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대작 빅4 중 2편 동시 개봉 성적 초라…과거 흥행코드 답습 안 통해 손익분기점 ‘어려울 듯’
올해 여름 극장가의 분위기는 코로나19 여파가 남아있던 2022년보다 더 냉혹하게 흐르고 있다. 두 번이나 1000만 영화를 내놓은 ‘흥행감독’이란 타이틀도, ‘티켓 파워’를 발휘해왔던 스타 배우들의 이름값도 더는 통하지 않는다. 극장 관람료 상승, 더 빨라진 초반 입소문의 파급력 등으로 인해 확연히 달라진 관객 선호도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신과함께’ 쌍천만 주역들의 성적표
‘더 문’(제작 블라드스튜디오)과 ‘비공식작전’(제작 와인드업필름)은 여름 극장가에 출사표를 던진 ‘한국 영화 빅4’ 가운데 두 편이다. 매년 여름 극장가는 대대로 한국 영화들이 흥행을 주도해왔고 최근 5~6년 사이에는 4편의 한국 영화들이 나란히 대진표를 채우면서 이른바 ‘빅4’의 구도를 형성해왔다.
특히 관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7월 마지막 주부터 8월 첫 주 사이, 개봉 일을 선점하는 일은 투자배급사들이 사활을 걸고 매달리는 전략이다. 하지만 올해는 배급사 전략의 완전한 실패로 기록될 전망이다. ‘윈윈’은커녕 서로를 갉아먹는 ‘데스 게임’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8월 2일을 개봉일로 먼저 결정한 작품은 ‘더 문’이다. 7월 26일 출격한 ‘밀수’에 이어 두 번째로 개봉일을 공표하고 날짜를 선점했지만, 뒤늦게 김성훈 감독의 ‘비공식작전’이 같은 날 들어오면서 ‘2파전’에 돌입했다. 여름 극장에서 한국 영화 블록버스터 2편이 같은 날 개봉하는 건 이례적이다.
공교롭게도 ‘더 문’과 ‘비공식작전’은 ‘신과함께’라는 쌍천만 흥행작에 얽힌 인연으로 줄곧 비교 대상에도 놓였다. ‘더 문’의 김용화 감독은 ‘신과함께’를 통해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시리즈 쌍천만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연출자다. 2017년 개봉한 1편 ‘신과함께-죄와 벌’은 1441만 명, 2018년 공개한 후속편 ‘신과함께-인과 연’은 1227만 명을 동원했다. ‘비공식작전’의 하정우와 주지훈은 다름 아닌 ‘신과함께’ 시리즈의 주인공. 이를 통해 티켓파워를 갖춘 흥행 배우로 우뚝 섰다.
각별한 인연을 뒤로하고 8월 2일을 디데이 삼아 대결 구도를 형성한 이들은 서로의 작품에 대한 언급은 최대한 피하면서 신작 홍보에 집중했다. ‘신과함께’의 후광효과가 있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관객의 선택은 냉정했다. 개봉 2주 차 주말을 앞둔 8일까지 동원한 관객은 ‘더 문’이 42만 4421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비공식작전’이 83만 6498명에 불과하다. 200억 원대 제작비를 쏟아 부은 여름 텐트폴 영화가 2주째에도 100만 관객을 모으지 못한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특히 ‘더 문’의 상황은 심각하다. 올해 한국 영화 대작 4편 가운데 가장 많은 제작비가 들었는데도 50만 돌파가 어려운 상황. 한국 영화로는 처음 달 탐사를 다룬 SF장르를 내세웠지만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비공식작전’도 암울하긴 마찬가지. 코로나19로 인해 해외 로케도 어려운 상황을 뚫고 아프리카 모로코와 이탈리아 촬영을 진행하는 등 규모를 내세우고 극의 배경인 1980년대 분위기까지 연출했지만 관객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 두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약 600만 명으로 알려졌다. 해외 선판매 등을 통해 손익분기점을 낮췄지만, 두 편 모두 손익분기점 돌파는 불가능하다.
#‘쌍천만’ 후광효과도 옛말
‘더 문’과 ‘비공식작전’의 흥행 실패는 한국 영화 흥행 시장을 주도했던 감독들과 그들의 기획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드러낸다. 특히 김용화 감독은 ‘신과함께’는 물론 ‘국가대표’(839만 명), ‘미녀는 괴로워’(608만 명) 등 연출작 대부분을 흥행으로 이끈 대표적인 감독이다. 하지만 ‘더 문’에 대한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개봉 초반 눈물을 짜내는 신파 설정에 대한 반감이 급속도로 형성되면서 관객의 선택권에서 멀어졌다. 우주와 달의 세계를 구현한 뛰어난 VFX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아볼 틈도 없이 관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
‘비공식작전’을 만든 김성훈 감독 역시 영화 ‘터널’(712만 명)과 ‘끝까지 간다’(345만 명)로 실력을 인정받은 흥행 연출자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해외 로케로 이뤄진 대작 ‘비공식작전’의 연출을 맡고 하정우와 주지훈이라는 스타 배우의 캐스팅까지 가능했지만 정작 관객의 반응은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배경만 레바논으로 옮겨 ‘터널’과 비슷한 영화를 또 만들었다는 비판, 앞서 ‘모가디슈’와 ‘교섭’에서 봤던 익숙한 설정이 반복이란 지적의 벽을 넘지 못했다. 티켓파워를 논할 때 늘 첫 번째로 꼽힌 하정우의 존재감도 올여름 극장에서는 사라졌다.
‘더 문’과 ‘비공식작전’의 흥행 실패는 과거 흥행작을 답습하는 기획으로는 더는 관객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낸다. 영화계의 근심도 늘어만 간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영화에 대한 입소문 확산의 속도가 더 빨라졌다”며 “완성도를 갖추고 재미있는 영화는 뒤늦게라도 챙겨보는 관람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엘리멘탈’ 같은 장기 흥행작이 나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극장 관람료 상승과 접근하기 쉬운 OTT 콘텐츠의 증가로 인해 극장에서 볼 영화를 선택하는 관객의 기준이 더욱 엄격해진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다”고 짚었다.
올해 여름 한국 영화 ‘빅4’ 가운데 손익분기점을 가장 먼저 넘기는 작품은 류승완 감독의 ‘밀수’다. 곧 400만 관객을 돌파할 예정. 물론 코로나19 이전 상황에 비춰본다면 영화 자체의 폭발력이 낮은 편이지만, 줄줄이 참패한 ‘더 문’과 ‘비공식작전’과 비교하면 손익분기점 돌파라는 안정권 진입 자체가 성공적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광복절인 15일에는 3편의 영화가 또 개봉한다. 배우 정우성의 감독 데뷔작인 ‘보호자’와 유해진‧김희선의 로맨틱 코미디 ‘달짝지근해: 7510’,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다. 전체적으로 관객이 줄어든 극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무차별적인 배급 경쟁이 향후 영화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려의 시선이 교차하고 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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