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컨테이너 미사용·짧은 시범운영 기간 등 우려…장비 국산화 놓고도 갑론을박
#DGT "빈 컨테이너 시범운영이 난이도 더 높아"
국내 최초 완전 자동화 부두인 부산항 신항 서컨테이너부두 2-5단계 현장에서 신규 장비 도입을 앞두고 부실 시범운영을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통상적으로 장비 성능 검증 단계에서는 △크레인의 이동 속도 △컨테이너를 끌어올리는 인양 속도 △끌어올린 컨테이너를 배 쪽으로 이동시키는 횡단 속도 △배에서 내리는 하역 속도 등 4가지 속도를 측정해야 한다. 이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게 크레인의 안전작업하중(SWL)인 60톤(t)에 무게를 맞춘 풀 컨테이너다.
문제는 운영사인 동원글로벌터미널부산(DGT) 측이 속이 빈 컨테이너를 이용해 시범운영을 했다는 점이다. 속이 빈 컨테이너 무게는 3.8톤으로 풀 컨테이너 무게의 약 16분의 1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해 DGT 관계자는 “빈 컨테이너를 통해 시범운영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더 난이도가 높은 일”이라며 “무게가 없으면 바람이 많이 부는 바닷가 특성상 흔들리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는데 그런 것까지 감안해서 장비를 운용하기 위해 빈 컨테이너를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해당 방식으로는 장비의 실제 스펙을 검증하기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장에서 실제로 싣고 내려야 하는 컨테이너는 모두 화물로 꽉 차 있는 풀 컨테이너이기 때문에 실제 상황에 가깝게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장비 검증 시 빈 컨테이너에 쇳덩어리 등을 집어넣어 60톤 무게를 맞춘 후 수백~수천 번 작업을 반복해서 빅데이터를 쌓는다.
이와 관련, 물류업계 한 관계자는 “모든 자동화 터미널에서 그렇게 한다. 60톤까지 뜰 수 있는 장비가 잘 작동하는지 알아보려면 해당 무게에 맞춰서 계속 반복적으로 움직여봐야 장비가 분당 몇 m로 움직이는지 제대로 알 수 있다”며 “장비가 실제 스펙을 충족하는지 검증하고 데이터를 남겨놔야 문제가 됐을 때 장비 회사에 클레임을 걸 수 있기 때문에 상식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증기간이 해외의 다른 자동화 부두에 비해 다소 짧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해외에서는 최소 6개월~1년 이상 테스트를 거치고 부두를 개장하는데 동원은 약 5개월 만에 시범운영을 마치고 개장 준비에 들어갔다. 컨테이너터미널 운영프로그램 커스터마이징을 완료하기에 지나치게 짧은 시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컨테이너 터미널 운영 프로그램과 무인장비가 호환이 되는지, 오작동이 일어날 우려는 없는지 충분한 시간을 들여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동화 부두에서는 무인운반차량(AGV)이 야드에 촘촘히 심어진 센서를 읽고 좌표에 따라 이동해야 한다. 그런데 바닷가이기 때문에 바람, 수분, 염분, 오염물질, 진동 등 변수가 상당해 센서 인식에 오작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앞서의 물류업계 관계자는 “처음 적용해보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완벽할 수가 없다. 충분한 테스트와 수정작업 등을 통해 1년 가까이는 커스터마이징을 해야 안정화된다”고 말했다.
부실 검증이 터미널 경쟁력 자체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력을 쓰지 않는 자동화 부두인 만큼 장비나 프로그램에 문제가 생기면 모든 프로세스가 멈추게 된다. 심각할 경우 터미널이 마비될 우려도 있다. 전준우 성결대 글로벌물류학부 교수는 “새로운 해운동맹인 제미나이 협력이 지금 부산항을 패싱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지금 부산항이 불안불안하다는 것을 선사들이 모를 리가 없다. 제 시간에 물건을 하역하고 싣는 게 중요한 선사들 입장에서 안정성이 떨어지는 부두를 기피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앞서의 DGT 관계자는 “실제 프로그램을 테스트하기 이전부터 디지털로 가상공간을 만들어놓고 사전 테스트를 거치면서 딥러닝을 통해 프로그램을 고도화하고 있었다”며 “안정성을 갖추기 위한 사적 작업은 충분히 했고 지금은 실제 터미널을 운영할 수 있을 만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부산항만공사 "국산 장비 도입 파급효과 커"
이번에 부산항 신항 서컨테이너부두 2-5단계에 도입된 장비들은 국산 장비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현대삼호중공업이 만든 컨테이너 크레인 9기, HJ중공업과 두산에너빌리티가 제작한 트랜스퍼 크레인 46기가 도입됐다. AGV는 네덜란드산 장비 17기와 현대로템이 네덜란드로 업체부터 기술이전을 받아 제작한 43기까지 총 60기 도입된다. 부산항만공사가 30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주요 하역장비를 국산으로 발주 및 설치한 후 터미널 운영사에 임대했기 때문이다.
국산 장비 도입을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 회장은 “국내 5대 중공업이었던 현대·삼성·두산·HJ·대우가 예전에 항만 장비를 많이 만들었지만 경쟁력을 상실해서 전부 15년 전에 시장에서 퇴출됐다”며 “장비는 매년 기술이 발전하면서 최신식으로 업데이트 된다. 그런데 여태껏 국내 제작사들이 안 만들었는데 15년 동안 국내에 기술 축적이 됐겠나”라고 반문했다.
현재 전세계에서 주로 쓰이고 있는 항만하역장비는 중국의 국영기업인 ZPMC의 장비다. 저렴하고 품질이 좋기 때문에 기존 우리나라 인천항, 평택항을 비롯해 미국의 롱비치항·네덜란드의 로테르담항·독일의 함부르크항 등 전세계 항만의 80%가 ZPMC사 장비를 쓰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제작사뿐만 아니라 일본 미쓰비시도 경쟁력을 상실하고 항만 장비 사업에서 철수했다. 독일과 네덜란드의 유명 장비 제작 업체들도 같은 수순을 밟았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경쟁력 확보가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구교훈 회장은 “ZPMC의 장비는 전세계 수백 개 터미널에 공급하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장비는 그게 안 된다. 부산항만공사가 세금을 들여 비싸고 품질 낮은 장비를 사 주고 있는 꼴”이라며 “최소한 우리나라 항만도 만족시키고 가까운 일본, 대만이나 우리와 우호적인 미국, 호주, 캐나다 등에도 공급해야 하는데 이미 ZPMC가 전세계를 석권하고 있는 상황에서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항만장비 국산화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종길 성결대 글로벌물류학부 교수는 “국산을 사용하지 않으면 중국제품이나 다른 외산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럼 항만자동화 장비 국산화는 영영 물 건너가는 거다.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실사용 검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 부두에서 테스트를 해 나가야 한다”라며 “미국이 경제안보를 이유로 더 이상 중국제를 못 쓰게 하는 지금 이 타이밍이 우리에게는 기회”라고 말했다.
부산항만공사는 12월 13일 부산항 신항 서컨테이너부두 2-5단계에 이어 2-6단계에도 국산 항만하역장비를 전면 도입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관련 업계에서 인건비 자재비 상승 등의 이유로 적극 나서지 않아 최근 입찰가액을 2800억 원에서 3127억 원 규모까지 올려 새 입찰에 나선 상황이다. 부산항만공사는 2-6단계에 이어 진해신항에도 똑같이 국산 장비 및 기술을 도입할 예정이다. 해양수산부도 2030년까지 ‘스마트항만 기술산업 육성’을 위해 항만 장비 연구에 집중하고 전체 항만 장비 국산화율을 현재 29%에서 65%까지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부산항만공사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사전에 분석해본 결과 국산 장비를 도입했을 때 후방산업이라든가 연관 산업의 일자리 창출 효과 등 부가가치나 파급효과가 높다. 용역을 토대로 봤을 때 서컨부두 2-5단계로 인한 부가가치만 조 단위까지 나오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단순히 장비의 도입 비용만 본다면 중국산이 저렴하겠지만 국산 장비 도입이 현재 무너져있는 후방 산업들을 부흥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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