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준서-김택연-전미르 순 지명…150km대 강속구 투수 9명 1라운드에 이름 올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지난 14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2024 신인 드래프트를 열었다. 110명의 선수들이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2022시즌 성적의 역순으로 지명권을 가진 팀들은 한화 황준서(장충고)-두산 김택연(인천고)-롯데 전미르(경북고)-삼성 육선엽(장충고)-NC 김휘건(휘문고)-KIA 조대현(강릉고)-KT 원상현(부산고)-LG(키움) 전준표(서울고)-키움 김윤하(장충고)-SSG 박지환(세광고)을 지명했다.
신인 드래프트 지명 순위가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 전체 1순위 선수가 110번째에 뽑힌 선수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높을 수는 있겠지만 성공 여부는 프로 입문 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생존해내는 선수들의 몫이다. 2024 신인 드래프트 관련 뒷얘기들을 모아봤다.
이번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야구계에선 1라운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가진 한화의 선택을 주목했다. 가장 유력한 후보가 장충고 황준서였는데 올 시즌 황준서보다 인천고 김택연의 성적이 뛰어났고, 최근 U-18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김택연이 에이스 역할을 맡아 좋은 성적을 거두자 한화의 선택이 황준서가 아닌 김택연이 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나 한화는 예상대로 황준서를 낙점했다. 왼손 투수 황준서는 다양한 변화구와 정교한 제구력을 앞세워 일찌감치 고교 최대어로 손꼽혔다. 올해 고교야구 15경기 49⅔이닝을 던져 6승 2패 평균자책점 2.16의 빼어난 성적을 거뒀다. 좌완임에도 최고 구속이 시속 150㎞를 넘는다. 우완 최고의 강속구 투수인 문동주와 김서현을 보유한 한화가 좌완 황준서를 선택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전체 2순위 지명권을 보유한 두산은 오른손 투수 김택연을 호명했다. U-18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동메달의 주역인 김택연은 즉시 전력감으로 꼽힐 만큼 올 시즌 최고의 구위를 선보였다. 두산 김태룡 단장은 김택연을 지명한 이유로 “제구력이 좋고 스피드까지 뛰어나다”면서 “빠르면 2, 3년 내 두산의 스토퍼(마무리)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두산은 유니폼에 ‘2024 김택연’이란 이름까지 새겨 준비했을 정도로 김택연 지명에 ‘올인’했다. 김택연은 올해 고교 대회 성적만 놓고 보면 황준서보다 우위다. 13경기서 7승 1패 평균자책점 1.13 WHIP(이닝당 볼넷+안타 허용률) 0.74를 기록했다.
이번 드래프트를 앞두고 가장 관심을 받았던 팀은 전체 3순위 지명권을 갖고 있는 롯데였다. 경북고 전미르를 선택할지 아니면 장충고 육선엽을 선택할지 관심이 모아졌는데 롯데의 선택은 전미르였다.
전미르는 투수와 타자를 겸하는 ‘이도류’ 선수다. 올해 투수로 18경기(67⅔이닝) 5승 1패 평균자책점 1.32, 타자로 27경기 타율 3할4푼6리(81타수 28안타) 3홈런 32타점 22득점 2도루 OPS 1.032를 기록했다.
롯데 성민규 단장은 드래프트 이후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우린 원래부터 전미르였다”며 말문을 열었다.
“올해 후반부에 육선엽이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전미르가 갖고 있는 장점이 더 뛰어나다고 판단했다. 스카우트 팀이 오랫동안 투수 전미르와 타자 전미르를 분석했고, 모든 부문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터라 별다른 고민 없이 전미르를 지명할 수 있었다.”
투타를 겸하고 있는 전미르가 프로에선 어떤 포지션을 소화할지 궁금했다. 성 단장은 처음에는 ‘이도류’ 전미르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고, 이후 투타를 겸해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지 여부는 선수 스스로 증명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전미르가 투타 겸업을 힘들어한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은 투수로 더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지만 나중에는 전미르가 야수로만 활약한다고 해도 롯데는 아쉬울 게 없다는 입장이다. 우타자 자원이 넉넉하지 않은 팀 사정상 우타자 전미르도 충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성 단장은 “전미르는 승부욕이 엄청난 선수다. 지금 롯데는 전미르처럼 강한 투지의 유망주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라운드에는 또 다른 ‘이도류’ 선수가 눈에 띈다. 전체 6순위 KIA의 지명을 받은 강릉고 조대현이다. 조대현은 메이저리그 오타니 쇼헤이의 이름을 빗대 ‘조타니’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투수로 18경기에 등판해 62⅔이닝 76탈삼진 7승 무패, 평균자책점 1.29를 기록했고, 타자로는 21경기에서 21안타 12타점 13득점 타율 2할8푼8리 OPS 0.766의 성적을 남겼다.
드래프트 전까지만 해도 KIA가 조대현보다 부산고 원상현(KT 지명)한테 더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KIA 스카우트 팀에서도 조대현과 원상현을 놓고 고민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여러 논의 끝에 원상현보다 조대현이 더 팀에 필요한 선수라고 의견을 모았다는 후문이다. KIA 심재학 단장은 1라운드에서 조대현을 호명한 뒤 단상에서 조대현과 악수 대신 포옹으로 지명을 축하했다. 심 단장은 조대현을 양현종의 뒤를 잇는 우완 최다승 투수로 성장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KIA는 타자 조대현보다 투수 조대현에 더 높은 점수를 줬다.
1라운드에서 투수가 아닌 세광고 내야수 박지환을 뽑은 SSG도 지명 전까지 고민이 많았다. 팀 상황을 감안한다면 야수 보강에 초점을 맞추는 게 맞지만 그때까지 대학 투수 최대어로 꼽히는 송원대 좌완 정현수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SSG의 결정은 박지환이었고, 2라운드에서도 삼성 이병규 수석코치의 아들인 휘문고 외야수 이승민을 지명하면서 관심을 모았다.
이번 드래프트에는 JTBC '최강야구'를 통해 얼굴을 알린 송원대 정현수(롯데), 독립구단 연천 미라클의 황영묵(한화), 성균관대 원성준·고영우(키움)가 드래프트 신청을 했고, 원성준을 제외한 3명의 선수가 프로 지명을 받았다. 이들 중 가장 높은 순위에 지명받은 선수가 2라운드 롯데 부름을 받은 왼손 투수 정현수다.
성민규 단장은 2라운드에 정현수를 뽑은 것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만약 우리 팀에서 지명하지 않았다면 정현수는 다른 팀에서 데려갔을 것이다. 원래 1라운드 후보로도 거론됐던 선수라 그 선수 지명을 놓고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고졸 출신의 투수에 비해 장래성이 떨어질진 몰라도 정현수만큼 완성형의 투수를 찾기가 쉽지 않다.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하고, 그중 커브는 매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좌완 중간 계투가 넉넉하지 않은 팀 상황에서 정현수의 존재는 적잖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KT 위즈는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원상현(부산고)과 2라운드 육청명(강릉고)을 지명했는데 드래프트 행사 직후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구단 로고가 박힌 공에 사인해서 부모님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어느새 6년째 진행되고 있는 감동적인 이벤트다.
원상현과 육청명은 KT 구단 관계자가 전달한 공에 사인을 했고 사인공에 메시지를 작성해 현장을 찾은 부모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했다. 육청명이 아버지 육성철 씨에게 전한 사인볼에는 ‘이제 돈 제가 벌겠습니다’란 내용이 적혀 있다.
원상현과 육청명은 2022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맞붙은 적이 있다. 당시 원상현은 부산고 선발투수로 등판해 8⅓이닝 3피안타 3볼넷 5탈삼진 무실점 105구 역투 속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대회 최우수선수상, 우수투수상을 차지했다. 육청명은 7회 마운드에 올라 9회까지 무실점 호투를 펼쳤지만 타선이 뒷받침되지 않아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육청명은 2학년까지만 해도 150km/h에 육박하는 공을 던지며 강릉고의 에이스로 활약했는데 불의의 팔꿈치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랐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그라운드 밖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이후 혹독한 재활 끝에 마운드에 복귀해선 149km/h의 공을 뿌리게 됐고, 2라운드 전체 17번으로 KT 유니폼을 입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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