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자자 섹스리스 부부가 점점 늘고 있다. 스트레스, 우울증, 뇌종양 등이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일요신문 DB |
성행위를 시작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인 성욕. 성적자극을 받고 성욕을 느끼면 뇌에서 모노아민이란 신경전달물질이 나와 안드로겐 등 성호르몬이 분비돼 성행위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뇌 깊숙이 위치한 복측 선조체(ventral striatum)가 성욕을 관장하는 중추인데 성욕이 저하될 때는 복측 선조체가 활성화되지 않는다.
일본의 오사카대학 의학연구팀은 뇌와 성적흥미의 관련성에 대해 실험을 했다. 남녀 각기 20명에게 인성검사의 일종인 미네소타 다면 인격검사(MMPI, Minnesota Multiphasic Personality Inventory)를 한 뒤 성인비디오를 보여주고 뇌를 MRI로 찍어 분석했다.
그 결과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고자 하는 ‘사회적 내향성’ 수치가 높은 사람일수록 뇌에서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반면 대인관계가 활발한 이들은 사회적 내향성 수치가 낮았고, 성적자극을 받았을 때 복측 선조체가 매우 활성화된 것으로 드러났다. 사회적 내향성 수치가 가장 높은 수준이었던 사람 몇 명은 성인비디오를 보고 아예 질끈 눈을 감아버리기도 했다.
장기간 스트레스가 쌓여있거나 스트레스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대체로 대인관계에 소극적이거나 무관심하다. 이런 현상을 두고 사회적 내향성이 크다고 한다. 연구팀에 따르면 사회적 내향성이 커지면 반드시 성욕감퇴가 일어나게 된다. 그러니까 시름이 깊을 때는 눈앞에 아무리 섹시한 이가 있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회적 내향성과 관련된 성욕감퇴가 뚜렷이 나타나는 병이 바로 우울증이다. 섹스를 할 마음이 도통 들지 않고 다양한 자극에도 성적흥분이 일어나지 않는 이들은 먼저 밤에 숙면을 취하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울증의 초기증상으로 어깨 결림, 속 쓰림, 수면 시 뒤척임, 불면, 눈의 피로와 함께 성욕감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한 타입의 남성은 우울증에 따른 성욕감퇴가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남성은 대개 직장에서 스트레스가 심해 가벼운 우울증을 앓다 때로 발기부전을 보인다. 그러다가 아내가 행여 바람피운다고 자신을 의심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어 스스로를 몰아세우다가 더 심한 발기부전이 된다. 악순환인 셈이다.
그런가하면 우울증 약을 복용하면서 성욕이 사라지는 부작용도 있다. 예컨대 세로토닌 선택적 재흡수 억제제(SSRI, 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s) 계통의 약에는 발기부전, 사정곤란 등 역효과가 있다.
비교적 나이가 젊은 남편들은 자위에 따른 성욕감퇴에 주의해야 한다. 자위 때는 성욕이 뜨겁게 일어나는데 아내와의 잠자리에서는 삽입만 하려고 하면 발기가 안 되는 유형이다. 남성의 자위 시 발기된 페니스의 무게는 약 80g인데 10㎏ 정도 되는 물건을 잡을 때와 같은 손아귀 힘으로 페니스를 마찰한다. 이런 자극은 워낙 강도가 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성의 질에서 받는 자극은 약하게 느낀다. 그래서 배우자와의 잠자리에서는 정작 성욕이 감퇴하는 것이다.
이밖에 불임에 따른 스트레스도 있다. 서른 중반을 넘어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부부생활이 5년가량 된 30대 후반~40대 초반이 된 부부한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부부가 불임으로 인한 고민이 깊어 심리상태가 불안해 성관계를 피한다. 이를테면 배란일을 알려주며 집에 빨리 오라고 독촉하는 아내의 문자 메시지를 받고 부담스러워 귀가를 꺼리는 남편이 그 경우다.
임신을 서두르는 아내의 성욕감퇴도 남편 못지않다. 하루속히 아이를 갖고 싶다고 초조해하며 필사적으로 임신하려 할 때 여성은 심리적 압박감으로 인해 혈중 유즙분비호르몬(프로락틴)의 농도가 높아진다. 그러면 배란이 억제되어 더욱 임신을 하기 어려워진다. 이런 과정이 되풀이되는 와중에 결국 성욕을 잃는다.
일본의 불임클리닉 가와노 야스후미 박사는 “불임부부는 성행위가 임신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라”고 충고한다. 부담감이 있는 섹스는 기계적인 움직임일 뿐 기쁨이 뒤따르는 성행위가 아니란 점이다. 재미가 없는 성행위는 누구든 하기 싫은 법이다.
한편 우울증처럼 질병에 따른 합병증으로 성욕감퇴가 일어나기도 한다. 뇌염, 뇌종양, 두부외상, 정신분열증, 갑상선질환, 당뇨병에 성욕감퇴가 수반된다. 뇌하수체 선종(고프로락틴혈증)과 같은 희귀병에 걸리면 뇌 시상하부의 쾌락중추 도파민 대사가 항진되어 성선자극호르몬 분비를 억제하고 결국 성욕감퇴가 일어난다.
성욕감퇴가 심각한 경우, 성욕촉진제로 도파민 수용체 작동물질인 아포모르핀(apomorphine)이란 약을 쓰기도 하며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을 보충하기도 한다. 그러나 질병에 따른 성욕감퇴의 경우를 제외하고 성욕을 자극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에 대한 가치관 자체를 전환하는 것이다.
섹스리스를 겪는 부부를 보면 지금은 비록 섹스리스 생활을 하고 있어도 언젠가는 멋진 여행지에 가서 평생 잊을 수 없이 좋은 일생일대의 섹스를 하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는 경향이 있다. 단 한 번의 뜨거운 섹스로 그간의 섹스리스 부부생활로 인한 앙금을 말끔히 털어내고자 하는 환상이다.
이런 사고방식으로는 근본적인 성욕감퇴를 바꾸기는 어렵다. 집에서 일상적인 성생활을 자연스럽게 즐기는 것이야말로 부부의 삶의 질을 높여준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