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룹 내 입지를 강화시키고 계열사 지분 확보 등 일련의 작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해 왔지만 결정적으로 편법상속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간 공들인 계열사 지분 ‘우회확보로’도 이번 사태로 거의 막힌 형국이다.
가장 큰 문제는 턱없이 부족한 지분 확보 문제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를 통한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그룹 총수로서 안정적 지배권을 가지려면 이들 계열사 중 한 곳의 지분을 다량 확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 사장의 주요 계열사 지분은 기아차 1.99%와 현대차 지분 0.003%에 불과하다. 정 사장이 기아차 지분 1.99% 확보하는 데 들어간 돈만 해도 1000억 원이 넘는다. 기아차 지분 10% 이상을 확보하려면 수천억 원 이상이 필요한 셈이다.
정 사장은 기아차 지분 확보를 위해 그룹 계열사인 글로비스와 본텍 지분을 활용해왔다. 정 사장은 지난 2001년 글로비스 지분 59.85%와 본텍 지분 30%를 확보했는데 이후 그룹의 전폭적 물량지원 하에 두 계열사가 급성장세를 기록하면서 주가가 폭등했다. 정 사장은 양사 지분을 적절히 팔아가며 기아차 지분을 사들인 탓에 ‘편법 승계’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현대차 사태 직후 1조 원 사회환원 계획이 발표되면서 글로비스 지분을 전부 내뱉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다른 비상장 계열사 지분을 확보한 뒤 그룹 차원의 지원을 통해 주가를 띄워 차익실현을 하기엔 ‘이미 한번 겪어본’ 여론의 눈초리가 따가울 수밖에 없다. 정 회장 지분을 물려받는 방법도 있지만 절반에 가까운 상속세가 부담이다.
이와 더불어 내부 추스르기에도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27일 정 회장 구속 이후 그룹 총수 부재 기간이 길어지자 그룹 내부에 알력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알력설의 양축은 계열사 임원 A 씨와 현직 고위 임원 B 씨.
A 씨는 현대정공 출신으로 정 회장의 오랜 가신으로 통한다. A 씨의 현대정공 후배격인 B 씨 역시 정 회장의 핵심측근으로 분류되며 이번 현대차 사태에서도 검찰수사선상에 올라 적지 않게 고생했다. A 씨와 B 씨 두 인사 모두 정 회장의 비서생활을 역임한 인물들로 정 회장의 의중을 잘 아는 인사들로 통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런데 최근 ‘B 씨와 그의 인맥이 현대차 후계자로서 정의선 사장이 아닌 정 회장 사위들 중 한 사람을 옹립하기 위해 물밑작업을 펼친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지난해 기아차 실적 부진 등 아직 경영능력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정 사장 대신 정 회장의 사위가 검증받은 CEO임을 들어 그를 적극 밀어주려 한다는 것. B 씨가 검찰조사과정에서 살신성인 대신 정 회장에 불리한 정황들을 수사당국에 제공한 것이 알려져 정 회장이 분노했다는 이야기도 나돈 바 있다. 이는 이번 수사과정에서 고초를 겪고 있는 B 씨 인맥이 ‘아들 대신 사위’라는 논리를 내세워 정 회장 측에 응수하고 있다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물론 미확인 소문이다.
그런데 이 소문의 진원지가 다름 아닌 A 씨 측이라는 역소문마저 등장한 상태다. 정 회장의 오랜 가신 생활을 거쳐 계열사 임원으로 물러나 있는 A 씨와 정 회장의 신진 측근세력으로 주목받아온 B 씨 간의 ‘신·구 알력’이 빚어낸 이야기들이라는 것. 이를 현대차 사태의 발화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MK 1세대 경영진이 퇴진하고 난 뒤 그 공백을 메우려는 입지선점 경쟁이 MK사단 주니어급 경영진에서 벌어졌고 이 와중에 충성경쟁과 ‘제보’, 현대차 납품업체의 반발 등 현대차 주변부에 거대한 갈등의 벽이 생겨나 이번 사태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소문의 진위를 떠나 알력의 주된 원인 중 하나로 정 사장의 경영 자질이 꼽힌다는 점에 주목하는 시선도 있다. 몇몇 재계 인사들은 “지난해 정 사장의 기아차 실적 부진은 삼성 이재용 상무의 e삼성 실패와 롯데 신동빈 부회장의 세븐일레븐 실적 저조 같은 ‘황태자들의 실패 사례’에 비해 몸집이 더 커 보인다”고 입을 모은다.
현대차 내부의 이 같은 잡음들이 정 회장 복귀 시점에 진화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수시인사 단행으로 후계 기반을 닦았던 정 회장이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졌던 내부 균열에 의한 ‘대형 사고’에 대한 책임추궁을 할 것이기 때문. ‘절대적 카리스마’로 통해온 정 회장이 면전에서 벌어진 이런 내부 균열 봉합작업을 2세 경영자의 손에 맡기지 않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