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진명여고 자리, 경호처 직원 훈련 용도로 활용…과거 서울시가 토지 편법 매입해 청와대로 소유권 이전
서울중앙지검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청탁금지법 위반 등과 관련해 김 여사를 20일 비공개 조사했다. 이날 검찰 조사는 오후 1시 30분쯤부터 다음 날 새벽 1시 20분까지 약12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문제는 장소였다. 검찰은 김 여사를 검찰청사로 부르지 않고 외부에서 만났다.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소환하지 않고 출장 조사를 나간 것이다. 논란은 조사가 이뤄진 곳이 검찰청사가 아닌 ‘제3의 장소’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증폭됐다.
#영부인 조사 장소는 대통령 경호처 소유의 경호안전교육원
김 여사가 검찰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보도된 것은 조사가 모두 끝난 21일이었다. 일요신문은 이튿날인 22일 서울 종로구 창성동을 찾았다. 김 여사가 조사를 받은 정부보안청사는 경호처부속청사인 경호안전교육원이었다. 주택가에 위치한 교육원은 청와대 사랑채에선 도보로 252m 거리에 있었다. 바로 맞은편엔 경복궁이 있다.
경호안전교육원은 경호처 직원들을 대상으로 각종 훈련과 교육이 이뤄지는 곳이다. 2022년 경호처가 홈페이지에 직접 게재한 글에 따르면 이곳에서 체력, 무도, 사격, 응급처치, 기동 등 ‘경호 기량 5종 훈련’이 실시되고 있다. 드론 조종 자격 과정이나 심폐소생술 전문 교육 등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보안은 철저했다. 높은 돌담과 철조망, 나무로 둘러싸여 외부에선 건물 형태가 잘 보이지 않았다. 후문은 닫혀있었고 정문은 교육원 직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외부인 출입을 제한하고 있었다. 기자가 교육원 인근에 머무르는 동안 건물 안으로 들어간 차량은 단 1대뿐이었다. 네이버와 카카오 지도에도 검색되지 않았다.
조사 장소는 김 여사 측이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여사 측은 조사 장소를 경호안전교육원을 정하고 전날 오후 5시쯤에야 검찰에 이를 통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조사 시간도 20일 오후로 정해졌다. 김 여사의 공식 일정이 없는 날이었다.
이례적인 조사 방식은 계속해서 나왔다. 김 여사를 조사하러 간 수사팀 검사들은 사전에 휴대전화를 제출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출장 조사’ 특혜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JTBC 보도에 따르면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조차 수사 검사들과 연락이 끊겨 조사 진행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경호안전교육원에 들어가기 전 검사들을 상대로 한 신분증 검사도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호안전교육원이 서울중앙지검 관할 내에 있다곤 하지만 경호처 영향력이 훨씬 큰 장소인 셈이다.
#서울시가 편법 매입해 대통령실에 넘겨준 땅
경호안전교육원이 있는 곳은 옛 진명여고가 있던 자리다. 1989년 진명여고가 목동으로 이전하면서 남은 자리를 청와대가 사용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요신문이 폐쇄 등기부(1990년대 후반 전산화 이전 수기로 작성)를 확인한 결과, 해당 부지는 1985년 학교 용지로 지목이 변경되었다가 1989년 9월 7일 서울특별시로 소유권이 이전됐다.
그런데 2년 뒤인 1991년 10월 13일 서울시는 부지 소유권을 총무처(현 행정안전부 전신)로 이전한다. 그로부터 다시 2년 뒤인 1993년 12월 11일 이 땅 소유권은 대통령경호실(현 대통령경호처)로 넘어갔다.
실제 서울시는 1990년대 초부터 청와대 인근 부지를 대거 매입해 대통령실에 넘기기 시작했다. 이때 서울시가 매입한 부지 중 하나가 현재 경호안전교육원이 있는 곳이다. 문제는 서울시가 땅을 매입하고 이를 청와대와 교환하는 과정이 부적절했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땅 매입에 필요한 돈을 예비비 전용 등 편법으로 확보한 후 이를 청와대 경호실 주차장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대통령실은 1만여 평의 노른자 땅을 서울시내 곳곳에 분산된 국유지와 교환했다. 청와대 주변에 있는 땅보다 가치가 훨씬 떨어지는 땅이었다.
당시 언론도 이를 문제 삼았다. 1989년 5월 13일자 한겨레는 “서울시가 행정절차를 무시하고 시 예산 65억여 원을 빼돌려 삼청동, 팔판동 일대 사유지 4300여 평을 사들여 청와대 주차장 등 부대시설로 사용할 수 있도록 추진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시유지와 국유지를 교환하는 내용의 안이 올라오자 서울시의회에서도 편법 거래라는 지적이 나왔다. 양경숙 당시 서울시의원은 1996년 재무경제위원회의에서 “서울시가 나서서 청와대 주변 도로, 주차장을 정리해주고 부속시설을 확장해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이정의 시의원 역시 “청와대가 제대로 된 땅을 주지 않는다”고 지적했으나 위 안은 그대로 가결됐다.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이전한다는 결정이 나고 인근 주민들로부터 “이제는 청와대 땅을 주민에게 돌려달라”는 요구가 나왔던 이유다.
한편 김 여사 조사 방식을 둘러싼 검찰의 내홍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성역은 없다”며 줄곧 김 여사를 소환 조사할 것임을 시사해 왔던 이원석 검찰총장에게 사전 보고 없이 비공개 조사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패싱 논란’의 당사자가 된 이 총장은 22일 취재진에 “우리 법 앞에 예외도, 특혜도, 성역도 없다고 말씀드렸으나 대통령 부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국민들과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심경을 밝히고 대검 감찰부에 진상 파악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수사팀 소속 검사들은 대검의 진상조사 움직임에 반발해 사표를 제출하는 등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김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을 수사한 김경목 부부장검사는 같은 날 사표를 제출했다. 그는 주변에 “사건을 열심히 수사한 것밖에 없는데 감찰 대상으로 분류한 것에 화가 나고 회의감이 든다”며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공개 조사를 진행한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은 “총장이 제3의 장소를 반대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중앙지검 자체 판단으로 조사를 진행했다”며 “제 불찰”이란 취지의 뜻을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특혜 논란에 대해 “현직 대통령 부인이 검찰에 소환돼 대면 조사를 받은 것은 전례가 없다. 특혜라 주장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했다. 검찰청사가 아닌 정부청사에서 비공개 조사가 이뤄진 배경 등에 대해선 “수사 중인 사안이므로 언급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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