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검 청사 입구. | ||
지금까지는 ‘검찰이 이헌재 사단 몸통을 향해 가기 위해 손발을 잘라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제 남은 것은 몸통이다. 검찰이 외환은행 본점과 매각 당시 은행장이었던 이강원 한국투자공사 사장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자 ‘이 전 부총리 소환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평이 나돌기도 했다.
그런데 검찰청사 주변에선 벌써부터 ‘수사가 손발 자르기로 끝날 수 있다’는 시각이 등장하고 있다. 검찰이 김재록 씨 사건 수사초기부터 ‘궁극적 목표’로 삼았던 것으로 알려진 이헌재 전 부총리와 이헌재 사단 시니어급 인사들 옭아매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이헌재 전 부총리가 검찰의 주 수사 타깃이 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과 관련해 검찰은 이미 ‘대출 비리 의혹’을 명분으로 이 전 부총리의 계좌추적 작업을 벌였으며 이 전 부총리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도 이뤄진 상태다.
수사당국뿐만 아니라 정치권 또한 ‘이헌재 사단 몰이’에 양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10월 정기 국감을 앞두고 이헌재 사단과 외환은행 건의 상관관계를 파헤치려는 국회의원들이 제법 많아졌다. 정치권 한 켠에선 ‘검찰 수사가 미비하다면 특검도 불사한다’는 목소리마저 들려온다.
그러나 일각에선 “뭐가 있다 해도 이 전 부총리의 위법 행위를 증명하기가 간단치 않을 것”이란 의견도 제기된다. 이 전 부총리 계좌추적에 대해 몇몇 검찰 관계자들은 “이 전 부총리 같은 경제전문가가 자신의 계좌에 흔적을 남길 리 없다”고 입을 모은다. 계좌추적 착수 당시 검찰청사 주변에선 “김재록 씨가 조사과정에서 이헌재 사단 시니어급 인사에 대한 결정적 진술을 했다”는 이야기가 파다하게 돌았던 바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검찰은 이 전 부총리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 이헌재 전 부총리(왼쪽)와 오호수씨. | ||
그러나 이 전 부총리를 상대로 수사당국이 처벌할 수 있을 정도의 정황이나 진술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검찰청사 주변에서 번져나가고 있다. 조금은 성급한 시각일 수도 있지만 ‘이헌재 전 부총리를 일단 소환 조사해서 진술을 확보하고 이헌재 사단의 다른 시니어급 인사를 최종 목표로 삼아 엮어 넣은 뒤 수사를 마무리할 가능성’마저 나도는 실정이다.
대어급 인사 수사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질 경우 이헌재 전 부총리와 동갑내기 친구인 오호수 인베스투스글로벌 회장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오 회장이 ‘이헌재 사단 내 진정한 실력자’라는 이야기가 업계에 파다하게 나돌았던 점이나 김재록 씨가 인베스투스글로벌 회장직에서 물러나자마자 그 자리를 오 회장이 이어받은 점 등이 오 회장에 대한 사법당국의 시각을 점점 날카롭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계좌추적을 하면 길어도 보름 안에는 결과물이 나오는 게 상례’라는 수사관계자들의 전언을 감안할 필요도 있다. 이 전 부총리 계좌추적 시작 시점이 6월 중순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수사당국이 적지 않게 애를 먹고 있다는 관측도 가능하다.
검찰 일부 보직에 대한 8월 인사 소문도 이 같은 시각을 거들고 있다. 최근 ‘삼성에버랜드 관련 수사를 8월 중에 마무리할 것’이란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도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선 ‘검찰 고위층이 정몽구 회장 석방으로 사실상 현대차 비자금 용처 수사를 마무리지었다’는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검찰이 최근에 벌인 대형사건들이 대부분 ‘8월 중에 종결될 것’이란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이는 이헌재 전 부총리에 대한 정황이나 진술 포착이 용이하지 않을 경우 결국 ‘몸통은 놔둔 채 팔 다리만 자르고 끝날 수 있다’는 관측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김재록 씨 수사초기부터 ‘검찰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은 이헌재 사단’이란 이야기가 파다했던 점에 주목할 필요도 있다. 이 전 부총리 얼굴에서 근심이 가시기엔 아직 시기상조라는 지적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