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훈 서울시장. | ||
지난 7월 연일 폭우가 쏟아질 때 서울 안양천 제방이 무너져 수해를 입은 양평동 주민들이 서울시와 삼성물산 대림산업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지하철 9호선 공사를 위해 안양천 제방을 잘라내 재시공하는 과정에서 부실공사가 이뤄져 결국 이번 폭우 때 양평동 일대가 침수됐다는 주장이다. 삼성물산 등 지하철 9호선 시공사와 이 공사를 발주한 서울시에 대한 연대책임을 물은 것이다.
그런데 이 물난리 후폭풍이 서울시가 삼성물산에 대한 징계조치를 적극 검토하는 식으로 확전되면서 지방자치단체와 재벌그룹의 대결구도로 비화되고 있다. 특히 부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물난리를 겪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번 수해 피해의 주범을 지하철 공사 주 시공사인 삼성물산으로 지목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끌고 있다.
양평동 주민들이 서울시와 삼성물산 등을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은 지난 7월 16일. 애초 관망세를 취하던 서울시는 8월 초에 접어들면서 삼성물산에 대한 강공방침을 정했다. 8월 첫째 주 주요간부회의에서 오세훈 시장이 ‘삼성물산에 대한 징계조치를 적극 검토하라’는 내용의 지시를 내리면서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이다.
이 때부터 삼성그룹 소속 정보수집 담당 직원들의 발걸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특히 국회 담당 직원들은 각자 친분이 있는 한나라당 의원실을 집중공략하며 징계조치 완화를 위해 적극 로비를 벌였다고 한다. 삼성물산이 징계를 받게 되면 공사 수주 등에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삼성 직원들은 “삼성물산이 피해보상을 후하게 해주면 될 텐데 왜 징계까지 받아야 하느냐”는 논리를 설파했고 일부 한나라당 의원은 이 같은 정서를 오 시장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오 시장 측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오히려 오 시장 캠프에선 ‘삼성이 한나라당을 이용해 서울시에 압력을 넣으려 했다’며 삼성 측에 ‘괘씸죄’를 묻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전해진다.
오 시장의 삼성물산 징계방침이 하달된 후 서울시 관계자는 삼성물산 측 임원에게 연락해 ‘곧 징계를 받게 될 것’이라며 ‘청문’ 출석을 요구했다고 한다. 청문은 징계과정의 첫 단계로 징계 대상자에 대한 소명 기회를 주는 절차라고 한다. 삼성물산 징계절차를 공식화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시 차원에서 삼성물산에 대한 징계조치를 내릴 경우 어느 정도의 수준일지, 그리고 그 파급효과는 어떨 것인가에 대한 재계인사들의 입방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일단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은 관급공사 수주를 장기간 못하게 하는 조치다. 지하철 공사 같은 대형공사 수주과정에 참여하지 못할 경우 삼성물산은 금전적으로나 기업 이미지 차원에서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업계 인사들 사이에선 이미 ‘서울시가 관급공사 수주를 담당하는 관청에 삼성물산 징계에 필요한 협조요청을 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 지난 7월 양평동 안양천 제방 붕괴 현장. 연합뉴스 | ||
게다가 90년대 이후 삼성의 건설 사업은 연달아 터진 대형사고에 빠지지 않았다. 93년 78명이 사망한 구포열차 참사, 99년 충북 제천의 고가도로 붕괴, 2000년 대구 지하철 건설 공사장 붕괴, 2005년 이천물류센터 붕괴 사건, 올해의 양평동 물난리와 일산 정발산역 침수 사고 등 삼성의 이름을 달고 공사가 벌어지던 현장에서 줄줄이 대형사고가 터졌다. 특히나 관이 발주한 대형공사 현장엔 ‘삼성 징크스’라는 말이 따라다닐 정도다. 때문에 서울시의 징계 과정에서 삼성의 건설 징크스가 더욱 부각될 전망이다.
국회에서 정보 수집을 담당하는 삼성 직원들의 불만은 물난리가 끝나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갑자기 강공자세를 취하는 서울시의 속내에 향하고 있다. 삼성 직원과 접촉한 적이 있는 정치권 인사는 “어차피 양평동 주민들이 소송을 진행 중이고 이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삼성 측에서 할 것이 분명한데 서울시도 같이 소송당한 입장에서 자기들 입지를 넓히기 위해 삼성을 물고 늘어지려는 것이란 시각이 삼성 인사들 사이에 팽배해있다”고 분위기를 전한다.
일각에선 서울시가 10월 국정감사(국감)에 대비해 삼성물산을 ‘족치려는 것’이라 보기도 한다. 이번 국감에서 물난리 과정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한 정치권 인사는 “오 시장의 결단으로 삼성물산에 대한 징계조치가 내려질 경우 물난리 주범이라는 비난의 화살이 삼성물산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힌다. 이 인사는 “서울시도 양평동 주민들로부터 소송을 당한 입장이라 국감 과정에서 자유로울 순 없겠지만 삼성물산에 대한 엄중 조치를 주도할 경우 여론의 면죄부를 얻을 가능성에 주목했을 것”이라 덧붙였다. 여러 정·재계 인사들은 물난리 후폭풍을 둘러싼 서울시와 삼성물산 간의 책임공방이 쉽사리 봉합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