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항공의 새 유니폼에 대한 승무원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3월 발표회 모습. | ||
한일 단거리 노선의 경우 이착륙 시간을 빼면 가용시간이 50분가량. 이 사이 승무원들은 음료 제공 서비스, 기내 면세점 세일즈 등 갖은 잡무들을 처리해야 하는데 식사제공까지 겹칠 경우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이런 상황에서 이 승무원의 셔츠 등 부위가 세로로 찢어졌다. 승객들이 이를 말해주었음에도 승무원은 옷을 고치러 갈 여유가 없었다.
“찢어지거나 말거나 어쩝니까. 지금 화장실 들어가서 스카프 풀고 블라우스 벗고 그거 꿰매서 다시 입고 나올 새가 있습니까. 그러려면 10분은 족히 걸립니다. 서비스 가용시간이 50분 남짓인데 그 시간안에 밀서비스에 세일즈까지 해야 하는데요. 스타킹이 올이 나가도 그거 갈아신을 1분이 없어서 그냥 서비스 나가야 하는 판에….”
승객들의 시선에도 어쩔 수 없이 속옷이 훤히 비치는 상태에서 일을 끝내야 했던 이 승무원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아무리 불황이래도 그렇지, 이젠 비행기에서까지 북창동식 서비스를 해서야 되겠습니까. 저 그날 무슨 색깔 브래지어 입었는지 다 보여드렸습니다(ㅠ.ㅠ).”
대한항공은 지난해 9∼10월 전 승무원의 유니폼을 새롭게 교체했다. 기존의 짙은 감색 유니폼을 베이지색과 청자색의 한결 밝고 세련된 유니폼으로 바꿨고 머리핀과 스카프 등 소품에도 신경썼다.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프랑코 페레의 작품으로 승무원 1인당 100만 원가량의 제작비용이 들었다.
그러나 세련된 이미지와는 달리 타이트한 사이즈와 스판 재질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스판 재질이 섞인 셔츠의 경우 다림질을 할수록 재질이 딱딱해지면서 결국은 쉽게 찢어진다는 것. 한 승무원은 “파랑색은 둘 다 찢어졌어요. 흰색 블라우스는 빨고 다리면 다릴수록 꼭 천이 풀 먹인 듯이 빳빳해지더니만. 이젠 급기야 쫙 찢어져 버리네요. 옷을 만지기도 조심스럽습니다”라고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더구나 찢어진 옷을 새로 지급받기 어려운 규정 때문에 셔츠 하나로 계속 버티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근속 연수에 따라 일괄적으로 지급하는 ‘제복포인트’로만 유니폼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금 구매는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또 재고가 충분치 않아 포인트가 있더라도 필요한 물품을 빨리 지급받을 수 없다고 한다. 심지어 승무원들 사이에서는 동대문시장에서 ‘짝퉁’ 셔츠를 파는 곳도 있다거나, 찢어진 부위를 공업용 테이프로 붙여 입는 방법까지 입으로 전수되고 있다. 승무원들은 포인트 제도를 개정하든지 사비로라도 구매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셔츠뿐 아니라 재킷과 치마 등 겉옷의 얼룩이 잘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세탁을 맡겨도 고추장, 녹차 등 얼룩이 지워지지 않아 결국은 버려야 했다고 한 승무원은 털어놓고 있다.
스타킹 구두 가방 등 다른 물품에서도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스타킹의 경우 비슷한 색상을 시중에서 구하기 힘들어 ‘포인트’로만 지급받아야 하고, 발이 불편한 구두로 인해 장시간 비행 후의 피로도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한 승무원은 “저두 이미 발병신이 되었습니다. 아무에게도 이 발을 보여주기가 민망합니다. 제발 대책을 마련해주셨으면 합니다”라는 호소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대한항공 노동조합은 새로운 유니폼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자 집중적인 조사를 했는데 특히 여승무원 구두 및 청자색 블라우스(셔츠), 남팀장 재킷 등의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간 사측에 건의를 했으나 유니폼 재질도 디자이너의 허락을 받아야 변경이 가능하도록 계약이 되어 있기 때문에 금방 개선하기는 힘들다는 답변을 들었다.
노조 측은 “현재 유니폼의 문제점을 정기 노사협의 안건으로 채택해 협상을 진행 중이기 때문에 자세한 사항은 추후 알려드리겠다”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지난해 3월 새로운 승무원 유니폼 발표회장에서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새로운 도약’을 선언하며 서비스의 품질을 개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정작 고객들을 대면하는 승무원들은 몸에 맞지 않는 유니폼과 구두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다.
“유니폼을 깔끔히 입고, 적당한 치수에 맞게 입고 다녀야 회사 이미지에도 좋지 않을까요. 정말 사비를 들여서라도 블라우스 재킷 스커트 바지 가방까지 여유롭게 입고 싶습니다. 해결책 좀 안 나옵니까. 예쁘게 제복을 입고 싶습니다.”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로 고객들을 대하고 싶다는 것이 승무원들의 바람이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