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 인터뷰 내용 지적하고 싶지 않아…협회 시스템 변화는 필요”
안세영은 대한배드민턴협회와 대표팀에 대한 구체적인 불만 사항은 올림픽이 끝난 뒤 공개하겠다는 계획을 내비쳤다. 올림픽을 마치고 모든 선수들이 충분히 축하를 받은 다음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전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28년 전 애틀랜타 올림픽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방수현의 발언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방수현은 이번 파리올림픽에 MBC 해설위원으로 참여했고, 현장에서 안세영의 금메달 획득을 지켜보는 감동과 감격을 중계를 통해 전했다. 대회가 끝난 후 방수현은 안세영을 직접 만나 축하를 건네며 후배의 노고와 열정을 격려했다.
방수현은 최근 YTN라디오 ‘슬기로운 라디오생활’과 인터뷰에서 “안세영의 금메달은 협회 지원과 감독, 코치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 방수현의 이 인터뷰를 두고 팬들은 상반된 여론을 형성하며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파리올림픽 중계를 마치고 미국의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방수현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방수현은 안세영이 금메달 획득 직후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현장에서 안세영을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세계배드민턴연맹(BWF) 관계자가 두 사람이 만나는 자리를 기획한 터라 방수현은 안세영의 인터뷰가 끝나길 기다리면서 BWF 이사들과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 안세영 인터뷰 내용을 자세히 듣지는 못했다. 조금씩 흘려듣다가 BWF 관계자의 주선으로 안세영을 직접 만나게 됐고, 안세영한테 이제부턴 부담 내려놓고 낭만을 즐기라고 말해줬다. 안세영과 만난 직후 기자들이 내게 와서 안세영의 인터뷰 내용의 진위 여부를 물었다. 안세영의 인터뷰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워서 대답하지 못했고, 서승재 선수 관련해선 할 말이 있었다. 서승재가 이번 올림픽에서 많은 시합에 출전했다. 남자복식과 혼합복식에 모두 출전해 10게임을 치렀는데 이건 정말 살인적인 스케줄이다. (협회가) 선수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시스템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방수현은 안세영의 금메달 획득 직후 여러 인터뷰를 통해 “이제 안세영의 시대가 왔다”면서 자신도 이루지 못한 세계선수권과 올림픽 동시 우승을 일군 안세영을 높이 평가했다. 안세영의 단점은 쉬지 않는 건데 부상을 딛고 1등을 했으니 이제 조금씩 쉬어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안세영은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해 아시안게임 이후 부상이 심각했지만 협회는 이를 안일하게 생각했고 계속 많은 대회에 참석해야 했다”며 “복식과 단식의 훈련 방식, 선수 운용 방식 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안세영의 기자회견 이후 여론은 배드민턴협회를 향해 연일 비난의 수위를 높였고, 협회의 선수 보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안세영은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무릎 인대 부상을 당했고, 무릎 부상을 안고 이번 올림픽을 준비했다. 그 과정에서 선수가 느낀 고통과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부상 없이 국제대회에 나설 수 있다면 최고의 시나리오겠지만 대부분 선수들은 부상을 안고 뛴다. 방수현도 선수 시절 요추분리증으로 수술을 권유받을 정도였지만 재활 훈련으로 버티다 애틀랜타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다음 은퇴 수순을 밟았다. 다음은 방수현의 설명이다.
“안세영이 힘들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는 건 2022년에 열렸어야 할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2023년에 열렸는데 결승에서 부상을 당했고, 그걸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국제대회 출전과 파리올림픽을 준비했다. 정말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것이다. 배드민턴협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안세영한테 개인 트레이너를 허용했다. 그만큼 안세영의 몸 상태 회복을 위해 많은 걸 배려한 걸로 알고 있다. 국제대회 출전도 정말 선수가 뛸 수 없을 정도의 부상이라면 병원 진단서를 제출하면 해결된다. 하지만 대부분 선수들은 잘 알고 있다. 국제대회에서 점수를 따야 올림픽 시드 배정받을 때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대표팀 선수로 뛴다는 게 얼마나 어렵나. 안세영만 힘든 게 아니다. 모든 선수들이 그런 환경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뛴다. 나도 어린 나이에 대표팀에 들어가 그 시간들을 다 겪었다. 대표팀을 누가 등 떠밀어서 들어간 게 아니지 않나. 안세영으로선 올림픽 금메달 획득 후 자신의 말에 힘이 실렸을 때 협회의 부조리나 대표팀의 선수 보호 문제를 터트리려고 했겠지만 그 발언으로 안세영을 도운 연습 파트너들, 감독, 코치들, 트레이너들의 수고가 간과된 것 같아 안타까웠다.”
안세영이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개인 트레이너 A 씨에게 특별한 고마움을 전하며 “그 쌤이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눈치도 많이 보고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미안하다. 이 순간을 끝으로 대표팀과 계속 가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폭탄 발언을 했다.
안세영이 언급한 개인 트레이너 A 씨는 대한배드민턴협회가 2023년 6월 안세영의 컨디셔닝 관리를 위해 특별히 뽑은 지원 스태프였다. 배드민턴 대표팀 선수들 중 개인 트레이너의 전담 관리를 받는 선수는 안세영이 유일했다. A 씨는 지난 6월 협회와 1년 계약이 만료됐다. 안세영은 믿고 의지하는 A 트레이너와 재계약을 희망했지만 협회는 올림픽 기간 중에만 한시적으로 선수와 동행하는 추가 계약을 제안했다. 그러나 A 씨는 한 달 계약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대표팀을 떠났다.
방수현은 “이런 상황을 세밀하게 살펴볼수록 협회가 안세영을 얼마나 특별 케어했는지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안세영의 인터뷰 내용을 지적하고 싶진 않다. 단 인터뷰하는 시기가 아쉬웠다. 온 국민이 28년 만에 여자 단식에서 나온 올림픽 금메달을 축하하는 경사스러운 날에 올림픽 금메달 획득 기자회견장에서 작정하듯 폭탄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 인터뷰로 인해 올림픽에 출전하는 다른 선수들과 이슈들, 성적들이 묻혔다.”
방수현은 “스폰서 관련해서도 양궁처럼 기업이 후원하지 않는 배드민턴협회는 용품 스폰서가 중요하다”면서 “그 스폰서의 후원금으로 주니어, 상비군 등을 지원하고 선수들의 국제대회 출전과 협회 운영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안세영도 그 지원을 받고 성장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현재 배드민턴협회는 요넥스와 손을 잡고 연간 30억 원이 넘는 규모로 대표팀 선수들의 유니폼과 라켓, 신발 등과 현금을 지원받고 있다. 그런데 안세영은 지난해부터 나이키와 개인 스폰서 계약을 맺었고, 올 초 협회에 나이키 신발을 신고 싶다고 요구했다가 관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세영은 앞서 언급한 대로 기자회견에서 대표팀 은퇴를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안세영은 “대표팀에서 나간다고 해서 올림픽을 못 뛰는 건 선수에게 야박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현재 배드민턴협회 규정에 따르면 국가대표를 은퇴하는 선수의 BWF 승인 국제대회 참가는 가능하다. 배드민턴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크고, 국가대표로 5년 이상 활동해야 하며 남자는 만 28세 이상, 여자는 만 27세 이상이어야 한다. 안세영이 이 규정에는 부합되지 않은 조건을 갖고 있지만 협회가 규정을 손보고 개인 자격으로 국제대회 출전을 허락한다면 길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협회는 이와 관련해서 난색을 표했다. 관련 규정이 무시되거나 안세영의 입장을 받아들여 규정을 손볼 경우 다른 선수들과 형평성 문제로 대표팀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방수현은 올림픽 이후 자신의 SNS에 ‘올림픽 금메달이 혼자 일궈낸 것이 아닐 텐데 지금까지 지도해준 감독, 코치 그리고 같이 훈련을 해준 동료 선수들의 고마움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는 내용으로 안타까움과 실망스러움을 드러냈다. 그로 인해 방수현에 대한 일부 팬들의 비난이 뒤따랐다.
“내 발언과 글로 인해 내가 협회랑 무슨 관계가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사람들이 있더라. 전혀 관계가 없다. 나는 대표팀 생활을 오래했고, 여러 국제대회에 출전하면서 협회나 감독, 코치들, 훈련 파트너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잘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협회에 대한 아쉬움이 없는 선수가 있겠나. 나도 선수 시절엔 협회의 운영에 불만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 무대에 섰고, 그 무대에서 어렵게 금메달을 획득했다면 그 금메달의 가치와 영광의 여운을 안고 귀국한 다음에 자리를 만들어서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전달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안세영이 뛰어난 실력으로 금메달을 딴 건 사실이지만 그 금메달을 위해 뒤에서 도움을 준 그 손길들, 마음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안세영은 아직 어린 나이다. 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주변인들이 그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줬으면 좋겠다.”
대한배드민턴협회는 이른바 ‘안세영 사태’에 대한 입장을 담은 A4 용지 10쪽짜리 보도자료를 통해 안세영이 지적한 문제점을 일일이 반박하거나 설명을 덧붙였다. 대한체육회는 안세영이 문제제기한 부상 관리, 훈련체계, 선수 보호 등과 관련해서 외부 감사 전문가 4명, 체육회 법무팀장과 감사실장 등으로 구성된 조사위원회를 꾸려 대회 폐막 이후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당분간 ‘안세영 사태’를 두고 기나긴 진실 공방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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