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8월 개성 시범관광으로 박연폭포를 찾은 관광객들. 북한의 사업자 변경 요구로 개성 관광 사업이 묘하게 꼬이고 있다. | ||
북한이 사업자 변경을 요구한 배경으로 정치권과 재계에선 주저 없이 ‘돈 문제’를 꼽는다. 지난해 북측은 현대그룹과 개성 시범관광을 진행하면서 ‘본 사업이 시작되면 관광객 1인당 200달러씩 받겠다’는 입장을 통보했다. 현재 금강산 관광이 1인당 15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현대그룹 입장에선 어림없는 액수다.
9개월이 지난 현 시점에서 북측이 롯데관광 카드를 다시 들고 나온 것은 현대 측에서 북측이 원하는 답변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지난해 시범관광 이후 북측과 구체적인 관광객 입장료에 대한 협상을 벌이지 않았다”고 밝힌다. 즉 롯데관광까지 들먹여가며 북측이 원했던 ‘현대가 알아서 값 올려주기’ 의도가 먹히지 않은 셈이다.
현재 북측이 제기하는 롯데관광으로의 사업자 변경 주장은 지난해와는 분위기가 달라 보인다. 정치권과 재계에선 “현대에 대한 압박 수준을 넘어 사업 독점권을 깨려는 것”이라 입을 모은다.
지난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만나 고 정몽헌 회장을 애도하며 대북 사업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던 바 있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 대에서 이뤄진 협상의 정통성을 단숨에 허물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북측은 그동안 9개월이란 시간을 통해 충분히 뜸을 들였다고 판단한 셈이다.
일각에선 현정은 회장이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인 정몽준 의원으로부터 현대상선 경영권 위협을 받은 점 또한 북측을 자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북측에 여러 차례 다녀온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소속 한 관계자는 “경영권 방어에 급급한 현정은 회장을 보며 북측이 짜증났을 것이다. 지난해 백두산 관광개발을 위해 삼지연 공항 개보수 공사비용으로 남측에서 수십 억원을 보냈지만 이것도 모자란다는 게 북측 입장이다. 돈 많은 관광사업자와 손잡고 일하고 싶을 것”이라 밝혔다.
그래서 북측이 롯데관광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롯데관광 김기병 회장이 방북하려다 미사일 발사로 무산됐지만 실무자 간 접촉은 빈번하게 이뤄져 왔다는 전언이다. 정치권과 재계 인사들은 “롯데관광이 롯데그룹 계열사는 아니지만 신격호 회장의 자본동원 능력과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다. 신 회장의 일본 시장 인프라를 통한 일본 관광객 유치도 북측이 눈여겨보는 대목”이라고 입을 모은다.
롯데관광은 현재까지 ‘현대와 북측의 관계가 정리되지 않으면 사업에 참여할 수 없다’는 원론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선 북측의 ‘1인당 200달러’ 주장이 롯데관광과 벌인 비공식협상 결과물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이 불허하면 개성관광 사업자 선정은 이뤄질 수 없다. 대북사업을 위해선 일단 통일부의 허가가 필요하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인사는 “금강산 관광의 열 배가 넘는 돈을 주면서 개성관광 사업자를 바꾼다면 이는 국민의 혈세 지출로 이어지는 것인데 정부의 그런 처사를 두고 볼 것 같은가”라며 어림도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종석 통일부장관은 전임자인 정동영 전 장관에 비해 대북정책에서만큼은 좀 더 실리적인 노선을 표방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돈 더 주고 개성관광을 무리하게 뚫는 것이 남북관계에 큰 플러스가 되는 것도 아닌데 정부가 괜한 짓 하지 않을 것”이라 평했다.
정치권 상황이 절대로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롯데관광이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개성관광을 추진하는 롯데관광의 속내엔 ‘자사 가치 띄우기’ 의도가 있을 것이란 평도 나온다. 롯데관광은 지난 6월 9일에 상장을 했다. ‘개성관광 사업자 선정 경쟁을 치열하게 벌일 것’이란 평가 속에 상장 첫날 2만 5500원을 기록한 롯데관광 주가는 이후 5만 원까지 뛰어올랐다가 7월 27일 현재 2만 5250원을 유지하고 있다.
신격호 회장 여동생의 남편인 김기병 회장이 이끌고 있는 롯데관광이 개성관광 사업을 통해 관광업계 강자로 설 수 있을 지에도 시선이 쏠린다. 롯데그룹을 등에 업지 않은 롯데관광그룹은 현대그룹과 비교하면 사세가 떨어져도 한참 떨어지기 때문이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대북사업에 먼저 들어가 온갖 손해를 다 보면서 지금까지 이끌어왔는데 지금 약간의 균열이 보인다고 해서 고 정주영 명예회장 때부터 맺어온 북한과의 합의가 흔들릴 것으로 보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북문제를 주로 다루는 정치권 인사들 사이에선 북측이 현대와의 합의를 깨기 위한 묘수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는 시각이 대세로 자리잡은 상태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