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지법 “셀트리온 도급계약, 실제로는 근로자 파견”…방역 하청업체 직원 “휴머니즘 경영 철학 바란다”
"고용을 하라면서 청구는 기각한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네요." 소송을 제기한 프리죤 야간클리닝팀 직원(원고)은 재판정을 나와 어리둥절해했다. 선고 직후라 판결문을 받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변호인과 통화를 한 뒤에야 표정이 밝아졌다. "저희가 이긴 거라고 하네요."
판결 내용이 알쏭달쏭한 이유는 재판부가 불법파견은 인정했지만,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는 아니라고 판단해서다. 프리죤 야간클리닝팀 소속 2명은 원청업체인 셀트리온으로부터 직접 지휘·감독을 받았다며 셀트리온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원고 변호인은 주위적 청구로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주장했다. 이와 함께 예비적 청구로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불법파견에는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는 하청업체 근로자가 처음부터 묵시적으로 원청업체와 근로계약을 맺었다고 보는 것을 말한다. 하청업체가 원청업체에 종속된 껍데기뿐인 회사일 때 인정된다.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인정되면 입사일부터 원청업체의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한다.
불법파견은 도급계약을 맺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근로자 파견에 해당하는 경우를 말한다. 하청업체 근로자가 원청업체의 지휘·감독을 받았거나 제조업 직접생산공정 업무 등 파견 금지 업종에 해당할 때 인정된다. 불법파견이 인정되면 파견 기간 제한에 따라 입사일 2년 후부터 원청업체의 직접고용의무가 생긴다.
재판부는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는 인정하지 않았다. "프리죤의 존재가 형식적, 명목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원고 변호인은 "원고의 입사 경위, 근무형태 등에 비추어 볼 때 셀트리온은 위장도급 형식으로 원고를 사용하기 위해 프리죤을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도급계약이 실제로는 근로자 파견에 해당한다며 불법파견은 인정했다.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원고 사례는 고용노동부의 근로자 파견 기준 5가지를 모두 충족한다고 조목조목 지적했다. 재판부는 △셀트리온이 직·간접적으로 원고 업무 수행에 상당한 지휘·명령을 했다 △의약품 생산 업무와 연동되는 생산시설 방역 업무는 셀트리온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돼 있다 △통상적인 도급관계와 달리 셀트리온은 프리죤 야간클리닝팀 인원 증감과 노무 관리에 개입했다 △프리죤 야간클리닝팀의 구체적인 업무는 셀트리온의 구체적인 지시에 따라 특정될 수밖에 없다 △프리죤은 야간클리닝 업무와 관련해서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제약·바이오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큰 선례가 될 수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한미약품 등 제약·바이오업체 대부분이 방역 업무를 하청업체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방역업체 직원이 불법파견 소송을 제기한 건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판결 선고 이후 일요신문과 인천에서 만난 프리죤 야간클리팅님 직원 2명은 담담한 모습이었다. "셀트리온에서 틀림없이 상소할 거예요. 상소 안 하면 제일 좋겠지만(웃음). 1심에 4년이 걸렸으니까 2심도 4년 이상 갈 거라고 생각해요. 힘들겠지만 시작했으니 끝까지 가야죠."
이들은 프리죤 야간클리닝팀 다른 동료들에게도 불법파견 소송 동참을 제안했었다. 하지만 모두들 부담스러워했다. 프리죤 측 모함도 받았다. "회사(프리죤)에서 직원들 모아놓고 우리가 회사를 협박해서 합의금 몇억 원 받아내려고 소송을 걸었다는 소문이 돈다고 이야기했어요. 합법적으로 해고할 수 있다고도 말했고요. 그러니까 다들 겁을 많이 먹었죠. 직원들 중에 저희를 인격적으로 모욕한 사람도 있었고요."
불법파견 소송을 의식한 듯한 프리죤 측 움직임도 이어졌다. 자료를 복사하고 이메일을 확인할 수 있는 사무공간 출입권한이 야간클리닝팀에선 반장과 부반장 등 일부 인원으로 제한됐다. 또 프리죤 측은 2020년 초 직원들로부터 보안서약 서명을 받았다. 회사 정보를 외부에 누설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이들이 보안서약 요구를 받은 건 각각 2009년, 2011년 입사한 후 처음이었다. 불법파견 증거가 될 수 있는 근무 기록, 회사 이메일 내역 등 반출을 막기 위한 의도로 의심했다.
프리죤 야간클리닝팀에서 근무했던 직원들을 재판에 증인으로 부르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현재는 다른 직장에 다니는 옛 동료 대다수는 "퇴사한 회사 꼴도 보기 싫다"며 증언을 거부했다. 증인으로 나오겠다는 약속을 번복한 경우도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끊겼어요. 전화번호도 바꾸더라고요. 그래서 집에도 찾아갔어요. 우연의 일치겠지만 이사까지 갔더라고요."
어렵게 찾은 증인은 이들의 주장에 신빙성을 더하는 역할을 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증인의 증언에 의하면 2011년경부터 2013년경까지 셀트리온 직원이 야간클리닝팀 반장과 부반장을 직접 지명했다. 월간계획표상 업무 외에 추가 업무는 셀트리온 직원이 출력하여 야간클리닝팀에 전달했다. 당시 야간클리닝팀 반장이나 부반장은 팀원들에 대한 지휘·감독과 상부 보고 권한이 있는 직책이 아니었다. 현장에서 팀원들과 같이 업무를 수행했다"고 판시했다.
이들은 불법파견 소송을 시작한 계기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프리죤에서 일하다보니 근로자에 대한 인간적인 대우를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계기였죠. 원청-하청, 정규직-비정규직 등 근로자 지위 문제의 근본적인 초점은 인간 존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셀트리온에 바라는 경영 철학이 휴머니즘이기도 합니다. 회사 후배들이 조금 더 인간적인 존중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셀트리온은 10월 13일을 기준으로 항소장을 제출하지 않았다. 민사소송에서 항소장은 판결문을 받은 날로부터 2주일 안에 내야 한다. 셀트리온 불법파견 판결문 도달 날짜는 지난 10월 5일. 항소 기한은 10월 19일이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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