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성 요청 때마다 LA서 샌디에이고로…“지독한 노력 덕에 맹활약”
수비와 주루는 데뷔 시즌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올 시즌에는 공격까지 상승세를 타며 미 스포츠전문매체 ‘블리처리포트’가 선정한 (8월 31일 현재) MVP 투표 ‘TOP 10’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MLB 하이라이트 분석을 전하는 ‘MLB 센트럴’에서 마크 데로사 전 미국 대표팀 감독은 김하성을 향해 “리그에서 빠른 공에 잘 대응하는 타자 중 한 명”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하성이 이렇듯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개인 타격코치인 최원제 코치가 존재한다.
최원제 코치는 2008년 2차 1라운드 8순위로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계약금 2억 5000만 원, 연봉 2000만 원을 받았을 정도로 기대를 모은 투수 유망주였다. 고교 시절 장충고 에이스였지만 프로 데뷔 후 부상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고민 끝에 타자로 전향했는데 성공으로 향하는 길이 멀고 험난하기만 했다.
그러다 우연히 메이저리거들의 개인 타격코치로 알려진 덕 래타의 기사를 접하게 된다. 최 코치는 삼성 시절 2017시즌을 마친 뒤 자비로 미국 LA 인근에 있는 덕 래타 코치의 훈련장에서 개인 레슨을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타격의 답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귀국 후 팀 훈련에 합류해선 다시 길을 잃고 만다. 그가 미국까지 건너가 개인 레슨을 받고 온 데 대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 지도자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결국 2018시즌을 마치고 팀에서 방출된 최 코치는 한국에서 더 이상 선수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다시 미국으로 향한다. 이번에는 덕 래타 코치 밑에서 타격 레슨이 아닌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 선수 생활을 접고 그도 타격코치로 제2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려 했던 것이다.
이후 최 코치는 미국 LA에서 ‘더 볼파크’라는 야구 아카데미를 열고 직접 유망주들을 지도했다. 그런 그에게 먼저 연락을 취한 이가 김하성이었다. 선수 시절의 최원제는 잘 몰랐지만 타격코치 최원제에 대한 소문을 듣고 김하성이 손을 내민 것이다. 김하성은 이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최 코치와의 만남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당시 MLB가 노사 문제로 직장폐쇄 조치가 되는 바람에 2022년 스프링캠프가 이전보다 늦게 시작됐다. LA에 머물며 2주가량 (최)원제 형 아카데미에서 하루 2차례씩 훈련하며 타격 폼을 수정해 나갔다. 사실 너무 간절했다. 2021년의 아쉬움을 2022년 성적으로 증명해 보이고 싶었기 때문에 타격 폼 수정이 필요했고, 마침 원제 형을 통해 내가 바라던 타격 폼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
당시 하루 2차례씩 최 코치한테 레슨을 받은 선수는 김하성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김하성은 많은 연습량으로 인해 손에 물집이 잡히면 그걸 터트린 후 밴드를 붙이고 다시 방망이를 잡았을 정도로 지독한 면모를 보였다.
김하성은 자신의 신체적인 특징을 살린 타격 폼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이렇게 풀어냈다.
“나는 체구가 작아 공을 잡아 놓고 치는 게 아니라 몸을 다 이용해 타구를 멀리 치는 방식을 선호했다. 강한 전진을 통해 강한 회전이 이뤄진다는 타격 이론을 믿고 있었다. 그러다 (최)원제 형을 만나 왜 그런 스윙을 해야 하는지, 왜 그렇게 회전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타격 폼을 수정할 때 상체를 교정하는 게 아니라 하체의 움직임으로 스윙을 바꾸더라. 그렇게 노력한 부분이 스프링캠프 때 시범경기에서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 이후 2022시즌 내내 원제 형이 직접 야구장으로 오거나 아니면 전화통화로 타격과 관련된 조언을 들었다.”
LA에 거주하고 있는 최 코치는 김하성이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샌디에이고로 향했다. MLB는 개인 코치가 그라운드로 내려가 선수가 팀 배팅 훈련을 할 때 뒤에서 봐주고 선수와 대화하는 걸 허용한다. 많은 선수가 팀 타격코치 외에 개인 레슨을 받는 터라 최 코치가 샌디에이고 경기장에서 김하성의 타격 훈련을 지켜보는 건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다음은 최 코치의 설명이다.
“김하성이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구단에서도 내가 야구장에 나타나면 크게 환대해준다. 지금은 필드뿐만 아니라 실내 타격훈련장에서도 김하성의 훈련을 지켜보고, 선수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한다. 한국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지만 MLB에선 조금 더 오픈된 마인드로 선수의 실력 향상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 같다. 샌디에이고 구장을 방문할 때 종종 팀 코치들도 내게 다가와 김하성 관련 질문을 건넨다. 이런 자유로운 문화가 김하성의 성적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MLB 센트럴’에서의 마크 데로사 전 미국 대표팀 감독은 김하성이 95마일(152.8km/h) 이상의 공을 이겨낸 비결로 안정적인 타격 자세, 특히 과감한 레그킥을 꼽았다. 김하성은 샌디에이고 입단 첫 해 KBO리그에서 해오던 레그킥을 포기한 적이 있었다. 당시 성적 부진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팀 코치들이 레그킥 대신 찍어놓고 공을 맞추라는 조언을 했다는 후문이다. 성적이 좋지 않았던 김하성으로선 팀 코치의 조언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관련해 최원제 코치가 설명을 이어간다.
“2022시즌 앞두고 김하성과 처음 만나 훈련을 하는데 레그킥을 하지 않길래 그 이유를 물었더니 팀 코치들 얘기를 해 주더라. 그래서 한국에서 하던 대로 타이밍 맞추기 편한 레그킥을 하자고 제안했다. 레그킥을 하지 않을 경유 유연성이 떨어져 움직임이 심한 공에 대처하기 어렵다. 내가 한 말에 김하성이 수긍했고, 이후 줄곧 레그킥을 한 채 스윙한다.”
김하성은 5월 25일 전까지만 해도 모든 홈런이 좌측 방향의 당겨친 홈런이었다. 그러다 5월 25일 워싱턴 원정 경기에서 상대 선발 트레버 윌리엄스의 92마일 포심 패스트볼을 받아쳐 타구를 우중간으로 보내는 홈런을 기록했다. 최 코치는 이 홈런이 정말 인상 깊었다고 말한다.
“아주 잘 친 홈런이었다. 그동안 좌측으로 향하는 홈런만 나와 김하성에게 타구를 모든 방면으로 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스윙 메카닉을 잘 이해한 덕분에 우측 홈런이 나올 수 있었다. 김하성은 지금 빠른 공에 완벽히 적응했다. 가장 긍정적인 점은 2스트라이크 이후에도 자신의 스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2스트라이크 이후에는 삼진당하지 않으려고 공에 맞추는 편인데 김하성은 그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공을 골라낸다. 멘탈이 아주 대단한 선수다.”
8월 22일 김하성은 마이애미 말린스전에서 4타수 2안타 4타점의 맹활약을 펼치며 팀의 6-2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김하성은 MLB 데뷔 후 3년 만에 만루 홈런을 터트렸다. 팀이 1-0으로 앞서던 2회말 1사 후 3연속 볼넷이 만들어진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섰다가 2스트라이크 볼카운트에서 상대 투수 라이언 웨더스의 3구째 시속 155.5km의 빠른 공을 강하게 잡아 당겨 왼쪽 관중석에 꽂히는 만루 홈런을 만들었다.
“보통 선수의 기록이 중단되면 슬럼프에 빠지기 마련이다. 당시 김하성은 16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벌이다 8월 13일 애리조나 원정 경기에서 무안타를 기록하는 바람에 연속 안타가 멈췄다.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선수는 당시 힘든 시기를 겪었다. 그래서 내가 김하성에게 “긴 시즌을 치르다 보면 사이클이 떨어질 때도 있다”는 말로 위로를 건넸는데 당시 김하성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떨어졌으면 올려야죠. 형 어서 샌디에이고로 와주세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김하성이 미국 진출 후 실력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더 깊이가 있어진 것 같다. 보통 멘탈이 아니다.”
김하성은 빠른 공뿐만 아니라 클레이튼 커쇼(LA 다저스), 애덤 웨인라이트(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의 브레이킹 볼에도 하체를 이용한 스윙으로 잘 대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최 코치는 그동안 김하성이 몸의 균형을 잡는 훈련을 많이 한 덕분에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으려는 공들에 좋은 반응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브레이킹볼에 잘 대응하면서 빠른 공에도 자신감을 키웠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샌디에이고 홈구장인 펫코파크에서 김하성 타석 때 “하성 킴”의 응원 구호를 듣는 건 이제 자연스런 일이다. 샌디에이고 팬들은 헬멧이 벗겨질 정도로 허슬 플레이를 즐기는 김하성에게 진심으로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최근에는 헬멧이 벗겨지는 김하성을 위해 구단에서 맞춤 헬멧을 제작해줬을 정도로 특급 대우를 해준다. 그런 김하성을 지켜보는 최 코치의 심경은 어떠할까.
“자랑스럽다. 올 시즌 너무 많은 수비를 감당하고 있어 체력적으로 힘들 텐데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감당해내는 모습이 정말 자랑스럽다. 김하성이 MLB에서 인정받고 있는 건 숨은 노력과 지독한 연습 때문이다. 그런 점들은 다른 선수들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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