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메가히트작 배출 황금기, 2022년 누적 75억 부 기네스 등재…출판 환경 악화 ‘앱으로’ 독자 이동
[일요신문] 653만 부. 일본 만화잡지 역사에 전설처럼 남은 숫자다. 1994년 겨울, ‘드래곤볼’과 ‘슬램덩크’를 품은 ‘주간소년점프’가 만화잡지 사상 최고 발행부수를 기록했다. 그로부터 30여 년. 주간소년점프의 발행부수는 98만 5000부까지 내려앉았다. 사람들이 더 이상 만화를 읽지 않아서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만화의 인기는 여전하다. 달라진 것은 만화를 읽는 방식이다. 일본 매체 ‘닛폰닷컴’은 이를 두고 “전 세계 소년소녀를 매료시킨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고 기네스 세계기록까지 인정받은 인기 잡지도, 이제 전자책에 주역의 자리를 내주고 있다”고 짚었다.
일본 만화잡지의 상징 ‘주간소년점프’ 발행부수가 100만 부 아래로 떨어졌다. 2026년 36호. 사진=교도/연합뉴스일본 만화잡지의 상징 ‘주간소년점프’가 커다란 분기점을 맞았다. 일본잡지협회가 2026년 8월 5일 발표한 인쇄부수 공표(2026년 4~6월)에 따르면, 이 기간 주간소년점프의 평균 발행부수는 98만 5000부였다. 직전인 1~3월까지만 해도 100만 4167부로 간신히 밀리언을 지켰지만, 결국 100만 부의 벽이 무너졌다. 이로써 일본에서 발행되는 종이잡지 가운데 100만 부를 넘는 매체는 하나도 남지 않게 됐다.
주간소년점프의 역사는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슈에이샤가 격주간으로 창간한 뒤 이듬해 주간지로 전환했고, 1973년에는 경쟁지 ‘주간소년매거진(고단샤)’을 제치고 소년만화잡지 발행부수 1위에 올랐다. 1990년대에는 ‘드래곤볼’과 ‘슬램덩크’ 같은 메가 히트작을 잇달아 배출하며 황금기를 맞았다. 정점은 1994년 12월 발매된 ‘1995년 3·4 합병호’다. 무려 653만 부를 찍으며 만화잡지 사상 최고 발행부수 기록을 세웠다.
전설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후에도 ‘원피스’ ‘나루토’ ‘귀멸의 칼날’ ‘주술회전’ 등 시대를 대표하는 히트작을 끊임없이 배출했다. 2022년에는 창간 이후 누적 75억 부 이상을 기록하며 기네스 세계기록이 인정한 ‘가장 많이 팔린 만화잡지’에도 이름을 올렸다.
주간소년점프 창간호. 사진=슈에이샤 홈페이지하지만 발행부수는 해마다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2014년 1~3월 약 271만 6000부였던 부수는 2017년 200만 부 아래로 내려갔다. 2023년 10~12월에는 약 113만 4000부까지 줄었다. 그리고 2026년, 마침내 100만 부 선마저 깨졌다.
발행부수가 급감한 가장 큰 이유는 독자들의 ‘만화를 읽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만화 앱이 빠르게 대중화하면서 종이에서 디지털로 무게중심이 옮겨간 것. 2025년 일본 국내 만화 시장 6925억 엔 가운데 전자만화가 차지하는 규모는 5273억 엔. 반면 종이 만화잡지 시장은 392억 엔까지 쪼그라들었다.
이러한 변화는 슈에이샤 안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슈에이샤가 2014년 선보인 ‘소년점프+’는 오리지널 만화 연재와 주간소년점프 전자판 구독 등을 제공하는 만화 앱·웹 서비스다. 누적 다운로드 수는 3200만 건을 돌파했고, 웹 버전을 포함한 월간 이용자 수는 1100만~1300만 명에 이른다. ‘스파이 패밀리(SPY×FAMILY)’ ‘단다단’ ‘괴수 8호’처럼 주간소년점프 본지가 아닌 ‘소년점프+’에서 탄생한 대형 히트작도 이제 낯설지 않다. 요컨대 ‘소년점프를 읽는 장소’가 종이잡지 한 권에서 스마트폰으로 넓어진 셈이다.
스마트폰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만화를 읽을 수 있는 데다, 종이 만화책과 달리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덕분에 만화 앱은 젊은 세대뿐 아니라 중장년층으로도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오리콘이 실시한 ‘전자만화 서비스 이용 실태 데이터 조사’에서는 오히려 50대의 유료 결제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반대로 종이잡지를 둘러싼 환경은 갈수록 녹록지 않다. 물류업계의 인력난과 운송비 상승으로 전국 편의점에 잡지를 공급하던 유통망을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워지고 있다. 일본출판판매는 2025년 2월 패밀리마트와 로손 약 3만 개 점포에 잡지와 서적을 배송하던 사업에서 철수했다. 2015년도 이후 편의점 배송사업의 영업적자가 계속된 탓이다. 동종업체 토한이 배송망 일부를 넘겨받았지만, 물류비와 수익성 문제로 모든 점포를 아우르지는 못하고 있다. 한때 당연했던 ‘어디서나 최신호를 살 수 있는 풍경’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2025년 4월 만화 앱 ‘소년점프+’ 10주년을 맞아 이벤트가 열렸다. 사진=슈에이샤 홈페이지엔터테인먼트 경쟁도 과거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치열해졌다. 1990년대에는 만화잡지가 대표적인 오락거리 가운데 하나였지만, 지금은 유튜브와 OTT, 게임 등 손안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넘쳐난다. 여기에 ‘귀멸의 칼날’에 이어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주술회전’ 등 대형 인기작까지 잇달아 완결됐다. 매주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며 소년점프를 사게 만든’ 강력한 구매 동기가 그만큼 약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 매체 ‘소라뉴스’는 “그렇다고 98만 5000부라는 숫자를 곧바로 ‘소년점프의 쇠퇴’로 읽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종이 만화잡지 시장은 축소되고 있지만, 만화가 독자를 만나는 방식은 오히려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년점프’에서 출발한 작품들은 단행본을 넘어 애니메이션과 영화, 게임, 해외 스트리밍으로 국경과 매체를 넘나든다.
653만 부에서 98만 5000부로. 숫자만 보면 ‘점프 신화’가 저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라진 것은 만화를 향한 관심이라기보다, 매주 잡지 한 권을 손에 들고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던 풍경일지도 모른다. 653만 부의 시대는 저물었지만, ‘소년점프’의 무대는 오히려 종이 밖으로 더 넓어지고 있다.
별별 기록들…‘드래곤볼’ 첫 화 실린 1984년 51호 몸값 껑충
① 10만 5000부 → 653만 부
‘주간소년점프’는 1968년 창간호 10만 5000부로 출발했다. 당시 ‘소년매거진’과 ‘소년선데이’가 이미 1959년 창간돼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터였다. 후발주자 점프는 인기 만화가를 확보하기도 쉽지 않아 신인 작가들을 적극 발굴해야 했다. 그러나 경쟁지를 차례로 추월했고, 26년 뒤인 1994년 마침내 653만 부라는 정점을 찍었다. 창간호와 비교하면 무려 약 62배다.
약 40년 동안 단 한 번도 휴재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고치카메(왼쪽)와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으로 배송이 늦어지자 인터넷에 무료 배포한 2011년 15호 표지. 사진=슈에이샤② 40년 연재에 휴재 ‘0’
1976년 주간소년점프에서 연재를 시작한 ‘여기는 잘나가는 파출소(고치카메)’는 2016년까지 약 40년 동안 단 한 번도 휴재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정규연재가 끝날 당시 기록은 1960화, 단행본 200권. 수많은 인기작이 등장하고 사라지는 동안 한결같이 점프를 지켰다.
③ 대지진이 멈춰 세웠던 점프
매주 독자를 찾아가던 소년점프도 멈춘 적이 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물류망에 큰 차질이 빚어지면서 17호의 발매가 일주일 연기된 것. 이미 발매된 15호 역시 지진 피해지역에 제대로 배송되지 못했다. 그러자 슈에이샤는 해당 호의 만화 부분을 인터넷에서 무료 공개하는 이례적인 조치를 취했다. 당시 슈에이샤는 “만화가들이 혼신을 다해 만든 작품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전달하고 싶다”는 취지를 밝혔다.
④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과월호
오래된 소년점프가 모두 귀한 것은 아니다. 수집가들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훗날 전설이 된 작품의 ‘연재 시작호’다. 대표적인 것이 ‘드래곤볼’ 연재가 시작된 1984년 51호와 ‘원피스’가 처음 등장한 1997년 34호다. 일본 중고·수집 시장에서 이들 과월호는 일반적인 옛 소년점프보다 높은 가격이 붙는 프리미엄 수집품으로 거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