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무임승차 폐지 공약에 대한노인회 발끈…기존 양당과 달리 ‘정책으로 승부’ 이미지 노려
이준석 대표는 1월 8일 공영방송 사장 임명동의제를 1호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표는 “22대 총선 이후 (공영방송의) 사장 임명동의제를 시행하도록 방송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며 “공영방송 사장에게 10년 이상 방송 경력을 강제해 직무 경험이 전무한 낙하산 사장 임명을 원천 봉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방송 관련 경력이 거의 없었던 박민 KBS 사장을 임명한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앞으로 10대 정책을 하나씩 발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후 개혁신당은 △지방의 공립형 기숙 중·고등학교 확충을 골자로 하는 교육정책(2호·10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전략(3호·15일) △대통령 배우자의 역할과 권한 명문화(4호·16일) △만 65세 이상 고연령층 지하철 무상 이용 혜택 폐지(5호·18일) △공수처 폐지 및 법무부 장관의 정치적 중립 의무화 등의 내용을 담은 검찰 개혁(6호·22일) 등의 공약을 발표했다.
개혁신당은 공약을 발표할 때마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을 비판했다. 2호 공약은 인구 소멸 지역의 학교 통폐합, 최고 교육 환경을 갖춘 공립형 기숙학교 확충, 지방 거점 국립대학교 예산 지원 대폭 확대 등 지역 교육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천하람 개혁신당 공동창당준비위원장은 “사교육비는 줄여야 하지만, 사교육비를 줄인다는 미명 하에 학생들이 공부를 덜 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며 “수학과 공학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첨단과학기술 시대에 심화 수학인 미적분II를 수능 선택 과목에서 제외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심화수학을 수능 선택과목에 포함하지 않겠다는 교육부 방침을 비판했다.
3호 공약에서는 한국 주식의 저평가 현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 원인으로 소액주주 홀대 문제를 지목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입법과제로 △상법 개정을 통한 이사의 모든 주주 충실의무 규정 △경영권 인수 시 주식 100% 공개매수 의무화 △물적 분할을 통한 쪼개기 상장 금지 △자사주 소각 의무화 △상장회사의 전자투표제와 전자위임장 도입 △집단소송제도 개혁 △증거개시제도 도입 △거버넌스 개선 기구의 국회 설치 등을 제시했다. 김용남 전략기획위원장은 “현 정부가 증시부양 목적으로 한시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공매도 금지 등은 자본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떨어지는 졸속한 정책으로 장기간에 걸쳐 우상향하는 증시를 만들어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배우자’법(4호 공약)을 발표할 때는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논란을 겨냥한 발언으로 눈길을 끌었다. 법에는 대통령 배우자를 고위공직자로 간주하고 이에 걸맞은 역할과 권한을 명문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대통령 배우자의 공적 활동을 양성화하겠다는 것이 법의 취지다. 또 개혁신당은 대통령 배우자 관련 뇌물죄, 청탁 금지법 등의 적용을 명확히 규정하고 공적 활동을 기록하고 공개하는 것을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이기인 공동창당위원장은 “영부인의 눈치를 보며 제2부속실 설치 검토, 특별감찰관 부활 등으로 영부인을 둘러싼 논란이 해결될 것처럼 말하는 건 가랑잎으로 눈을 가리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5호 공약인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는 큰 논란을 불러왔다. 이 대표는 “저는 정치하면서 표가 떨어지는 이야기라도 올바른 이야기를 할 것”이라며 무임승차 제도를 폐지하고 연 12만 원짜리 교통카드를 발급하자고 했다. 이 대표는 2022년 고연령층 무임승차에 따른 비용은 8159억 원으로 추산되고, 지하철이 있는 역세권과 대도시권 노인들에게만 유리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1월 18일 김호일 대한노인회장은 성명을 내고 “신당이 아닌 패륜아 정당을 만들겠다는 망나니 짓거리”라며 “한강의 기적을 이룬 노인에 대한 우대는커녕 학대하는 주장을 신당의 공약으로 내세우겠다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김호일 회장은 1월 22일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결혼도 하지 않고, 자녀를 키워 본 일도 없고, 가정 살림도 해본 일이 없고, 정치판에 들어와 무위도식하다 보니 세상 물정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헛소리를 남발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김 회장은 “‘노인을 치면 젊은이 표는 나한테 안 오겠느냐’는 얄팍한 계산으로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데, 이런 무책임한 사람이 어찌 정치를 하며 정당을 이끌고 있느냐”라고 했다. 이 대표가 이른바 세대 갈라치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에서도 이 대표가 세대 갈라치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1월 19일 이원욱 미래대연합(가칭) 공동대표는 TV조선 유튜브 프로그램 ‘강펀치’에서 “갈라치기를 통한 ‘2030 MZ세대’에 소구하는 전략을 확실히 결정한 것 같고, 앞으로도 그런 전략이 나올 것 같다”며 “(이 대표가) 잠재성도 크고 좋은데 (갈라치기) 단 하나만 고쳐주면 좋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1월 19일 페이스북에 “늘어가는 고연령층 표만 바라보면서 눈치만 봐서는 세상 안 바뀐다”고 밝혔다. 이어 이 대표는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 공약은) 수도권이나 역세권이 아니라서 지금까지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하던 전국의 노인층에 오히려 더 많은 예산을 들여서 교통복지 사각지대를 없애는 방안”이라며 “오히려 혜택을 받는 수가 몇 배 늘어나는데 이걸 지금까지 용기 없어서 표 계산하면서 못하던 사람들이 기껏 들고 나온다는 논리가 ‘갈라치기’”라고 반박했다.
개혁신당의 릴레이 정책 발표는 존재감 알리기 전략으로 읽힌다. 정쟁에 몰두하는 기성 정치세력과 달리 정책으로 승부하는 신당이라는 이미지로 유권자들에게 다가가겠다는 것이다. 개혁신당 관계자는 “이슈를 선점하고 언론의 주목을 계속 끌어야 된다”며 “그러한 측면도 있고, 신당은 이제 싸움하는 정치가 아니고 정책을 생산해 내는 정치를 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기존의 양당 정치하고는 다른 이미지의 정치를 (국민들에게) 알리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릴레이 정책 발표 이면에는 개혁신당의 현실적 한계가 반영돼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 안팎의 상황이 정리된 것이 없다 보니 정책 발표 외에는 꺼낼 만한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의미다. 합당 또는 연대의 대상인 새로운미래나 미래대연합은 창당 작업을 하고 있다. 금태섭 대표의 새로운선택과는 젠더 이슈 등을 두고 대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지자들은 민주당 계열 신당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개혁신당 내부 의견도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기인 최고위원은 일요신문에 “연대와 통합을 논의하기보다 이제 막 만들어진 당에 대한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어찌 보면 순혈주의 입장으로 가자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어쨌든 선거는 현실이기 때문에 다소 간의 이견이 있더라도 그것을 잘 융합시켜서 제3지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통합파가 있다. 격론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 최고위원은 “일단은 지지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우선이다. 여러 진영의 차이점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국민들한테 보여주고 우리가 이렇게 융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 먼저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민하 정치평론가는 갈라치기 논란에 대해 “다른 당이 (공약을) 했으면 (갈라치기라는) 이야기를 안 듣는다. 이준석이니까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라며 “이준석이라는 정치인이 지금까지 이른바 ‘편 가르기 정치에 편승해 왔다’는 이미지가 있어 이렇게 보이는 것이다. (이준석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젠더 이슈를 다룬 공약이 없는 대목도 눈에 띈다. 이준석 대표는 여성가족부와 여성할당제 폐지를 주장하는 등 줄곧 젠더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2023년 10월 5일 숭실대학교 강연에서 “우리 세대의 젠더갈등이 지속하면 과거 지역갈등보다 훨씬 심한 망국적인 갈등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이런 갈등을 정치권에서 다루는 것을 두려워하면 절대 해결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젠더 관련 정책은 발표되지 않고 있다. 이전부터 이준석 대표가 천하람·이기인 최고위원 등과 함께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여의도재건축조합’의 정책토크 코너인 ‘모델하우스’를 보면 59개의 콘텐츠가 올라왔는데, 젠더 정책을 다룬 내용은 없다.
이기인 최고위원은 “여가부 폐지와 관련해서는 저희가 국민의힘에서 개혁신당으로 당적이 옮겨졌다고 그 기조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젠더 이슈는 지금 계획된 추가 정책 발표 이후 언제가 좋을지 신당 내에서 논의한 후 발표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 최고위원은 “젠더 문제가 사회 전반적으로 깔려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는 저희가 어떻게 축약해서 말씀을 드려야 될지는 더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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