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양호 전 국장. 연합뉴스 | ||
이 일이 비자금 의혹으로 확전될 조짐을 보이자 검찰은 즉각 “시중에 알려진 것처럼 비자금 수사를 위한 조사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이 이번 한화 임원 조사를 통해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공동대표로 있는 보고펀드에 대한 한화의 투자 문제를 집중 거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에 대한 세인들의 궁금증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변양호 게이트’란 단어가 등장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이번에 검찰 조사를 받은 김 상무는 한화그룹 계열 한화역사(주)의 임원이지만 그룹 비서실 출신이며 김승연 회장의 오랜 측근으로 알려진다. 김 상무는 지난 8월 30일 임의동행 형식으로 대검 중수부에 소환돼 2박 3일간 조사를 받고 지난 9월 1일 풀려났다. 검찰은 이 기간 동안 김 상무에 대해 ‘한화그룹이 보고펀드에 투자하게 된 경위’를 주로 물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변양호 전 국장은 현대차 비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변 전 국장이 구속되자 그가 이헌재 사단 일원이란 점 때문에 변 전 국장 수사가 이헌재 사단 소속 시니어급 인사를 엮기 위해 활용될 것이란 관측도 무성했었다.
이런 배경 탓에 이번 한화 임원 조사가 변 전 국장 수사의 한 과정임에도 한화 비자금 사건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잠깐’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관측에 검찰이 고개를 가로젓고 나섰다. 김 상무 조사 이후 대검의 채동욱 수사기획관은 한화그룹 비자금 수사 여부에 대해 “수사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밝혔다. 보고펀드를 조사하는 과정에 한화의 투자관계가 드러나 보고펀드와 변 전 국장에 대한 자료 확보용으로 김 상무를 조사했다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한화그룹 또한 검찰의 발표를 토대로 비자금과 절대 관련이 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과정과 이번 사태의 연관성 또한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이번 건을 ‘비자금 사태’로 표기한 일부 보도내용이 검찰 발표를 통해 ‘명백한 오류’로 밝혀졌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채 기획관은 “필요하면 (한화 측 인사를) 다시 부를 수 있다”고 밝혀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검찰청사 주변의 인사들, 그리고 재계에서 이 사태를 지켜보는 여러 관계자들은 한화에 대한 조사가 변 전 국장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변 전 국장이 구속될 당시 현대차 비자금 수수 혐의가 주 명목이었지만 실제로는 ‘검찰의 이헌재 사단 옥죄기’ 수순이란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외환은행의 헐값 매각 의혹에 대해 이헌재 사단에 혐의를 두고 있었던 검찰이 이헌재 사단의 일원을 구속수사함으로써 구체적 정황을 확보하려할 것이란 관측이었다.
▲ 한화에 매각되기 전 대한생명 건물. | ||
이렇다 보니 법조계 일각과 재계 인사들 사이에 ‘이번 한화 임원 조사가 검찰의 운신의 폭을 넓혀줄 다목적 카드’라는 해석이 등장한 점에 시선이 쏠린다. 한화에 대한 조사는 보고펀드에 투자한 여러 기업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진다. 변 전 국장이 여러 기업들로부터 거액의 돈을 건네받은 정황이 포착된다면 이는 검찰이 변 전 국장을 압박할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
한 법조계 인사는 “수세에 몰린 변 전 국장이 검찰조사에 유용한 결정적 진술을 제공한다면 론스타 수사가 새 국면을 맞이할 수도 있다”고 밝힌다. 당초 검찰이 겨냥했던 것으로 알려진 이헌재 사단에 대한 결정적 정황을 변 전 국장의 입을 통해 얻어낼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일각에선 론스타 사건의 본류가 졸지에 ‘변양호 게이트’로 둔갑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론스타 사건의 핵심은 BIS 자기자본 비율이 조작됐는가, 조작을 지시한 배경이나 거물급 인사가 도사리고 있는가 그리고 이 과정에서 론스타가 로비를 벌인 정황이 있는가 여부에 있다. 이러한 의혹들을 규명할 구체적 정황을 확보하지 못한 수사당국이 ‘변 전 국장의 추가 비자금 수수 의혹’을 확인한다면 이는 ‘가뭄에 단비’가 될 수도 있다.
수사당국이 변 전 국장 수사과정에서 여러 기업들이 변 전 국장이나 보고펀드에 돈을 건넨 정황을 포착해낸다면 이는 현대차 비자금 사태만큼의 파괴력을 몰고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한화 임원 조사 건은 검찰이 변 전 국장과 대기업들 간의 관계를 조사하는 중에 ‘설익은 채’로 언론에 공개된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이 뭔가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엉뚱하게도 한화 건이 툭 튀어나왔을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한편 검찰이 한화 비자금 수사 여부에 대해 “수사 계획이 없다”고는 발표했지만 추가 소환조사 가능성을 열어둔 점 또한 관전거리다. 일각 법조계 인사들은 “김재록 게이트 수사의 본류가 현대차 비자금 수사로 급전환된 것처럼 이헌재 사단 수사의 본류가 어디로 튈지 아직은 단언할 수 없다”고 밝힌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