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가요계에 ‘한 획’. 공연예술가로 ‘인생 2막’…재정난에 건강 악화 겹쳤지만 대학로 지켜
7월 22일 공연예술계에 따르면 김민기는 전날 지병인 위암 증세가 악화해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지난해 위암 판정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아왔다.
1951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회화과에 입학한 후 1970년 동문 김영세와 포크 듀오 ‘도비두’를 결성해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대표곡 ‘아침이슬’ ‘꽃 피우는 아이’ 등이 수록된 ‘김민기 1집’(1971년)은 고인의 데뷔음반이자 마지막 정규음반이다. 가수 양희은도 노래해 유명해진 ‘아침이슬’은 대학생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다.
당대 20, 30대 젊은 층에게 ‘아침이슬’은 민중가요로서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나 이듬해 유신정권에 의해 방송금지,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다. 고인이 직접 쓴 시적인 가사는 당시 번안곡 위주이던 우리나라 포크 음악계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활동에도 제재가 이어졌지만 ‘상록수’ ‘공장의 불빛’ 등 히트곡을 꾸준히 발표했다.
1990년대에는 공연 연출가로서 인생 2막을 열었다. 고인은 1991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훗날 대학로 공연문화의 상징이 된 소극장 학전을 개관한다. 초기에는 가수들의 콘서트장으로 활용됐다. 아이돌 문화가 급속 확산하면서 설 곳이 사라진 가수들에게 무대를 제공하며 오늘날 인디밴드 공연문화의 기틀을 만들었다.
이후 학전에서는 시인과 촌장, 동물원, 유재하, 나윤선, 윤도현 등 걸출한 인재들을 배출했으며, 그중 최고의 스타로 꼽히는 고(故) 김광석은 1991∼1995년 매년 라이브 콘서트를 열었다. 극장 입구에는 김광석을 추모하고자 세워진 ‘김광석 노래비’가 17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고인은 1994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초연하며 국내 창작뮤지컬 바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독일 극작가 폴커 루트비히의 ‘1호선’을 1990년대 말 한국 상황에 맞춰 각색해 2023년까지 8000회 이상 공연해 7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고인은 이 작품으로 윤이상, 백남준에 이어 2007년 한국인으로서는 3번째로 독일 문화훈장인 괴테 메달을 수상했다. 그밖에 뮤지컬 ‘모스키토’, ‘의형제’, 연극 ‘복서와 소년’ 등을 제작했다.
특히 고인은 2008년 ‘지하철 1호선’의 4천 번째 공연을 올렸을 당시를 학전 역사에서 가장 의미 있는 순간으로 꼽았다. ‘학전 독수리 5형제’로 불린 설경구·김윤석·황정민·장현성·조승우를 비롯한 수많은 배우들이 ‘지하철 1호선’에 출연했다.
고인은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면서도 대학로를 지켰다. 1991년 개관 당시 임대료, 설비비 등 재원을 마련하려다 매일 병원 신세를 지고, 극장으로 진 빚을 갚기 위해 22년 만에 신보(1993년)를 내는 등 악착같이 버텼다. 하지만 오랜 재정난에 고인의 건강 문제까지 겹치면서 창립 33돌을 맞은 학전은 2024년 3월 15일 문을 닫고 말았다.
고인은 위암 투병 중에도 마지막까지 ‘지하철 1호선’을 비롯해 어린이극 ‘고추장 떡볶이’ 등 공연을 올리는 데 매진했다. 동아연극상 작품상(1999년) 한국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2018년) 호암문화재단 호암상 예술상(2020년) 등을 수상했다.
고인은 학전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좀 더 열심히, 더 많이 뛸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학전을 기억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아내 이미영 씨, 장남 김종화 씨, 차남 김소윤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대학로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2·3호실)에 차려졌다. 조문은 22일 오후 12시 30분부터 가능하다. 고인의 뜻에 따라 조의금과 조화는 정중히 사양한다고 유족은 전했다. 발인은 24일 오전 8시, 장지는 천안공원묘원이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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