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스코세이지·미야자키 하야오 신작 뜨거운 관심…‘더 넌2’ ‘톡 투 미’ 등 늦가을 호러도 눈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흥행 돌풍 예고
올가을 시네필들 마음을 가장 들뜨게 만들었던 두 거장의 오랜만의 귀환이 눈에 띈다. 먼저 ‘기생충’ 봉준호 감독이 제일 존경하는 감독으로 알려진 마틴 스코세이지가 ‘아이리시맨’(2019) 이후 4년 만에 선보인 신작, ‘플라워 킬링 문’이 10월 19일 개봉했다.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된 이 작품은 20세기 초 석유로 갑작스럽게 부를 얻게 된 미국 오세이지족 원주민들에게 벌어진 끔찍한 비극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진정한 사랑과 말할 수 없는 배신이 교차하는 서부 범죄극으로 어니스트 버크하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와 몰리 카일리(릴리 글래드스톤)의 이루어질 수 없는 로맨스 서사가 눈에 띄는 작품이다.
거장의 연출과 더불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로버트 드 니로, 릴리 글래드스톤 등 레전드 배우들이 만들어낸 연기 시너지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장대한 서사는 공개 직후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호응을 얻어냈다. 206분으로 최근 개봉한 영화 가운데 가장 긴 러닝타임을 가졌지만 “긴 시간이었음에도 단 한순간도 자리를 뜰 수 없었다”는 평을 받을 만큼 압도적인 흡인력을 자랑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으로 한국 대중에게도 매우 친숙한 지브리 스튜디오의 미야자키 하야오도 신작과 함께 돌아온다. 2013년 ‘바람이 분다’ 이후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 은퇴 의사를 밝혔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10년 만의 신작이자 그의 ‘은퇴 번복작’이라는 별칭을 얻은 장편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일본을 배경으로 어머니를 화재 사고로 잃은 열한 살 소년 마히토가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의 고향으로 향하면서 겪게 되는 신비한 판타지 모험을 담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지브리 스튜디오가 제작한 장편 애니메이션 사상 최장 제작 기간, 최대 제작비로 먼저 이슈된 바 있다. 7월에 먼저 개봉한 일본에서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애니메이션 작화가 과거 ‘모노노케 히메’부터 ‘하울의 움직이는 성’으로 대표되던 미야자키 하야오 작화의 최고 수준에 달한다는 호평이 이어지기도 했다.
특히 홍보 프로모션이나 사전 시사회 없이 곧바로 개봉한다는 점에서 영화팬들의 또 다른 주목을 받고 있다. 앞서 일본에서도 포스터 외엔 어떠한 정보도 없이 개봉했던 만큼 한국 역시 “작품 자체만으로 관객의 평가를 받겠다”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방침에 따라 시사회 없이 10월 25일 개봉이 예정됐다. 정보가 없는 것이 도리어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인지, 10월 20일 오전 기준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예매량은 10만 장을 훌쩍 넘으며 흥행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서늘한 바람과 함께 ‘늦가을 호러’
보통 호러 영화의 개봉 시기는 여름을 예상하기 쉽지만, 늦가을 서늘한 바람과 함께 등골 오싹한 작품을 즐기는 것은 최근 수년 사이 호러 영화팬들의 루틴이 됐다. 특히 올가을 개봉한 작품들은 한국에도 탄탄한 팬덤을 거느린 ‘유니버스’의 신작과 호러 영화계의 한 획을 그었다는 평을 받은 작품의 50주년 기념 속편, 그리고 호러 명가로 두각을 드러낸 배급사가 선보이는 ‘2023년 최고의 호러 서프라이즈’까지 꽉 채워진 라인업을 자랑한다.
먼저 9월 8일 개봉한 ‘더 넌2’는 ‘컨저링’ ‘애나벨’ 시리즈로 유명한 컨저링 유니버스의 9번째 작품이다. 컨저링 유니버스 사상 가장 강력한 악마인 ‘발락’을 내세운 이 작품은 5년 전 개봉한 ‘더 넌’의 후속작으로 다소 박한 평가를 받았던 1편에 비해 “전편을 능가하는 속편”이라는 호평을 얻어내며 특히 북미에서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또 엑소시즘을 다루는 호러 영화의 바이블로 불리는 ‘엑소시스트’(1973)의 50주년 기념 속편이자 리부트 작 ‘엑소시스트: 믿는 자’가 10월 18일, 호러 명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A24의 신작 ‘톡 투 미’가 11월 1일 연달아 개봉 일정을 이어가고 있다. ‘엑소시스트: 믿는 자’가 오랜 호러 팬들의 전작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면 ‘톡 투 미’는 MZ세대들의 발칙한 공포를 다루며 1020 젊은 관객을 정조준하고 있다.
SNS를 점령한 ‘빙의 챌린지’에 빠져든 10대들이 귀신을 몸에 실은 뒤 90초를 넘어가면 안 된다는 룰을 어기면서 벌어지는 죽음보다 끔찍한 공포를 담은 ‘톡 투 미’는 그 동안 서양 호러 영화 속 공포의 근원을 공감하기 어려워했던 아시안 관객들에게도 먹힐 만큼 압도적으로 불길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선보인다. 특히 앞서 개봉한 북미에서 ‘유전’(2018) ‘미드소마’(2019) ‘라이트하우스’(2019) 등 독특한 호러 작품을 공개해 왔던 배급사 A24의 역대 최고 흥행 호러 영화로 자리매김한 소식이 알려지며 국내 호러 팬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다양성 영화'도 있다
한편 코로나19 팬데믹이 잦아들었어도 한국 영화계의 빙하기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2023년은 상반기 내내 흥행 기상 관측도가 연일 ‘흐림’에 머물러 있었다. 올 한 해 극장 관객만으로 손익분기점을 넘은 한국영화는 ‘범죄도시3’ ‘밀수’ ‘잠’ 등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극성수기인 여름과 추석 극장가의 힘을 받지도 못했고 연말과 내년 설 연휴 개봉도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미 국내 대형 배급사와 제작사 사이에서는 흥행 실패로 인한 투자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투자사에서 허리끈을 졸라매기 시작한 지 오래여서 이른바 ‘창고 영화’로 불리며 팬데믹 시기 개봉이 늦춰졌던 작품들의 늦은 개봉이 이어지면서 신작 제작에는 다들 몸을 사릴 것이라는 예측이다. 여기에 정부의 지원 예산마저 빨간불이 켜진 상태에서 영화계의 시름은 깊어만 가고 있다.
그런 만큼 일반 대중들의 관심을 크게 끌기 힘든 국내외 다양성 영화의 입지도 지금보다 더욱 좁아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023년 하반기를 기준으로 개봉했거나 개봉을 앞둔 다양성 영화로는 ‘프리 철수 리’(10월 18일 개봉) ‘버텨내고 존재하기’(11월 1일 개봉) ‘약속’(11월 1일 개봉) ‘만 분의 일초’(11월 15일 개봉) 등이 있지만 대형 자본 작품도 관을 할당받기 어려워진 최근 영화계 분위기상 소규모 작품들이 관객들의 선택을 받긴 더 힘들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난관을 마주하긴 했어도 여전히 한국 영화계와 관객들의 수준을 향한 세계의 기대는 높다. 단순히 흥행 성적만으로 가치를 가리게 된다면 영화계는 결국 제작사와 관객 모두 돈 벌 수 있는 영화에만 집중하게 될 것”이라며 “OTT 플랫폼의 성장이나 티켓 가격의 상승 등으로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이 더 줄어들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관객들에게 ‘이런 세계도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다양성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작품인 만큼 영화관에서 그것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 지금보다 더 길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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