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밖 임수정 ‘귀요미’ 편하고 의지돼…결혼 생각 있지만 ‘자만추’ 애매, 당분간 싱글ing”
“직전까지 했던 작품들이 판타지, 스릴러, 액션처럼 장르물이 많았었죠. 조금 현실성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사람이 아닌 캐릭터를 몇 번 하다 보니까 이젠 사람인 캐릭터를 하고 싶기도 했고요(웃음). 인간끼리의 로맨스는 전생 이런 거 생각 안 해도 되고, (연인을) 1600년씩 안 기다려도 되잖아요(웃음). 다만 그럼에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해내는 것만은 같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영화 ‘싱글 인 서울’은 혼자가 좋은 파워 인플루언서 영호가 혼자는 싫은 출판사 편집장 현진(임수정 분)과 함께 싱글 라이프에 관한 책을 만들며 벌어지는 현실 공감 로맨스를 그린다. “나한테 딱 맞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며 싱글이 인생의 정답이라고 믿는 영호는 잘나가는 논술강사이자 ‘싱글 예찬론자’다. 그런 그가 생활방식도, 가치관도 다르지만 어딘지 모르게 끌리는 현진을 만나면서 혼자가 좋지만 연애도 하고 싶은 모순을 깨나가려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시사회에서부터 관객들의 많은 공감을 받았다.
“사실 저도 영호처럼 싱글로 있게 된 지 꽤 됐거든요(웃음). 싱글 생활이 편하고 익숙해진 게 영호와 많이 닮아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도 처음부터 살갑고 다정한 스타일이 아니어서 영호처럼 무심한 듯 툭툭 챙겨주는 타입이기도 하고요(웃음). ‘싱글 인 서울’이 현실적인 로맨스를 그리고 있지만 그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 제가 오히려 뭔가를 더 하려 하진 않았어요. 이전 장르물에선 캐릭터의 요소를 살리려는 연기를 했다면, 이번 ‘싱글 인 서울’의 영호에겐 그냥 실제 이동욱의 모습들이 담겨 있는 식이었죠.”
‘싱글 인 서울’의 연출을 맡은 박범수 감독은 이동욱이 자신의 모습을 영호에게 옮기기 전부터 그를 영호 역으로 ‘찜’ 해놓고 있었다고 했다. “이동욱은 ‘진짜 솔로’”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그의 발언을 두고 이동욱은 “제가 초라해 보여서 그랬나 보다”라며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감독님이 보시기에 제가 누가 봐도 ‘쟤는 싱글이구나’ 싶을 정도로 초라해 보여서 그러셨나 봐요(웃음). 사실 제 싱글 라이프는 많이 평범하거든요. 그냥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보고 싶은 영화를 맘대로 봐요. 연애라는 게 저나 제 삶에 있어서 크게 중요하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싱글 인 서울’로 조금씩 연애 세포를 재활하고 있긴 하죠(웃음).”
그렇게 사라진 줄만 알았던 이동욱의 연애 세포를 간지럽힌 장본인은 그의 상대역, 임수정이었다. 로맨스 영화로는 독립영화인 ‘더 테이블’(2017) 이후 6년 만에 관객들 앞에 선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이동욱은 안정감과 더불어 잊어버린 설렘을 동시에 느꼈다고 말했다. 특히 현진의 손을 잡고 고깃집 밖으로 나가는 신은 이동욱이 꼽은 가장 설레는 신이었다고.
“카메라 밖의 임수정 배우님에겐 기본적으로 ‘귀여움’이 있어요. 현진이처럼 엉뚱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순간순간 ‘아, 참 귀여운 사람이다’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 연기할 때 더 많이 도움을 받았고요, 함께하면서 ‘이 배우와 연기하는 상대방 배우들은 정말 편하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사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정말 편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영호가 현진의 손을 잡고 고깃집 밖으로 나가는 신에서 저도 살짝 설렜는데(웃음), 보시면 영호가 현진을 바라보는 눈에도 설렘이 담겨 있어요. 로맨스 영화는 끊임없이 눈빛으로 관객들에게 설렘을 드리고, 설득을 해야 하니까 의도를 조금 넣었죠(웃음).”
사랑을 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현실 공감 로맨스’를 내세우고 있는 만큼 연기한 배우들 역시 작품을 보고 옛 사랑을 떠올렸다는 뒷이야기도 있었다. 자다가도 생각나면 이불을 걷어찰 만큼 유치하고 꼴불견이었던 그때를 떠올리며 상대에게 전해지지 않을 사과를 마음속으로 곱씹기도 했다. 시사회에서 먼저 관람한 관객들 역시 같은 반응인 걸 보고 놀랐다는 이동욱은 어린 시절 사랑에 풋내기 같았던 자신을 떠올리며 “바보 같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가 ‘싱글 인 서울’을 보며 느낀 건 사람의 기억은 완전하지 않다는 거예요.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만 기억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나 본능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사실 연애라는 게 그런 거 같아요. 사람과의 관계를 늘 자기에게 좀 더 유리한 관점, 늘 내 성향에 따라 바라보게 되는 거죠. 저 역시 20대 초반에 했던 연애들이 영호의 연애처럼 되게 엉성하고, 치기 어리고, 바보 같았겠구나 생각했어요. 어떤 남성분들은 보시고 ‘이불 킥’할 뻔했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웃음). 아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다들 그러시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후회와 반성을 넘어선다면 작품을 통해 활성화된 연애 세포를 어떻게든 잘 활용할 수 있지는 않을까. 아직은 영호처럼 싱글의 삶에 편히 녹아들어 있다는 이동욱은 아마 당분간은 쭉 이대로일 것이라며 웃음 지었다. 당장 연애보다는 내 삶, 내 일, 그리고 자신을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팬들이 더 중요하다는 것. 데뷔 25주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 후회는 하되 미련은 남기지 않고 앞으로 걸어가기 위해서는 지금의 삶에 계속 충실할 것이라는 게 이동욱의 이야기다.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로 사람을 만나고 싶으냐는 말씀을 하시는데 이게 진짜 애매해요. 제가 저를 결정사(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주야장천 소개팅만 할 수도 없고, 자만추를 하려고 하니 제 생활반경은 또 뻔하고…. 이러니 제가 지금 이러고 있지 않나 싶네요(웃음). 사실 결혼하고 싶단 마음은 있지만 그게 곧이란 생각은 안 들어요. 제가 한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맡은 바를 충실히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그 정도로 성숙한 사람은 아직 아닌 것 같거든요. 후회가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미련만큼은 절대 남기지 않으면서, 25년 동안 열심히 해왔던 것처럼 그냥 그렇게 계속 지내고 싶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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