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 증여에 대한 의문은 두 가지. 우선 거액의 가치를 지닌 지분을 돈 한푼 받지 않고 증여했다는 점, 그리고 동양캐피탈이 동양레저의 대주주가 되면서 동양레저-동양메이저-동양캐피탈-동양레저로 이어지는 순환출자에 의한 지배구조가 다시 이뤄졌다는 점이다. 최근 타 재벌 그룹들이 순환출자에서 탈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점과 비교하면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지난해 12월 전까지 동양레저의 지분은 동양캐피탈 50%, 현 회장 30%, 현 회장의 장남 승담 씨(26)가 20%를 가지고 있었다. 12월 6일 현 회장은 동양캐피탈의 주식 10만 주를 주당 6020원, 총 6억 원어치를 매입해 지분을 80%로 늘렸다. 동양레저는 동양그룹의 사업지주회사인 동양메이저의 지분 28.36%를 가지고 있는 회사. 때를 같이해 동양레저는 동양종합금융증권(동양종금증권) 지분 335억 원어치를 사들여 지분율을 15.23%로 늘렸다. 현 회장의 지분 매입으로 동양레저가 새로운 실질적 지주회사가 된 것이다.
이 때부터 동양그룹에 대한 의혹의 시선이 싹트기 시작했다. 현 회장이 동양레저 지분 50%를 인수하는 데 든 비용은 6억 원, 이를 다시 장남 승담씨에게 넘긴다면 적은 비용으로 그룹을 지배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제기된 것이다. 비상장 계열사를 통해 저가로 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하려는 데 제동을 걸고 있는 최근의 분위기가 부담을 준 것으로 분석되기도 했다.
동양그룹은 이에 대해 순환출자의 고리를 끊기 위해 매입한 것이고, 승담 씨가 어리고 현 회장은 창업주의 사위 입장이기 때문에 아직 그룹 승계를 거론할 단계가 아니라고 해명한 바 있다.
이번 무상증여로 동양그룹은 동양레저의 지주회사 가능성과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오해를 불식시켰다. 그러나 다시 순환출자 형식의 구조가 되었다는 부담감이 있다. 동양 측은 “순환출자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방침이 정해질 때까지는 시간적 여유가 있기 때문에 이를 일시적으로 감수했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현 회장의 무상증여가 소문으로 떠도는 검찰 조사 때문이 아니냐는 물음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동양 측은 “검찰 조사설이 많이 돌아 검찰 쪽에 확인까지 해 보았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공정위가 10일간 그룹에 대해 집중 조사를 실시했지만 이에 대해 올해 2월 문제가 없음을 발표했다. 동양생명이 동양레저의 골프장 부지를 매입한 것에 대해선 내부자거래 의혹이 일기도 했지만, 7%대의 임대료 수익을 얻고 있어 오히려 고수익 사업으로 인정되기도 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현 회장이 무상 증여를 한 속내는 무엇일까. 동양 측은 동양메이저를 지주회사로 키우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시멘트 사업으로 그룹의 기반이 되었던 동양메이저는 IMF 이후 계열사의 부실을 떠안는 등의 역할을 수행해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부채비율이 1430%에 달할 정도로 부실 규모가 컸었다.
2002년에는 레미콘부문을 영업양도하고 시멘트 사업부문을 분할하여 신설법인 동양시멘트를 설립하기도 했다. 2003년부터 꾸준히 부채비율을 줄이기 위한 일련의 노력이 지난해와 올해 들어 가시적 성과를 얻고 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사업을 롯데카드에 매각했고, 동양레저의 땅을 동양생명에 매각하기도 하는가 하면 6성급 호텔 사업을 위해 서울 마포에 마련한 부지 등 서울시내에 있는 500억 원 대 유휴 부동산을 지난해 초 매각했다.
또 지난해 6월 유상증자에 이어 2회에 걸쳐 동양종금증권 지분을 매각하고, 올해 6월에는 동양시멘트 주식 100% 중 49.9%를 미국계 펀드 PK2에 2245억 원에 매각하는 등 구조조정을 계속 단행해왔다.
2004년 1238%던 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 654%, 올해 1분기 말 702%를 거쳐 곧 270%로 낮아지게 된다고 그룹 측은 밝히고 있다. 전환사채 발행분이 주식으로 전환되면 부채비율은 200% 아래로 떨어져 내년 상반기 중에는 지주회사 요건을 갖추게 될 전망이라고 한다.
또 동양종금증권이 월 100억 원 이상의 순이익을 내고 있고, 내년 생명보험사 상장 방침이 결정되면 동양생명이 가장 처음으로 상장될 것으로 보여 지주회사인 동양메이저의 가치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그룹 측은 예상하고 있다. 동양종금증권은 국내 증권사 중 두 군데만 할 수 있는 기업여신업무를 하고 있어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알짜 회사로 알려져 있다. 기업여신업무는 IMF 당시 공적자금 대신 자체 조달로 부실을 막았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라고 한다.
증시에선 현 회장이 동양레저 지분을 동양캐피탈에 무상증여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동양그룹의 양대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동양메이저와 동양종금의 주가가 오르는 등 호의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이에 대해 증시 일각에선 일차적으로 동양메이저의 위상강화로 이어지고 동양그룹 관련 사회적 리스크도 줄었기에 주가가 오른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한편 내년에 그룹 창립 50주년을 맞이하는 현 회장은 종합투자은행을 전략적 신사업으로 육성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현재의 금융 계열사들을 활용한 종합투자은행을 세운다는 것. 동양그룹은 은행과 카드회사를 제외한 모든 금융기관을 보유하고 있다. 동양종금증권을 비롯해 동양캐피탈, 동양생명, 동양선물, 동양파이낸셜, 동양창투, 동양투신운용이 있기 때문에 향후 자본시장 통합법에 즉각적으로 대처해 대형투자은행을 만들 수 있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아직 순환출자에 의한 지배구조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 향후 이에 대한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27세인 장남 현승담 씨가 곧 경제활동을 개시할 나이라는 점도 그룹 승계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현 회장의 고민은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