 맡아 영어로 주례사를 낭독했다. 조양호 회장의 동생들은 아무도 참석 안하고 셋째동생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의 부인만 참석했다. 결혼식 축가는 유명 성악가 김동규 교수가 불러 눈길을 끌었다. 이날 결혼식을 취재하러 온 사진기자들은 입구에서부터 출입을 통제당했고, 10여 명의 취재기자들을 홍보실 직원이 1 대 1로 밀착마크하면서 언론을 통제했다.
▲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 장남 정도 씨 결혼 기념사진. 사진제공=중앙일보 | ||
결혼식에는 외부 인사를 초청하지 않은 채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재원 SK엔론 부회장, 최창원 SK케미칼 부사장 등 일가 친척만 참석했다. 혼주석에는 현재 독신인 최신원 회장과 형수인 고 최윤원 회장의 부인 김채헌 씨가 자리했다. 예식 후 가족 사진은 하객들을 배경으로 촬영해 이채로웠다.
초청된 남녀 성악가는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아리아를 듀엣으로 불러 분위기를 돋웠다. 신부 최 씨가 주례사가 진행되는 동안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이 외부 모니터에 잡혀 숙연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다. 재계의 관심이 크지 않다 보니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조용하게 치러졌다.
29일에는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의 장남인 홍정도 씨(28)의 결혼식과 LG 구본무 회장의 장녀 구연경 씨(28)의 결혼식이 치러졌다. 음력 5월 3일인 29일은 워낙 대길한 날로 알려져 월요일임에도 두 건의 재벌가 혼사가 벌어진 것.
홍정도 씨는 서울대 재료공학부 윤재륜 교수의 장녀인 윤선영 씨(26)와 결혼했다. 주례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보았다.
신라호텔에서 열린 홍 씨의 결혼식에는 홍석현 전 회장의 매형인 이건희 삼성 회장과 이 회장의 장남 이재용 상무를 비롯한 삼성의 주요 임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효성 조석래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이웅렬 코오롱 회장 등 재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이날 출입구에서 기자들의 출입이 통제되어 내부 취재는 허용이 되지 않았으나 따로 마련한 기자실에서 모니터로 현장중계를 볼 수 있게 배려해주었다. 세간의 관심을 의식한 듯 중앙일보 측에서 신랑, 신부 및 양가 부모들의 사진을 제공했다. 특이한 점은 폐백이 호텔이 아닌 인근인 한남동 홍 전 회장 자택에서 행해졌다는 것이다.
▲ 지난 29일 결혼한 구본무 LG 회장 장녀 연경씨와 신랑 윤관 씨. | ||
신랑 윤관 씨(31)는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한국노키아 부사장을 지내고 현재 블루런벤처스를 운영하는 주목받는 젊은 경영인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구 씨가 미국 유학 중일 때 만났다. 윤 씨의 아버지인 윤태수 씨(60)는 한때 알프스리조트의 오너이기도 했지만 경영난으로 사업에서 손을 뗀 상태다. LG가에 비해 평범한 집안이다 보니 구 씨가 부모를 설득하는 데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알려진다.
구 씨가 LG가 구본무 회장의 두 딸 중 첫째이다 보니 사위가 그룹 후계자로 거론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여자는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전통이 있는 데다 양자로 맞이한 구광모 씨가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LG그룹 경영에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구본무 회장은 피로연에서 “그저 두 사람이 금실 좋게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다”며 짧은 인사말을 전했다.
앞서 열린 결혼식은 맑은 날씨 속에서 곤지암CC 야외에서 단출하게 치러졌지만 단상 뒤에 꽃으로 장식된 아치를 세우고, 신랑 신부가 입장하는 길을 꽃잎으로 깔아 화려함을 살렸다.
돈으로 성을 쌓은 재벌가 결혼식의 공통점은 개별 부조를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 대부분 화환도 받지 않았다. 다만 찾아온 손님들에게 식사 외에 초콜릿이나 찹쌀떡 세트를 돌리기도 했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