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이채취용 움막이 있던 경북 청송군 야산. |
▲ 실종 뒤 CCTV에 모습이 찍혔던 지촌교. |
▲ 익사체가 발견된 덤버들 하천. |
사촌지간도 내외한다는 요즘, 대통령의 먼 친척이 사망한 사건이 새삼 여론에서 크게 회자되고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 한 정치컨설턴트는 “제 아무리 먼 친척인 8촌지간이라도 대통령 친족 일가라는 점은 언제나 여론의 시선을 끌 만하다. 무엇보다도 이 대통령에게 8촌 누나가 있었다는 사실과 그 누나가 실종돼 의문사했다는 점이 여론의 호기심을 자극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검찰 소환 등 줄줄이 굵직한 사건으로 얼굴을 내비쳐 왔던 기존의 친족 일가와는 다르게 시신의 상태로 처음 언론에 그 모습을 드러낸 대통령 8촌 누나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이 씨의 실종사 과정과 그간의 삶을 뒤따라가 봤다.
현재까지 경찰에 의해 발표된 사실은 이명박 대통령의 8촌 누나 이 아무개 씨(87)가 산에서 실종된 지 8일 만에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것이다. 숨진 이 씨는 이 대통령의 친할아버지 쪽 사촌 형제의 손녀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씨는 원래 포항시에 거주해왔으나 매년 10월경 송이철이 돌아오면 경북 청송군 야산에 위치한 자신의 움막에서 한 달 정도 기거하며 자녀 3~4명과 함께 송이를 캐왔다고 한다. 이 씨의 움막이 위치한 야산의 일부분은 이 씨의 소유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야산은 실거래가 드물기 때문에 정확한 시가를 파악하긴 어렵지만 경북 청송의 한 부동산 업자는 “이 씨의 움막이 위치한 산은 비싼 송이를 채집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내놓는 사람도 거의 없고 부르는 게 값인 지역이다. 추정컨대 움막 근방 8000평 정도가 이 씨의 소유인 것 같다”고 말했다.
▲ 이 씨는 움막에서 험준한 산을 타고 내려와 지촌교 근방을 지난 것으로 보인다. |
실종 신고를 접수받은 경북소방서 및 청송서는 이 씨가 이 대통령의 8촌 누나라는 사실을 알고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씨의 셋째 딸은 2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최초 수사에서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경찰 인력이 몇 명 투입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가 대통령 친척이라는 사실을 알리면 시신이라도 빨리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말을 흘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청송서의 한 형사는 “대통령의 친인척이라는 말에 심적 부담이 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일반인 수사와 차별 두지 않고 공정한 인력을 투입해 수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를 지켜본 마을 주민들의 증언은 경찰의 주장과는 다소 달랐다.
지리마을 주민 김 아무개 씨(70대)는 “30여 대가 넘는 경찰차들과 함께 엄청난 수의 경찰들이 마을 어귀로 찾아왔다. 마치 전국에 있는 경찰들이 총동원된 것 같았다. 산세가 험해 한 해에 한 명씩은 실종되는데 이렇게 많은 경찰들이 투입된 것은 내 평생 처음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청송서 내부 문서를 확인해보니 ‘VVIP’라고 적힌 문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VVIP’는 대통령이라는 뜻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 지촌교 CCTV에 찍힌 실종 직후 모습. |
또한 지촌교와 지리마을 일대를 포개 듯 감싸고 있는 이른바 ‘덤버들’ 하천(이 씨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은 깊이는 있으나 언뜻 보면 호수로 보일 만큼 물살이 크게 세지 않은 곳이다.
사건을 맡은 청송서 김 아무개 계장은 “이 씨가 기거했던 움막은 30대의 경찰들이 찾아 올라가는데도 애를 먹었을 만큼 산세가 가팔랐다. 80대 노인인 이 씨가 험준한 산을 타고 내려왔다는 게 참 신기하다”면서 “하천에서 어떻게 사고사를 당한 건지 구체적으로 밝혀내진 못했다. 다만 이 씨가 치매를 앓아왔다는 가족들의 증언을 기반으로 사고사 처리를 했다”고 말했다.
하천 주변에 마을이 2~3곳 있었고 하천의 물살이 세지 않았다는 점 등을 살펴보면 위험 요소는 다소 적은 편이었지만 이 씨는 결국 실종된 지 8일째 되던 23일 오전 9시경 경북 어천리 덤버들 주변 하천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발견 당시 이 씨의 시신은 이미 익사한 지 꽤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 상당히 불어있는 모습이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유가족이 이 씨의 부검을 거부했기 때문에 이 씨의 사망 시점을 정확히 파악하긴 어렵지만 의료계의 한 전문가는 “발견된 시신 상태를 기준으로 추정하면 아마도 실종 당일이나 그 다음 날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렇다면 실종 당일 이 씨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번 사건을 담당했던 청송서 측은 ‘타살의 흔적은 없었다’며 수사를 마무리 지은 상태지만 여전히 의문점은 남아있다. 첫째, 이 씨가 치매 증세를 앓아왔다는 내용과 관련 경찰과 유가족 간의 엇갈리는 진술이 바로 그것이다.
실종 당일 이 씨의 모습이 촬영된 CCTV에서 불과 1~2분 거리에 위치한 지리마을 주민 김 아무개 씨는 “15일 오후 2시경 이 씨를 실제로 봤다. 이 씨는 마을 입구로 걸어오더니 ‘산에서 길을 잃었다. 포항 딸네 집에 가야 한다’며 포항 가는 길을 묻더니 1분도 안돼서 곧바로 자리를 떴다. 그날따라 마을에 경운기 사고가 나 주민 6~7명이 소방대원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 씨가 그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좀 붙잡아 둘 걸 그랬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김 씨는 이 씨의 당시 행동에 대해 “‘포항으로 가야 한다’며 횡설수설하는 모양새가 정상인과는 약간 다른 것 같았다. 그래서 ‘근방으로 나가는 버스가 있으니까 기다리라’고 권하자 이 씨는 ‘내가 알아서 타고 가겠다’하고 마을 밖으로 걸어 나갔다”고 덧붙였다. 김 씨 말고도 당시 이 씨를 직접 본 마을 주민 2~3명도 ‘이 씨가 좀 술에 취한 듯 이상했다’고 증언했다.
경찰 역시 “유가족이 경찰조사에서 ‘이 씨가 평소 치매를 앓았다’고 진술했다. 치매 노인이라서 무의식의 힘으로 집중해서 앞으로만 걷다보니 험준한 산세를 헤치고 나올 수 있었고, 종국엔 발을 헛디뎌 강에 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뒤늦게 경찰과는 다른 주장을 했다. 숨진 이 씨의 막내 딸 이 아무개 씨는 2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어머니는 치매를 앓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치매 증세도 없는 멀쩡한 노인이 길을 헤매다 돌아가시게 된 경위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오래 통화를 할 수 없다”며 전화를 급히 끊었다.
한편 숨진 이 씨의 동네 주민 김 아무개 씨(50대)는 “올해 초 이 씨를 몇 번 봤는데 치매 증세가 있는 노인으로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의료원 치매전문의 서상원 교수는 “치매는 갑자기 오는 병이 아니라 서서히 진행되는 병이다. 따라서 사건 정황만으로 이 씨의 치매 증세를 판단하기엔 어렵다”고 진단했다.
둘째, ‘실종 신고가 늦어진 점’도 의문으로 남아있다. 유가족이 경찰조사와 최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 씨의 치매 증세에 대해 말을 바꾼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순 없다. 그러나 만약 유가족의 최초 증언대로 이 씨에게 치매 증세가 있었다는 게 사실이었다면 치매 노인을 홀로 내버려두고 나머지 가족들이 3~4시간 정도 자리를 비웠다는 점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더군다나 이 씨의 실종 사실을 인지한 시점이 15일 오후 3시경이었지만 경찰 신고를 그 다음 날 오전 11시경에 했다는 것도 다소 의아한 부분이다. 이에 대해 이 씨의 막내딸은 “실종되기 5일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금방 (이 씨를) 찾았다. 이번에도 가족들끼리 노력하면 어머니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저히 우리 힘으로 찾을 수 없어서 뒤늦게 119에 신고하게 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셋째, 이 씨가 홀로 험난한 산세를 포함한 5㎞ 상당의 거리를 헤맨 점도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경찰은 ‘치매 노인이라서 무의식의 힘으로 집중해서 걸은 것 같다’고 추측했다. CCTV에 촬영된 실종 당일 이 씨의 모습은 험준한 산세를 헤쳐 내려온 노인의 모습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정정해 보인다. 때문에 이렇게 신체 정정한 노인이 발을 헛디뎌 강에 빠졌다는 부분 역시 의문점 중의 하나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철저히 수사해서 타살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냈다. 유가족도 어머니가 사망한 걸 알자 통곡하며 무척 슬퍼했다. 서투른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말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 이명박 대통령의 8촌 누나가 살았던 포항시 죽도동 이층집. |
주변에 아무도 친척인 줄 몰랐다
‘정재계 일가는 10촌이 넘는 먼 친척까지 따진다’는 말이 있다. 일반인들이야 4촌 친인척도 가끔 만나지만 정재계는 긴밀함의 정도가 일반인과 다르다는 것을 빗대어 나온 말이다. 지난 23일 ‘대통령의 먼 친척 누나가 실종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대통령의 친인척답게 일반서민과는 다른 삶을 살아왔지 않았겠느냐. 실종사를 왜 했는지 궁금하다”며 각종 추측이 무성했다.
그런데 실제로 숨진 이 씨의 가족사를 살펴보니 예상과는 달리 ‘평범한’ 서민 축에 속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씨의 수사를 맡았던 청송서 관계자는 “대통령 친인척이라고 하기에 조심스러웠지만 그 쪽에서 먼저 90도로 인사하고 대통령 이름을 들먹이지도 않았다. 첫째 아들의 경우 굉장히 겸손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옷차림으로 보아 집안 사정이 그다지 부유해보이진 않았다”고 덧붙였다.
숨진 이 씨는 2남 3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이 씨가 숨지기 직전까지 함께 살았던 이는 첫째 아들 이 아무개 씨(52)로 포항시 죽도동에서 채소도매업을 하는 것으로 확인했다. 이와 관련 경찰은 “이 씨의 딸 3명은 직업이 없으며 둘째 아들에 대해서도 신상을 파악하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이 씨가 첫째 아들과 함께 지냈던 포항시 본가를 직접 찾아가봤다. 지하 1층(18.42㎡), 지상 2층(81.97㎡/45.81㎡)으로 구성된 이 씨의 집은 오랫동안 관리를 안 해온 것으로 보일 만큼 돌무더기와 나뭇잎이 무성했고 대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이 씨의 첫째 아들이 자주 이용한 것으로 알려진 근방 세탁소 주인은 “이 동네서 20년째 세탁 일을 해왔다. 이 씨와 7~8년 동안 거래를 해오는 동안 이 씨 가족이 단 한 번도 자신들이 대통령 친인척이라는 걸 말한 적이 없었다”면서 “이번에 실종사한 할머니를 첫째 아들이 모시고 살았는데 효심이 지극해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2002년 7월 포항시 죽도동으로 이사를 왔다. 이 주택을 매입할 당시 농협에서 약 1억여 원을 대출받았다.
세탁소 주인은 “이 씨네 집이 그럭저럭 형편이 괜찮은 것으로 알고 있다. 첫째 아들이 자기 소유의 밭에서 난 채소를 매일같이 트럭에 가득 실어서 시장에 대량으로 내다팔았다. 새벽 6시에 일어나 부지런히 일을 하러 나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역시 “이 씨네는 새벽같이 일하러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 통에 동네 주민들과 별로 친분이 없었다. 실종사한 할머니는 매일 첫째 아들과 함께 시장에 나갔다가 오후쯤이면 혼자 집으로 들어오곤 하셨다”고 말했다.
이 씨네 가족이 주변에 대통령 친인척이란 사실을 알리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유가족은 10월 25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어머니는 평소 이명박 대통령에게 누가 될까봐 대통령 친인척이라는 사실을 되도록 주변에 알리지 않으려고 하셨다”면서 “대통령의 또 다른 친인척 몇몇과는 친하게 지내는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대통령의 먼 친척 누나인 이 씨의 죽음에 대해 청와대는 어떤 입장을 나타내고 있을까.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의 먼 친척이 최근 실종사했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대통령의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에 (대통령께서) 조화를 보내셨는지의 여부에 대해선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라고 답변했다.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