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노조 가입하면서 트럭시위·콘서트 등 투쟁방식 변화…“집회 목적 모르겠다” 지적도
#2500여 명 모여 춤춰
삼성전자 노동조합 중 최대 규모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24일 오후 1시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가자 서초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문화행사 형식의 집회를 열었다. 집회 목적은 노사협의회가 아닌 노조와의 임금협상,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한 성과급 지급과 휴가제도 개선 등이다. 삼성전자와 전삼노는 1월부터 교섭을 이어갔으나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고 3월 교섭이 결렬됐다. 이후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이 무산되자 전삼노는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합법적으로 파업할 수 있는 쟁의권을 확보하고 협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잇따라 파행을 겪고 있다.
오후 1시부터 2시간 30분 정도 열린 이날 집회는 기존의 쟁의와는 다른 방식으로 열렸다. 이름부터 집회나 쟁의가 아닌 ‘문화행사’를 공식 명칭으로 했다. 과도한 투쟁이 아닌 대중가수의 공연을 중심으로 비노조원과 일반 시민들의 노조 활동에 대한 거리감을 좁히겠다는 취지다.
전삼노 측은 “삼성전자 직원이면 누구나 참석이 가능하다”며 “극심한 경쟁으로 인한 업무 스트레스를 받은 직원들이 잠시나마 스트레스를 풀고 사기를 충전하여 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직원들이 거부감 없이 쟁의에 참여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날 문화행사에 참여한 조합원은 주최 측 추산 2500여 명이다.
문화행사 시간의 대부분은 가수들의 공연으로 채워졌다. 집행부 관계자는 “가수들의 무대를 1시간 30분 정도로 배치하고 위원장 발언이나 노조 구호 외치기를 최소한으로 줄였다”고 했다.
무대 위에는 대형 LED 스크린은 물론 다수의 카메라가 배치됐다. 도로 한 쪽에는 지방에 거주하는 직원들을 위한 대형 버스도 준비되어 있었다. 잠시 후 최근 뉴진스님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개그맨 윤성호가 무대 위로 올라와 디제잉 공연을 펼쳤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대형 LED 스크린에는 ‘내 주식만 떨어져서 고통!’, ‘극락왕생’ 등의 문구가 떴다.
이어 가수 에일리와 YB(윤도현밴드) 등도 무대 위로 올라와 각각 30분가량 공연을 펼쳤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인근 행인들과 외국 관광객들은 에일리의 노래 소리에 관심을 가지며 무대를 지켜보기도 했다. 다만 일부 시민들은 스피커를 통해 퍼지는 커다란 소리에 인상을 찌푸리거나 불쾌한 내색을 표하기도 했다.
공연이 끝난 후 무대 위에 오른 손우목 전삼노 위원장은 “이번 문화행사가 임금을 올려달라는 것이 아니라 피땀 흘린 노동의 대가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2022년 영업이익이 40조 원 이상이었고, 2023년에는 회사가 어렵다고 임금 인상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어떤 회사가 이렇게 불통으로 일관하느냐”며 “앞으로 성과급은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투명하게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삼성전자의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정현호 부회장에게 항의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모였다”며 “아무 권한도 없는 직원들만 방패막이로 내세우지 말고, 정현호 부회장이 직접 노조와 만나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사가 끝난 후에는 대의원들이 남아 기자들의 질의를 받았다. 이 자리에서 이현국 부위원장은 “노조가 임금 인상 6.5%를 요구해서 협상이 결렬된 것이 절대 아니”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동안의 협상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교섭은 정상적으로 이뤄졌으며 사측에서 제시한 인상률 5.1%를 포함해 복지 부분까지 합의가 될 뻔했으나 조합원의 휴가제도 개편안을 두고 노사 간 의견이 모아지지 않아 결렬이 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비판의 시선도 존재한다. 한국노총 산하의 전삼노가 주최하는 집회 현장에 민주노총 금속노조 조합원이 다수 참석했기 때문이다. 이날 현장에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이상섭 수석 부위원장을 포함한 조합원 200명도 함께했다. 전삼노 집행부는 유튜브를 통해 “이번 집회 준비를 위해 금속노조에 지원을 요청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전삼노가 상급단체를 민주노총으로 바꾸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와 관련 이현국 전삼노 부위원장은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상급단체 이동은 규약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에 조합원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고 밝혔다.
#트럭 대여 1일 100만 원대
전삼노의 문화행사 규모가 커진 데에는 4월 열린 1차 쟁의의 공이 크다. 당초 점심시간을 이용해 1시간 정도 열린 쟁의였으나 행사가 끝날 무렵 진행한 팝 밴드에 대한 조합원의 반응이 좋았던 까닭이다.
이처럼 MZ 세대(밀레니얼+Z세대)가 기업의 주축 구성원이 되고 이들이 노조에 가입하면서 쟁의행위 방법도 변화하는 모양새다. 기존 노조의 투쟁방식으로는 노사관계 발전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아이돌 팬덤이 소속사에 항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시작된 트럭시위도 최근 기업 노조의 새로운 시위 트렌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장점은 효율성과 익명성 그리고 저렴한 가격이다. 이에 대해 한 기업노조 관계자는 “(트럭시위는) 전광판에 필요한 문구만 커다랗게 송출되기 때문에 가독성이 좋다. 조합원들을 따로 결집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신원이 드러날 일이 없는 데다 가격도 1일 100만 원대로 가성비가 좋아 (쟁의 방식으로) 자주 거론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24년 2월에는 성과급 지급안에 반발한 LG에너지솔루션 직원 1700여 명이 돈을 모아 3.5톤 트럭을 대여했다. 이들은 노조원이 아닌 일반 직원들로 알려졌다. 트럭은 ‘경영목표 명확하게 성과보상 공정하게’ ‘언론에선 최대실적 내부에선 위기운운’ ‘피와 땀에 부합하는 성과체계 공개하라’ 등의 문구를 전광판에 송출한 채 LG에너지솔루션 본사가 있는 서울 여의도의 트윈타워를 순회했다. 이 밖에도 2월에는 한화큐셀과 BGF리테일의 직원들이 성과급 액수와 지급 방식에 불만을 품고 트럭을 대여했고, 이보다 앞선 2021년에는 스타벅스코리아의 직원들도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대규모 트럭시위를 진행한 바 있다.
과격한 투쟁방식에서 탈피해 노사가 함께할 수 있는 콘서트를 여는 사례도 생겼다. 한국노총 충남세종지역본부는 5월 1일 근로자의날 집회 대신 사용자 단체인 충남버스운송사업조합과 ‘슈퍼히어로콘서트’를 열고 시민 5000여 명을 무료 초청했다. 비노조원과 일반 시민의 참여를 독려하고 노사상생 문화를 이어가자는 취지였다. 이날 콘서트에는 가수 알리, 영탁, 장민호, 정동하, 주현미, 진성 등이 무대에 올랐다.
다만 조합원 결집에만 신경을 쓰느라 집회 목적과는 다소 동떨어진 행사를 진행하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5월 24일 집회 인근에서 만난 한 시민은 “집회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노조 탄압을 중지하라고 요구하는 자리에 왜 가수들이 와서 노래를 부르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5월 28일 열린 삼성전자와 전삼노의 8차 본교섭은 사측 인사 2명의 교섭 참여를 두고 노사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또 다시 결렬됐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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