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진 태광 회장 (위), 신동빈 롯데 부회장 | ||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너무 비싸게 주고 샀다는 것. 롯데는 우리홈쇼핑 주식 398만 2796주를 4381억 원에 사들였다. 주당 정확히 11만 원이다. 이는 경방이 태광그룹과 지분경쟁을 벌이면서 막판에 동원산업과 전방으로부터 급히 사들였다고 발표한 가격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5만∼6만 원이던 우리홈쇼핑 주식이 올해 들어 두 배 가까이 급등한 것이다.
경방이 롯데에 지분을 넘길 것을 고려해 막판에 고가로 매입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한때 제기되었다. 그러나 7월 3일 경방이 전방과 동원산업으로부터 인수한 3.25%의 지분은 경방이 아니라 롯데쇼핑이 인수한 것이었다. 이미 롯데와 경방의 인수 협상이 은밀히 진행되고 있었던 것.
그간 경방과 롯데의 우리홈쇼핑 매각 협상이 물밑에서 진행돼 오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경방은 신세계와 롯데, 외국계 펀드 두 곳과 매각과 관련해 접촉했다고 한다.
고가매입 논란이 일자 롯데는 “미래가치를 보고 산 것이다. 1994년부터 티커머스 등 온라인 유통업이 각광받을 것을 예상하고 홈쇼핑 진출을 준비해 왔다. 고객정보의 통합으로 마케팅이 더욱 정교해지고, 물류의 통합으로 가격절감 요소가 생긴다”는 입장이다.
한편 경방이 지난 2004년 5월 방송위원회로부터 재허가를 받을 때 3년 간 회사를 팔지 않겠다는 각서를 쓴 것으로 알려지면서 우리홈쇼핑 인수전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당시 롯데가 우리홈쇼핑을 인수한다는 소문이 나돌자 방송위가 경방에 각서를 요구한 것이었다. 경방은 “태광의 경영권 위협을 막아내기가 힘들어 매각할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우리홈쇼핑을 두고 경방과 지분경쟁을 벌여왔던 태광은 이런 사실이 밝혀지자 경방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 “경방이 태광에서 우리홈쇼핑에 대한 적대적 M&A를 시도하고 있다고 계속 문제를 제기해 왔지만 우리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되짚어보면 경방이 방송위에 쓴 각서가 있으니까, 명분을 만들기 위해 쇼를 벌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태광이 주총에서 재투자를 주장했지만 오히려 경방은 이사회를 장악하고 순이익을 100% 현금배당하는 등 회사 발전에는 신경 쓰지 않는 부도덕함을 보였다”는 것.
공정위 기업결합 심사도 변수다. 애초 우리홈쇼핑의 설립 목적이 중소기업의 유통채널 활성화를 위한 것이었는데 롯데가 홈쇼핑에 뛰어들면서 ‘명품 홈쇼핑’을 표방한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명품 같은 고가 상품을 산골마을이나 농촌까지 뻗은 방송채널을 이용해 판패하는 것은 오히려 시너지 효과가 감소될 수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방송위와 공정위의 심사를 통과한다고 해도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홈쇼핑을 방송할 수 있는 채널의 확보. 홈쇼핑은 공중파 사이에 낀 S급 채널이냐, 아니냐에 따라 매출이 30%가 차이날 정도로 채널 확보전이 치열하다. 때문에 CJ홈쇼핑, 현대홈쇼핑은 SO 사업을 병행하고 있고 GS홈쇼핑도 지난해부터 뒤늦게 SO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롯데는 국내 최대 SO 사업자인 태광과 벌써부터 불편한 관계다. 롯데가 우리홈쇼핑을 인수하자마자 태광 계열의 티브로드가 송출하는 일부 지역에서 우리홈쇼핑만 하루 동안 방송이 나오지 않는 사고가 터지기도 했다. 티브로드 측은 ‘사고’라고 밝히고 있지만 롯데에 대한 시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태광의 티브로드는 전국 310만 가구를 확보하고 있다. CJ케이블넷의 200만, 현대 HCN의 110만, GS홈쇼핑의 40만 가구를 합한 것만큼의 파워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태광은 SO와의 궁합이 맞는 우리홈쇼핑 인수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태광과 롯데가 사돈관계임을 들어 모종의 밀약이 있었던 것은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태광 이호진 회장의 장인인 신선호 씨가 롯데 신격호 회장의 동생이기 때문. 태광은 이런 보도에 대해 불쾌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 회장이 신 회장을 만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고 있는데 롯데와 경방의 언론플레이다. 재벌가에서는 형제끼리 싸우는 일도 비일비재한데 평생 한두 번 볼까말까한 장인의 형이 그렇게 친한 관계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롯데와 우리홈쇼핑은 “지분 경쟁에서 더 이상 어쩌지 못할 바에는 태광도 대주주로서 우리홈쇼핑이 잘 되도록 하는 것이 서로 윈윈 하는 길”이라며 겉으로는 낙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태광이 지분 5%만 인수한다고 해도 경영권에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이를 포기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롯데는 지분 이전과 매각대금 납부에 앞서 방송위의 허가를 받는 것을 조건으로 계약을 한 상태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오히려 방송위에서 우리홈쇼핑 재허가를 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된다면 진로, 까르푸 인수 시도가 무산된 데 이어 신동빈 부회장의 리더십이 또다시 상처를 입을 수 있어 우려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