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김지운, 한지민-김석윤, 황정민-류승완 수차례 호흡…신뢰로 의기투합, ‘기시감’ 부작용도
9월 개봉하는 영화 ‘거미집’을 연출한 김지운 감독의 말이다. ‘거미집’은 송강호와 김지운 감독이 함께 작업한 5번째 영화다. 1998년 영화 ‘조용한 가족’으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26년 동안 무려 5편의 영화를 함께했다. ‘영화 동지’라는 표현 외에 그 어떤 설명도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오직 영화로 인생을 함께 해온 사이다.
감독과 배우들의 잦은 재회가 최근 부쩍 늘어나고 있다. 작품 제작 편수가 늘어난 영향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믿음’과 ‘기대’를 갖고 함께 작업할 상대는 한정돼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송강호와 김지운 감독처럼 5편을 합작한 경우는 흔하지 않지만 3~4편씩 연이어 작업하는 파트너들은 여럿이다. 배우 한지민은 최근 방송을 시작한 JTBC 드라마 ‘힙하게’에서 김석윤 감독과 3번째 만났고, 배우 황정민은 최근 촬영을 마친 영화 ‘베테랑2’를 통해 류승완 감독과 4번째 호흡을 맞췄다.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아는 관계이자, 작품을 함께하면서 나누는 호흡과 신뢰의 힘으로 가능한 재회다.
#송강호와 김지운 감독 “창의성으로 서로를 끌어당긴다”
송강호는 한 번 작업한 감독들과 다시 재회해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걸 누구보다 즐기는 배우다. 봉준호 감독과는 ‘살인의 추억’부터 ‘괴물’ ‘설국열차’ ‘기생충’까지 4편을 함께했고 박찬욱 감독과는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박쥐’ 등 3편을 합작했다. ‘우아한 세계’부터 ‘관상’ ‘비상선언’까지 3편을 함께한 한재림 감독도 있다.
하지만 송강호와 가장 많은 영화를 함께한 연출자는 김지운 감독이다. 배우로 주목받기 전 조연으로 참여한 ‘조용한 가족’을 시작으로 첫 주연작인 ‘반칙왕’으로 호흡을 이었고, 이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밀정’까지 인연은 계속됐다. 송강호에게도 김지운 감독에게도 5번째 작업한 상대는 서로가 유일하다.
두 사람은 만날 때마다 도전을 거듭한다.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번 ‘거미집’은 1970년대를 배경으로, 다 찍은 영화의 결말을 다시 찍으면 작품이 더 좋아질 거라는 강박에 시달리는 ‘김 감독’이 검열 당국의 방해와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 제작자 등에 둘러싸여 미치기 일보 직전의 악조건 속에서 촬영을 감행하는 이야기다. 송강호는 주인공 ‘김 감독’ 역을 맡아 마치 김지운 감독이 자신을 투영한 듯한 인물을 연기한다. 영화는 지난 5월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돼 호평 받았다.
사실 감독과 배우의 재회는 함께 작업한 작품이 성공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 면에서 송강호와 김지운 감독은 앞선 4편 모두 흥행에 성공했고, 5번째 작품인 ‘거미집’ 역시 사전 호평에 힘입어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김지운 감독은 칸 국제영화제에 참석해 “1997~1998년 충무로에는 새로운 감수성으로 무장한 영화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런 활력의 요소를 표현할 배우가 필요한 때 송강호 배우가 있었다”고 밝혔다. 유연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함께할 때마다 성과도 냈기에 5편을 함께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송강호는 김지운 감독과 첫 만남인 ‘조용한 가족’ 시나리오를 보고 “지금껏 한국영화의 모든 패턴과 사고를 붕괴시키는 창의력”을 느꼈다고 했다. 바로 그 창의성은 두 사람이 26년간 꾸준히 작업하는 원동력이 됐다.
#한지민, 영화‧드라마 오가며 김석윤 감독과 3편째
여배우가 한 명의 감독과 꾸준히 작업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때문에 한지민과 김석윤 감독의 3번째 만남은 더 주목받는다. 2011년 영화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로 시작한 둘의 인연은 2019년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로 이어졌고, 지난 12일 방송을 시작한 JTBC 토일드라마 ‘힙하게’로 계속되고 있다.
한지민은 김석윤 감독과 작업한 영화와 드라마로 모두 성공을 맛봤다. 이번 ‘힙하게’ 역시 초반인데도 시청률이 상승 곡선에 진입했고, 동시 공개하는 넷플릭스 순위에서도 ‘오늘 가장 많이 본 콘텐츠’ 1위를 단숨에 차지했다. 이번 드라마는 범죄 없는 청정마을의 수의사(한지민 분)가 동물과 사람의 엉덩이를 만지면 그들의 과거를 볼 수 있는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갖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한지민이 ‘힙하게’ 출연을 택한 이유는 김석윤 감독이라는 존재에 있다. 최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그는 “작품의 의미, 캐릭터에 매력을 느껴 출연을 결정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번엔 김석윤 감독님이어서 택했다”며 “감독님의 현장은 즐겁고 행복하다. 감독님과 함께해본 배우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다른 작품에서 느끼지 못한 현장의 재미, 만족스러운 결과까지 안겨주는 감독과의 작업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어려울 때 힘이 돼 준 존재, 배우와 감독
배우는 때때로 감독에게 큰 힘이 돼 주는 존재다. 촬영 현장에서는 물론 감독이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배우 황정민과 류승완 감독이 그렇다. 이들은 2010년 영화 ‘부당거래’를 시작으로 2015년 ‘베테랑’, 2017년 ‘군함도’를 함께했다. 최근 ‘베테랑’ 후속편 촬영까지 더하면 총 4편의 작품을 합작한 파트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배우와 감독은 각자의 위치에서 상대방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돼 주기도 한다. 1341만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 ‘베테랑’이 탄생할 수 있던 배경이다. 류승완 감독과는 꼭 영화 작업이 아니더라도 각별한 친분을 나눈 황정민은 어느 날 영화 ‘베를린’ 촬영 현장을 찾았다. 남북한 첩보 액션극이란 장르의 무게감으로 인해 힘겹게 촬영을 이어가는 감독의 모습을 현장에서 본 황정민은 “다음엔 재미있고 신나는 영화를 같이 해보자”고 제안하면서 힘을 북돋아줬다. 그렇게 시작한 영화가 바로 통쾌한 액션극 ‘베테랑’이다.
두 사람은 ‘군함도’로 다시 만났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소재의 작품. 쉽지 않은 시도였고, 현장을 책임지는 감독으로서도 압박과 부담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에도 류승완 감독의 곁에서 든든한 지지자이자 버팀목이 돼 준 인물이 다름 아닌 황정민이었다. ‘군함도’ 개봉 당시 류승완 감독은 “황정민이라는 배우가 없었다면 촬영을 끝까지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큰 힘이 되어 주었다”고 깊은 애정과 신뢰를 드러냈다.
물론 배우와 감독의 잦은 재회는 이들이 함께한 작품이 ‘성과’를 내고, 대중으로부터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간과할 수 없는 위험 요소도 있다. 반복된 재회가 기시감을 일으키거나, 예상 가능한 조합이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기 때문. 최근 여름 극장가에 한국영화 대작으로 출격한 하정우‧주지훈 주연의 ‘비공식작전’이 극의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아쉽게 흥행에 실패한 데도 이런 ‘기시감’이 일정 부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비공식작전’은 700만 흥행작인 ‘터널’을 함께한 하정우와 김성훈 감독이 재회한 작품. 극의 무대만 레바논으로 바뀌었을 뿐 ‘터널’의 구조, 분위기와 흡사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라는 반응 속에 100만 관객을 가까스로 넘기면서 손익분기점 돌파에 실패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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