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열린 바이든 캠프의 기금 모금 행사에는 유명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굳건한 지지를 표명했다. 바이든의 재선을 독려하기 위해 모인 버락 오바마,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비롯해 퀸 라티파, 레아 미셀, 신시아 에리보 등이 한자리에 모여 유명인사의 힘을 보여주었다. 이날 모인 기금은 무려 2600만 달러(약 357억 원)였다.
하지만 그 순간 행사장 밖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반대하는 시위대가 목소리를 높이면서 바이든 정부를 비난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백악관에 대한 민심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여론조사기관 SSRS가 실시한 CNN 여론조사에서는 유권자의 71%가 바이든 정부의 중동 정책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러니 할리우드 스타들 사이에서도 보기 드문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분열은 지난 3월 열렸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나타났다. 시상식 시즌 내내 스타들은 자신이 어느 쪽을 지지하는지 알려주는 표식과도 같은 배지를 착용하고 레드카펫을 밟았다. 요컨대 빨간색의 ‘아티스트4시즈파이어’ 배지를 착용하고 나타난 스타들은 빌리 아일리시, 마크 러팔로, 라미 유세프 등으로 이들은 모두 친팔레스타인 성향이었다. 이 배지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휴전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에 서명한 유명인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아티스트4시즈파이어’ 단체를 의미한다. 이 공개서한에 서명한 다른 스타들로는 벤 애플렉, 브래들리 쿠퍼, 케이트 블란쳇, 신시아 닉슨, 드레이크, 두아 리파, 아메리카 페레라 등 수백 명에 달한다.
반면, 노란색 리본을 착용하고 나타난 스타들도 있었다. 이는 가자지구에 억류된 이스라엘 인질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뜻을 담고 있었으며, 데브라 메싱, 티파니 해디시, 스쿠터 브라운을 포함해 일부 친이스라엘, 유대인 유명인사들이 포함돼 있었다.
보다 직접적인 행동을 하는 스타들도 있다. 얼마 전 트럼프의 성 추문 입막음 사건 관련 재판이 열린 뉴욕 법원 앞에서 트럼프 지지자들과 언쟁을 벌였던 로버트 드 니로가 한 예다. 평소 트럼프에 대한 막말을 서슴지 않았던 드 니로는 그날도 “내 생각에 그(트럼프)는 괴물이다. 인간도 아니다. 돼지라고 부를 수도 있다. 돼지라고 부르면 돼지한테 미안할 것 같다”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아카데미 시상식 진행을 맡았던 지미 키멀의 경우에는 무대에서 “트럼프 대통령님,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보자, 감옥에 갈 시간이 지나지 않았나요”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이 밖에 친민주당 성향의 스타들로는 6월 열리는 모금 행사에 참석을 예고한 조지 클루니, 줄리아 로버츠가 있으며, 지난 5월 뉴욕에서 바이든의 기금 모금 행사를 주최했던 마이클 더글러스와 캐서린 제타 존스 부부도 있다. 또한 에바 롱고리아, 코니 브리튼 역시 역대 선거에서 늘 민주당 후보를 지지해왔던 대표적인 할리우드 스타들이다.
반면, 2016년과 2020년 대선에 이어 이번에도 역시 트럼프 지지를 선언한 존 보이트는 “국익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도널트 트럼프다. 그는 파멸로부터 미국을 구할 유일한 인물이다”라며 공공연하게 지지를 표명해왔다. 앤젤리나 졸리의 아버지이기도 한 보이트는 지난 2월에는 ‘OK!’ 잡지를 통해 “그는 환대를 약속하고 전투를 벌였다”라고 언급하면서 트럼프를 성경 속 인물과 비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또한 “이 나라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을 믿으라. 조롱당하고 파괴된 예수처럼, 트럼프도 돌아와 모두를 위한 아메리칸 드림을 구하고, 그의 힘으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 것이다”라고 치켜세웠다.
래퍼에서 컨트리 가수로 변신한 키드 록은 여러 매체를 통해 트럼프와의 우정을 자랑하고 있다. 함께 UFC 경기를 관람하거나, 트럼프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함께 골프를 치기도 했으며, 심지어 2022년 ‘배드 리퓨테이션’ 투어에서는 트럼프가 보내온 영상 편지를 상영하기도 했다. 이 영상 편지에서 트럼프는 키드 록을 가리켜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연예인 가운데 한 명”이라며 칭찬했다.
카니예 웨스트 역시 대표적인 트럼프 지지자다. 2016년부터 공개적으로 트럼프와 친분을 다지고 있으며, 트럼프타워에서 개인 회동을 갖거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등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바이든 대 트럼프로 분열되긴 했지만, 공개 지지를 주저하는 분위기 또한 확산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와 관련, CNN은 복수의 소식통을 통해 “많은 스타들이 극단적으로 분열된 정치 지형 속에서 싸움에 뛰어들길 경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령 2020년 대선 당시 바이든을 지지했던 드웨인 ‘더 락’ 존슨은 최근 ‘폭스뉴스’에서 “이번에는 어떤 후보도 지지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수년 전부터 소셜미디어에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해 왔던 래퍼 카디 비 역시 “이번 선거에서는 투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폴리테이너였던 카디 비는 지난 선거에서는 바이든을 지지했으며, 선거 때마다 팔로어들에게 투표장으로 나가도록 독려해왔다. 그러나 올해는 트럼프와 바이든 모두 미국을 위한 최선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당신들 둘 다 밥맛이야!”라며 직접적인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런 분위기에 대해 CNN과 통화한 한 연예인 홍보 담당자는 "10년 전과는 다른 세상”이라면서 “누구도 행복하게 할 수 없다.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컨설턴트는 “그렇게 하는 게 가치가 있을까”라고 의문을 표했다. 다시 말해 오늘날 극단적으로 분열된 세계에서 괜히 한쪽에 치우친 성향을 보였다가는 되레 손해만 볼 수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많은 유명인들이 올해는 후보가 아닌 특정 이슈와 관련해서 태도를 취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가령 수잔 서랜든의 경우에는 친팔레스타인 집회에 참석해 반유대적인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소속사로부터 해고를 당했으며, 머라이어 캐리는 지난해 12월, 두 자녀를 데리고 백악관을 방문해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돋우었지만 돌아온 반응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전쟁으로 파괴된 가자지구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난을 퍼부은 한 평론가는 “캐리는 대량학살을 지지하고, 기여하고 있다”라며 비난했다. 또 한 누리꾼은 “역겹다. 좋아하는 스타 명단에서 삭제하겠다”라며 반감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이 이른바 ‘틱톡 세대’ 사이에서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다. 이들 가운데 다수는 이번 선거가 처음인 유권자들이며, 바이든 정부의 중동 전쟁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특히 Z세대 스타인 젠데이아, MZ세대를 비롯해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과연 어느 쪽에 설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이와 관련, 트럼프를 맹비난해온 코미디언 마이클 라포트는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대학 캠퍼스에서 반유대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때문에 어쩌면 트럼프가 선거에서 이길 수도 있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젊은 표심 이끄는 테일러 스위프트 이번에도 바이든 밀어줄까
“오늘날 그의 한마디가 민주주의의 미래를 결정할지 모른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해 보도한 영국 ‘가디언’은 이렇게 말하면서 “스위프트의 표심이 2024년 대선에서 가장 탐이 나고, 경쟁적인 포상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고 보도했다. 그런가 하면 ‘뉴욕타임스’는 “‘바이든의 재선 캠페인이 스위프트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필사적이다’라는 보도가 나간 후 트럼프 지지자들은 스위프트에게 ‘성전’을 선언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심지어 ‘폭스뉴스’의 평론가들은 아예 스위프트에게 ‘정치에 참여하지 말라’고 촉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정치와는 무관한 연예인이 민심을 뒤흔들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긴 할까. 유명인사들의 지지 선언과 유권자들의 선택 사이에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드러난 바 있다. 가령 2008년 대통령 예비선거 직전 오프라 윈프리가 버락 오바마 지지를 선언한 후 표심이 어떻게 변했는지 연구한 조사에서는 윈프리의 지지가 오바마에게 100만 표를 더 가져다주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스위프트의 사례도 비슷하다. 지난 대선을 보면 스위프트의 공개 지지 역시 선거 결과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스위프트의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2억 8000만 명이 넘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2020년 대선 당시 공개적으로 바이든 지지를 표명했던 스위프트는 선거 전 가진 ‘V 매거진’ 인터뷰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변화는 유색인종도 안전하고, 대표될 자격이 있으며, 여성은 자신의 몸에 대해 선택할 권리가 있고, LGBTQIA+ 공동체도 인정받고 사회에 포함될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는 투표 독려 메시지를 게시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의 발언 이후 새로 등록한 유권자 수는 무려 3만 5000명에 달했다.
‘슈퍼 화요일’이었던 지난 3월 5일에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스위프트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여러분을 가장 잘 대표하는 사람에게 투표하세요” “아직 투표하지 않았다면 오늘 투표하세요”라는 메시지를 게시하자 이번에도 역시 등록 유권자 수는 순식간에 급증했다.
사정이 이러니 스위프트의 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건 민주당이나 공화당 모두 마찬가지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내심 기대하고 있는 반면, 공화당 입장에서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심지어 음모론을 퍼뜨리는 공화당 지지자들도 있다. 이를테면 스위프트와 바이든 사이에 모종의 커넥션이 있다는 것이다. 스위프트가 바이든의 재선을 돕는 정부 비밀요원이라고 주장하는 트럼프 핵심 지지자도 있다. 실제 ‘가디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5분의 1 미만의 사람들은 스위프트가 바이든의 재선을 돕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고 믿고 있었다.
현재 사귀고 있는 미식축구 선수인 트래비스 켈시와의 연애가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2022년 공화당 하원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한 우파 인플루언서인 잭 롬바르디는 “미국 여성들의 감정을 사로잡고 조종하기 위해 연애하는 척한다”고 주장했다. 영향력 있는 우익 음모론자인 잭 포소빅 역시 “나는 그들이 지금 스위프트를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그들은 선거에서 스위프트를 이용하기 위한 작전을 꾸미고 있다. 결국 스위프트의 팬들을 자신들의 지지자로 만들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렇다면 과연 이번 선거에서도 스위프트는 민주당 편에 설까. 아직까지는 정치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알 수는 없다. 다만 2023년 11월 실시된 NBC뉴스의 여론조사에서 등록 유권자의 40%가 스위프트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응답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번 선거에서도 스위프트의 선택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스위프트가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 유권자들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