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이대호·추신수도 ‘전공’ 바꿔…투수·타자 쓰는 근육 달라 ‘전향’ 성공 쉽지 않아
#장재영 야수 데뷔전 어땠나
장재영은 덕수고 시절부터 시속 150㎞ 중반대 강속구를 뿌린 특급 투수 유망주였다. 키움은 2021년 장재영을 1차 지명하면서 KBO리그 역대 신인 계약금 2위에 해당하는 9억 원을 안겼다. 그러나 그는 입단 후 고질적인 제구 불안에 발목을 잡혀 좀처럼 1군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다.
올해는 스프링캠프 막바지부터 팔꿈치 통증을 호소해 재활군에서 개막을 맞았다. 지난달 1일 퓨처스(2군)리그 삼성 라이온즈전에 등판해 실전 복귀 준비를 시작했지만, 손가락 저림 증상을 느껴 공 11개만 던지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결국 정밀 검진에서 팔꿈치 인대접합수술(토미존서저리)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고 고심 끝에 투수의 길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그 후 2군 19경기에 출전하면서 본격적으로 야수 전향 준비를 시작했다. 타율은 0.232(69타수 16안타)에 그쳤지만, 홈런 5개를 치고 13타점을 올리면서 거포 잠재력을 보였다. 특히 1군 콜업 전 4경기에서 홈런 3개를 몰아치며 기세를 올리자 홍원기 키움 감독은 그의 기량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장재영은 첫 타석부터 출루해 홈을 밟는 행운을 잡았다. 0-0으로 맞선 3회 초 선두 타자로 나선 그는 문동주의 초구 직구와 2구째 커브에 배트를 내지 않고 참았다. 결국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출루했다. 후속 타자 이주형이 문동주를 상대로 우중간 선제 2점 홈런을 때려내면서 장재영은 1군 무대 첫 득점을 올렸다. 키움이 이날 7-0으로 승리해 이 득점이 결승 득점으로 기록됐다.
2-0 리드가 이어진 4회 초에는 데뷔 첫 안타를 장타(2루타)로 장식하며 기세를 올렸다. 2사 1루에서 문동주의 바깥쪽 낮은 직구를 깨끗하게 밀어 쳐 우익선상 깊숙한 곳까지 흘러 나가는 2루타를 때려냈다. 당황한 한화 우익수 김태연이 한 차례 공을 더듬는 사이 1루 주자 이재상이 홈을 밟았고, 장재영은 2루에 안착했다. 공식 기록원은 장재영의 안타에 야수 실책이 겹친 득점이라고 판단해 타점은 주어지지 않았지만, 많은 이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활약이었다.
장재영은 4-0으로 앞선 6회 초 1사 1루 세 번째 타석에선 슬라이더-커브-커브로 이어진 변화구 볼배합에 당해 3구 삼진으로 돌아섰다. 문동주는 앞선 두 타석에서 장재영에게 직구 위주 승부(직구 5개·커브 1개)를 했지만, 세 번째 대결에선 공 3개 모두 변화구만 던졌다. 장재영은 키움이 7-0으로 승기를 잡은 7회 초 주자 1·3루 마지막 타석에서 한화 오른손 투수 남지민을 상대했고, 7구 승부 끝네 볼넷을 골라 만루 기회를 이어갔다. 최종 성적은 2타수 1안타 2볼넷 1삼진 1득점. '타자 장재영'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준, 인상적인 첫 경기였다.
#투수와 타자는 쓰는 근육이 다르다
이전에도 타자 전향을 시도한 투수들은 종종 나왔다. 특급 성공 사례들도 많다. 이승엽, 이대호, 추신수(SSG 랜더스) 등 내로라하는 한국 야구의 대표 타자들도 모두 프로 스카우트에게 투수로 뽑혔다가 입단 이후 타자로 전공을 바꿨다. 그러나 이들은 기본적으로 '천재' 소리를 들으며 야구하던 선수들이다. 모두가 이렇게 성공만 하는 건 아니다. 변화에 실패해서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거나, 이도 저도 아닌 성적표를 받아드는 선수들도 많다. 새 역할에 완벽하게 적응하고 성공하려면 타고난 감각과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까닭이다.
투수와 타자는 일단 주로 사용하는 근육부터 다르다. 투수는 수직 회전력을 사용해 공을 던지고, 타자는 수평 회전력에 의해 타격을 한다. 기본적인 워밍업 프로그램 외에는 몸 관리와 훈련 방식부터 모두 다르다. 이미 성인이 된 프로선수들은 기본적인 골격과 근육이 이미 자리잡힌 상태라 더 바꾸기가 어렵다. 한 트레이닝 코치는 "포지션 전향은 기본적으로 몸이 타고난 선수여야 수월하게 할 수 있다. 근육이 잘 잡히고 타고난 유연성과 스피드가 좋은 선수가 바뀐 훈련 방식에 좀 더 빠르게 적응한다"고 했다.
투수 출신 선수가 타격을 하려면, 손의 악력부터 키우는 게 필수다. 투구 때 공을 잡아채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악력이다. 배트를 쥐고 공을 때리면서 팔로스로까지 힘을 유지해 이어가려면 팔의 윗부분과 아랫부분 근육을 고루 강화헤야 한다. 회전력을 높이기 위해 허리와 하체 근육도 집중적으로 단련한다. 무엇보다 타격 훈련 때는 부상부터 조심해야 한다. 배트로 공을 강하게 칠 때 손목과 손가락에 큰 충격이 오기 때문이다. 투수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종류의 통증이다. 타석에서의 심리적 압박감 역시 투수 출신들이 극복해야 할 요소다.
심지어 근육은 만드는 것보다 유지하는 과정이 더 어렵다. 성인 선수들은 신체 적응력이 학창 시절보다 확실히 떨어진다. 필요한 근육을 만들어 놓아도 그 움직임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1~2년 안에는 완벽하게 변신하기 어려운 이유다. 실제로 내로라하는 특급 선수들조차 타자 전향 3년째 되는 시즌에야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곤 했다. 이승엽은 타자 전향 첫 해인 1995년 타율 0.285, 13홈런을 기록한 뒤 이듬해에도 타율 0.303, 9홈런으로 적응기를 거쳤다. 그러다 3년째인 1997년에 타율 0.329, 32홈런으로 완벽하게 자리잡았다. 이대호도 롯데 입단 첫 해인 2002년부터 타자로 활약했지만 3년째인 2004년에 처음으로 20홈런을 넘기면서 '거포'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연세대 시절까지 에이스로 활약하다 NC 다이노스 입단 후 완벽한 중장거리 타자로 탈바꿈한 나성범(KIA 타이거즈)도 다르지 않다. 2012년 2군에서 타자로 워밍업한 그는 NC가 1군에 첫 진입한 2013년에는 타율 0.243에 홈런 14개로 평범한 성적을 냈다. 그러나 3년째인 2014년 3할-30홈런-100타점 고지를 동시에 밟으면서 첫 골든글러브까지 손에 넣었다. 이후 중심타자로 승승장구해 2022시즌을 앞두고 고향팀 KIA와 6년 총액 150억원의 대형 자유계약선수(FA) 계약에 성공하는 '대박'을 터트렸다.
#투수→타자가 그 반대보다 쉽다
다행히 투수가 타자로 전향하는 쪽이 그 반대의 케이스보다는 수월하다고 알려져 있다. 타자가 투수로 변신하는 데 필수적인 어깨 근육 강화가 다른 어떤 숙제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또 근육을 만드는 것 이외에 변화구를 장착하고 제구를 다듬는 시간도 추가로 필요하다. 투수 출신인 한 전직 프로야구 감독은 "투수는 어깨와 팔꿈치를 비롯해 부분적으로 단련해야 하는 부위가 많다. 야수가 투수로 전향하면 상대적으로 잔근육이 부족해 어깨 근력을 단기간에 끌어올리기가 어렵다"고 했다. 또 다른 투수 출신 야구 관계자도 "아무래도 타자가 투수로 전향하는 건 어깨와 팔꿈치 쪽 부상을 비롯해 위험 요소가 많다. 투수 전향을 시도하던 야수들이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벽이 바로 어깨 통증"이라며 "투수는 자신의 몸에 맞는 최적의 투구폼을 찾아서 그 밸런스로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아무리 공이 빠르고 어깨가 강해도 계속 투수로 버틸 수 있는 내구성은 장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학창시절 '야구 좀 했다' 하는 선수들은 대부분 '에이스 겸 4번 타자' 출신이다. 고3 때까지는 타자를 겸업하다 프로에 입단하면서 투수를 선택한 사례가 대부분이다. 장재영도 고교 시절 덕수고 에이스로 활약하는 동시에 청소년 국가대표팀 4번 타자를 맡았을 만큼 타격 재능이 뛰어났다. 이 때문에 투수 출신들이 타자로 전향하면 적응기간을 한결 단축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 야수들이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건 학창시절에도 거의 없는 일이다. 그만큼 투수가 특수한 포지션이라서다.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해 일가를 이룬 선수는 종종 나왔지만, 타자로 입단했다가 투수로 전향해 성공한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인 이유다.
#그들이 야수 전향을 결심한 이유
포지션 전향은 한 선수의 야구인생이 걸린 문제다. 부상이나 팀 사정 등의 피치 못할 이유로 원래 포지션에서 한계에 부딪쳤을 때, 선수가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대안이다. 당연히 권유하는 지도자도, 고민하는 선수도 무척 신중해진다. 물론 모든 선수가 고를 수 있는 옵션도 아니다. 반대쪽 분야에서도 눈에 띄는 재능을 보인 극소수에게만 이 특권이 허락된다.
타자 전향의 초창기 성공 사례로 꼽히는 김응국은 1988년 롯데에 투수로 입단한 뒤 주로 2군에 머물렀다. 그런데 투수들끼리 벌인 홈런 레이스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 선수가 모자란 2군의 빈자리를 메우려고 타석에 섰다가 안타를 치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급기야 1989년 전반기에 OB(두산의 전신)와의 2군 경기를 참관하러 온 구단 사장 앞에서 만루홈런까지 날려 버렸다. 사장은 주변 관계자들에게 "저 선수가 원래는 투수다"라는 얘기를 듣고 "그렇다면 아예 타자를 한번 시켜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안 그래도 타격에 점점 흥미를 느끼고 있던 김응국이 투수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된 계기였다. 김응국은 후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배트를 잡았고, 이후 올스타전 MVP와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하며 타자로 다시 태어났다.
사실 촉망받는 유망주였던 김 코치가 투수를 포기한 건 고려대 시절 어깨를 다친 탓이 컸다. 과거 프로 입단과 동시에 타자로 전향한 투수 출신 선수들은 대부분 김 코치와 비슷한 이유로 변화를 결심했다. 이대호 역시 입단 후 첫 스프링캠프에서 어깨가 고장나는 바람에 타자가 된 케이스다. 원래 이대호의 직구 구속은 시속 140㎞대 중반까지 나왔지만, 부상 이후 시속 130㎞대 초반까지 떨어지면서 "체격에 비해 공이 너무 느리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그러자 우용득 당시 롯데 2군 감독이 타자 전향을 권유했고, 이대호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그 선택의 결과는 잘 알려진 대로다. 이대호는 2010년 전무후무한 타격 7관왕의 위업을 남기는 등 KBO리그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레전드 타자가 됐다.
나성범의 사례는 이들과 조금 다르다. 그는 스카우트들이 이른바 '지옥에 가서라도 데려 온다'는 왼손 강속구 투수였다. 게다가 대학 3학년 때부터는 아예 배트를 내려놓고 2년간 투수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고교 시절부터 나성범을 눈여겨 봐온 김경문 당시 NC 감독(현 한화 이글스 감독)은 첫 면담 자리에서 곧바로 타자 전향을 제의했다. 이유는 역시 대학 시절의 어깨 부상이었다. 김 감독은 훗날 "부상 이전 나성범의 공이라면 프로에서도 10승 이상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깨를 다친 대학 3~4학년 때의 공으로는 1년에 7~8승 정도 하는 평범한 투수에 그칠 것 같았다"며 "오히려 타격 쪽으로 다른 선수들보다 자질이 뛰어나고 체격 조건도 좋다고 판단했다. 평범한 투수로 남기보다 뛰어난 타자로 대성해서 새로 창단한 NC의 구심점이 돼주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결국 타자 전향은 나성범과 NC, 김경문 감독에게 모두 최고의 선택이 됐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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