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대제(왼쪽), 남궁석 | ||
얼마 전 한나라당 김희정 의원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4급 이상 출신 인사들이 민간기업에 대거 취업한 사례를 공개하기도 했다. 제일기획 SK텔레콤 등을 포함해 유력기업에 진출한 청와대 4급 이상 출신 인사들만 해도 현 정권에서만 24명에 이를 정도다.
삼성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정부기관 출신 인사들을 영입해 요직에 앉히는가 하면 법무팀을 초호화 진용으로 꾸려 ‘삼성공화국’론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재계 1위 삼성은 다른 기업들과는 ‘뭔가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관계의 인사를 영입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삼성표 인력들을 관가로 진출시키는 ‘역삼투압’ 현상을 더욱 활발히 진행시키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통해 삼성의 최대 골칫거리였던 복수노조 허용 건이 3년간 유예되면서 재계인사들 사이에선 ‘삼성이 정부 정책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이 새삼 화젯거리로 자리 잡은 상태다. 이를 두고 정치권과 재계 인사들 사이에선 “삼성이 두터운 인맥을 통해 정치권과 관가의 정서를 잘 파악하고 대처했디”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다.
삼성 계열사들 중 관가 요직에 가장 많은 인사들을 진출시킨 곳은 삼성전자로 알려진다. 삼성은 이례적으로 통신이나 통신 관련 전자업체의 매출을 좌지우지하는 정보통신부장관직에 두 명의 삼성맨을 진출시킨 전력이 있다. 삼성SDS 출신의 남궁석 전 장관과 삼성전자 사장 출신의 진대제 전 장관이 바로 그들이다.
‘삼성표’ 통신인력이 이런 톱레벨에서만 역삼투압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정보통신부는 외부 전문가 인력 세 명을 특채했다고 한다. CDMA 통신 부문 전문가를 특별전형을 통해 선발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삼성전자 출신 인사가 포함됐다는 전언이다. 이에 앞서 이미 정통부 고위직을 꿰차고 있는 삼성 출신 여성 인사가 있다. 송정희 정보통신부 정책자문관은 지난 2003년 6월부터 정보통부신에 재직했는데 삼성전자에서 연구원을 거쳐 전략기획실 부장까지 역임한 인물이다.
삼성전자 출신은 검찰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현재 창원지검에 근무 중인 Y 검사가 대표적인데 Y 검사는 삼성→검찰→삼성→검찰 순서로 직장을 옮겨 다닌 이력의 소유자다.
Y 검사는 원래 공과대학 출신으로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팀에서 잠시 일하다가 퇴직한 뒤 사법고시에 합격해 1997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검사직에 입문했다. 이후 Y 검사는 서울지검과 법무부 요직을 거치다가 2005년 2월 검사복을 벗고 삼성에 영입돼 상무보 직함을 받고 1년 7개월간 삼성에서 일했다. 당시 Y 검사가 맡았던 분야는 특허 관련 소송과 법률 상담이었다고 전해진다. Y 검사는 얼마 전인 9월 중순께 검찰에 복귀했다.
Y 검사의 검찰 복귀를 두고 업계 인사들 사이에선 “법무팀 확장으로 빈축을 샀던 삼성이 자사 출신 인사를 검찰에 보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다.
삼성 출신 인사는 국가정보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국정원은 지난해 8월 삼성경제연구소 출신 L 씨를 특채로 영입했다. 민간 경제연구소 출신 인사가 국정원에 영입된 첫 사례였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전무 직함을 달고 있던 L 씨는 국정원에서 1급 상당의 정보책임자다.
삼성은 과거에도 국정원 고위직에 자사 임원 출신 인사를 진출시켰던 바 있다. 김영삼 정부 시절 호텔신라 출신인 김기섭 씨가 이례적으로 국정원 차장직에 발탁됐던 것이다.
이번 노무현 정부에서 국정원이 L 씨를 영입한 배경엔 경제 분야 특채 인사들에 대한 실망감이 작용했다고 전해진다. 지난해 국정원은 전문성 강화를 위해 학자 출신 인사 여러 명을 영입했다. 그런데 경제분야 전문가들이 기대에 못 미치자 학자가 아닌 현업 분야에서 새 인물을 찾게 됐고 그런 과정에서 발탁된 인물이 L 씨였다는 것이다.
삼성 출신 인사들이 정부부처나 법조계 요직에 진출해 있는 것에 대해 업계 인사들은 “그들이 각 분야에서 삼성을 위한 오피니언 리더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삼성 조직이 관가에서 대규모 오피니언 리더군을 형성해 정책의 향배를 조절할 수 있을 것이란 인식 또한 업계 인사들 사이에서 확산 중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