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은행에서 같은 직급의 서울은행 출신 여행원들에게만 유니폼을 입게 해 논란이 일고 있다.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아직도 통합 갈등으로 홍역을 앓고 있는 하나은행에서 여직원들의 유니폼이 여성 차별, 서울은행 출신 직원 차별 문제와 겹치면서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은행에서 여직원들이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창구에서 고객을 대하는 일이 많은 지점에서는 대부분의 여직원들이 유니폼을 입지만 고객과의 직접 접촉 업무가 없는 본점에서는 격식에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로이 입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은행은 금융권에서 유일하게 본점에서도 여직원들이 유니폼을 입도록 하고 있다. 남자 직원의 경우는 일반 회사처럼 각자 알아서 정장을 입고 있다.
문제는 여직원의 경우 유니폼을 입는 직원이 있는가 하면 입지 않는 직원이 있다는 것. 이 때문에 유니폼을 입는 직원은 하급직, 유니폼을 입지 않는 직원은 상급직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어 불만을 사고 있다.
이 같은 문제는 하나은행만이 독특하게 유지하고 있는 ‘FM/CL’ 직급이 원인이다. 과거 은행들은 창구 업무만 담당하는 ‘여(女)행원’ 제도를 유지해 왔으나 1992년 남녀고용평등법 시행과 함께 점차 사라졌다. 그러나 하나은행은 이와 유사한 제도를 FM/CL 직급으로 계속 유지해 왔다. FM/CL은 지점 창구 직원인 FM(Floor Marketing)과 은행 본점에서 근무하는 CL(Clerk)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FM/CL은 ‘종합직’보다 초임연봉이 1000만 원 이상 적다.
하나은행은 FM/CL에 남자 직원도 있기 때문에 남녀차별이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여자가 98%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FM/CL로 입사한 남자 직원들은 곧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문제는 같은 종합직 여직원이라도 하나은행 출신은 유니폼을 입지 않지만 서울은행 출신은 유니폼을 입고 있다는 것. 이 때문에 서울은행 노동조합에서는 서울은행 출신을 차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서울은행 노조는 “사내에서 ‘유니폼이 계급장’이라는 말이 생겼다. 유니폼을 입으면 낮은 지위의 계급장을 달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서울은행 출신 여직원들은 하나은행에 통합된 2002년 12월 이후부터 유니폼을 입고 있다. 현재 여직원의 경우 FM/CL은 2000명 선, 비정규직 1000명 선, 종합직의 경우 하나은행 출신은 40∼50명, 서울은행 출신은 570명이다. 서울은행 노조는 “하나은행 출신 40∼50명을 위해 나머지 3500명이 유니폼을 입고 있는 상황이다. 차라리 모두 다 똑같이 유니폼을 입는 편이 좋지 않은가”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경영진이 유니폼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서울은행 출신 여직원들을 FM/CL 직군으로 전환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기왕 유니폼을 입고 있으니 모두 FM/CL 직군으로 통합하려는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하나은행은 이미 보람은행을 합병할 때 여직원들을 모두 FM/CL 직급(당시는 ‘일반직’으로 부름)으로 전환시킨 바 있다.
▲ 김종열 행장 | ||
노조에 따르면 당시 직원들과의 공감대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서울은행 출신 직원 1200여 명 가운데 360명에 대해 참석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공식 통보가 아니라 점장 또는 간부들을 통해 비공식 라인으로 참석을 유도하도록 명단이 내려왔다고 노조는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당시 참석을 요구받은 직원들은 이를 정리해고 수순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고 전해진다.
이미 하나은행은 3월에도 서울은행 출신 여직원들을 대상으로 FM/CL 직군 전환에 대한 수요 조사를 한 바 있다. 한 여직원은 당시 지점장으로부터 이를 거부하면 벽지 발령, 승진 배제, 업무 불이익이 있다는 발언을 듣기도 했다고 노조는 전했다. 서울은행 노조는 “경영진의 이 같은 태도는 여성을 직원으로 보지 않고 저임금 노동력으로만 보는 퇴행적 여성관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꼬집고 있다.
이에 대해 김종열 행장은 6월 30일 3분기 조회에서 “서울은행 출신은 가계영업과 창구업무 경험자가 많아 거기에 맞춰 일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하나은행 측은 이미 FM/CL 직군과 종합직의 임금 차이가 많이 해소되었고, 승진의 기회도 더 많아 FM/CL을 차별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편 서울은행 출신이 지속적으로 승진에서 배제되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5월 직군전환 시도가 무산된 뒤 29일 인사가 단행되었는데 하나은행 출신 종합직 6명, 서울은행 출신 종합직 9명, FM/CL 직군 47명이 승진했다.
노조는 “하나은행 출신이 300명 중 6명이 승진한 것에 비해 서울은행 출신은 1200명 중 9명이 승진한 것이다. 서울은행 출신 직원들 중에는 1970년생 이상자가 700명이나 되는 등 경력, 나이가 많음에도 승진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이 늘어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10월 체육대회에서 하나은행 출신 상급자의 서울은행 출신 하급자에 대한 폭행 시비가 벌어지는 등 통합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서울지방노동청이 김승유 이사회 의장을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검찰에 기소의견을 낼 정도로 심각하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검 공안부에서는 이번주 내에 기소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통합보다 통합 이후가 더 어렵다는 은행 간 인수합병 사례에서 하나은행도 예외가 아닌 셈이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