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 잠잠했던 이부진 호텔신라 상무(오른쪽)와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왼쪽)의 경영행보가 재계 안팎의 눈길을 끌고 있다. | ||
그동안 이건희 회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에 대한 경영권 승계 논란 탓에 이부진 상무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업계인사들 사이에 ‘호텔신라가 본격적으로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는 평이 나돌면서 이부진 상무의 행보가 모처럼 주목을 받게 됐다. 호텔신라의 몸집 불리기는 크게 면세점 사업 확대, 헬스케어 사업 진출, 그리고 여행사업 확대 등 세 가지가 중심이 될 것으로 전해진다.
호텔신라가 주력으로 삼아온 면세점 사업 부분에서 외형 확대를 할 것이란 소문은 이미 증권가에 널리 퍼졌다. 호텔신라가 내년 초로 예정된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을 위해 전방위 로비를 펼치고 있다는 이야기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올 정도다. 일각에선 ‘아직 검토단계일 뿐’이란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호텔신라의 2007년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 성공에 기대감을 보이며 호텔신라 주식 매수를 권하고 있다. 호텔신라의 8월 17일 현재 주가는 1만 4250원이지만 애널리스트들은 목표가를 1만 9000원선으로 잡고 있다.
헬스케어 사업 진출 여부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기존에 해온 헬스장비 사업의 영역을 뛰어넘어 ‘삼성의료원과 사업 제휴를 맺고 의료장비 사업에도 뛰어들 것’이란 이야기도 들려온다. 헬스케어는 GE그룹이나 삼성그룹 차원에서도 미래 신수종 사업으로 꼽는 사업분야로 향후 현실화될 경우 호텔신라가 빅뱅할 가능성이 크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여행사업 확대 여부다. 호텔신라는 주로 삼성전자를 대상으로 여행예약 대리 업무를 하는 여행사업을 해왔다. 호텔신라 전체 매출 중 미미한 부분을 차지하는 이 영역을 확대해 삼성 전 계열사의 여행사업을 독점할 것이란 이야기가 들려온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삼성 계열사 여행사업을 전담하다시피 해온 세중나모와의 마찰이 불가피해진다. 세중나모의 천신일 대표는 이건희 회장과 오랫동안 개인적 친분을 이어온 사이다. 이 회장의 오랜 지인과 이 회장의 장녀가 한 영역 안에서 신경전을 벌일 가능성이 열려있는 셈이다.
호텔신라에서 여행사업이 주력업종도 아니고 현재 이부진 상무가 담당하고 있는 파트가 여행업과는 무관한 ‘경영전략 수립’이란 점에서 이 상무 주도하의 여행사업 확대 가능성을 낮게 보는 업계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일부 재계 호사가들은 호텔신라가 최근 자사주 처분을 통해 40억 원을 확보한 것을 두고 ‘신규사업 진출용일 것’이란 해석을 내리기도 한다.
‘실탄’ 40억 원이 다른 곳에 쓰일 것이란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나돌고 있다. 삼성그룹 주력 계열사 지분 매입에 활용될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이다. 특히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를 이루는 핵심 계열사 지분 매집 가능성이 업계 인사들 사이에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40억 원으로 삼성전자 지분 매입에 나설 경우 8월 17일 종가 기준으로 64만 4000원인 삼성전자 주식 6200주 확보가 가능하다. 이는 삼성전자 지분율 0.005%에 해당한다. 최근 장외 거래가 46만 원선을 유지하는 삼성생명 주식 8700주(0.044%), 70만 원 선으로 추정되는 삼성에버랜드 주식 5700주(0.22%), 8600원 선에서 장외거래되는 삼성카드 주식 46만 5000주(0.09%) 확보도 가능하다. 이 같은 시각에 대해 ‘호텔신라의 이번 자사주 처분이 임원들 스톡옵션 행사로 쓰인 것이라 신규사업이나 지분 확보와는 무관하다’고 보는 업계 의견도 있다.
그러나 호텔신라의 몸집 불리기를 기정사실로 간주하는 업계 호사가들은 호텔신라가 향후 삼성의 지배구조 변화의 한 축이 될 것이란 전망까지 내놓는다. 금융계열사의 비금융계열사 지분 보유한도를 규정한 금산법(금융산업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나 금융지주회사법이 삼성 지배구조에 적용될 경우를 상정하면 삼성은 지배구조의 허점을 보완할 다른 카드를 찾아야 한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이른바 ‘호텔신라 역할론’을 거론하기도 한다. 호텔신라의 핵심 계열사 지분 확보를 통해 전자 계열이나 금융계열사와는 다른 독립계열사군과 호텔신라가 함께 다른 금융계열사를 지배하는 방식으로의 지배구조 전환이 가능한 까닭에서다. 호텔신라가 삼성의 순환출자를 통한 지배구조에 새로운 핵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점쳐지는 것이다.
재계인사들은 호텔신라와 출자관계를 맺고 있는 삼성 주력 계열사들의 물량 몰아주기가 이뤄질 경우 호텔신라의 주가가 폭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정 시점에 이르러 주식 처분을 통해 막대한 이윤을 남겨 핵심 계열사 지분 매입에 나서는 것은 국내 재벌들이 지배구조와 후계승계를 위해 활용해온 전형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삼성의료원과의 헬스케어 사업을 통한 연계나 삼성 전 계열사를 상대로 한 여행사업 독점이 현실화될 경우 증시에 미칠 파급효과가 엄청날 것임에 분명하다.
이를 위해선 총수일가의 호텔신라 지분 확보가 급선무다. 아직까지 이건희 회장이나 이부진 상무를 위시한 삼성 총수일가는 호텔신라 대주주 명부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호텔신라가 ‘준 지주회사’급으로 거듭날 것이라 보는 재계 호사가들 사이에선 ‘이부진 상무가 호텔신라 지분 매입에 나섰다’는 풍문마저 나돌고 있다. 호텔신라 측은 이를 극구 부인하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