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창고 드라마’라는 표현이 더 자주 언급된다. 드라마도 과거와 달리 지금은 사전제작 시스템에 따라 미리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쪽대본이 난무하고 생방송을 방불케 하는 제작 시스템이 일반적이던 201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드라마를 미리 제작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하지만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OTT 플랫폼이 국내 론칭돼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드라마 수요가 많아졌다.
특히 팬데믹 기간 투자가 늘면서 드라마 시장에도 사전제작 시스템이 일반화됐다. 하지만 거품은 급속도로 꺼졌고, 이 시기 투자를 받아 제작된 드라마는 편성을 받지 못하고 표류했다. 드라마 창고에 쌓이게 된 이유다.

창고 드라마들이 왜 갑자기 줄지어 편성받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최근 방송사와 제작사 관계자들은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팬데믹의 여파로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영역은 영화였다. 전염병 감염에 대한 우려로 극장으로 가는 대중의 발길이 뚝 끊겼고, 영화 제작 편수도 크게 줄었다.
영화로 몰리던 자본이 드라마로 흘러 들어왔다. 당연히 드라마 시장은 호황이었다. 이때 시장 곳곳에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주연 배우의 한 회당 출연료는 5억 원 안팎까지 뛰어올랐다. 주조연급 배우들의 몸값도 상승했다. 노동 시간 주 52시간제의 시행은 스태프의 품삯도 끌어올렸다. 이에 따라 드라마 제작비 역시 천정부지 솟았다.
이 제작비를 복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드라마 편수가 늘면서 출혈 경쟁이 벌어졌다. 팬데믹 시기 나라가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면서 곳곳에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포스트 팬데믹’을 준비하지 못한 탓에 금리가 올라가고 대출이 줄어들자 대중 소비가 위축됐다. 기업들이 몸을 사리기 시작했고 광고를 포함한 홍보·마케팅비를 줄였다. 이를 주수입원으로 삼던 방송사들에 비상이 걸렸다.
방송사들은 드라마 제작 편수부터 축소했다. 12∼16부작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서는 통상 150억 원 안팎의 제작비가 투입된다. 하지만 웬만큼 유명한 배우와 작가가 참여한 작품이 아니면 광고 판매가 어렵다. K-콘텐츠를 앞다투어 구매하던 해외 바이어들도 지갑을 닫았다. 결국 준비되던 드라마 제작이 무산되고, 이미 제작을 마친 작품도 주인을 기다리며 매물로 나왔다.

현재 방송 중인 한 드라마의 경우 방송사에서 회당 제작비 1억 원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이는 실제 제작비의 10분의 1 수준이다. 대신 이 방송사는 ‘방영권 딜’을 통해 편성만 할 뿐 드라마에 대한 그 어떤 권리도 요구하지 않았다. 제작사가 ‘알아서’ 해외나 IPTV 시장에 팔아 제작비를 메우라는 것이다. 창고 드라마로 묵혀두면 제작비를 회수할 기회가 아예 사라지기 때문에 ‘창고 방출’ 수준의 세일가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작품을 내놓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다.
이 드라마들의 성적표는 어떨까. ‘우연일까’의 최고 시청률은 3.1%였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은 2%대로 방송을 시작했고, ‘나쁜 기억 지우개’는 0∼1%대를 전전하고 있다.
엄밀히 말해 세 작품의 만듦새는 엉성하다. 드라마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창고 드라마로 묵힌 측면도 있지만, 작품성이 뛰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선택받지 못한 셈이다. 결국 드라마 시장으로 돈이 몰리던 시기, 급조된 기획으로 만든 드라마들이 시장 전체를 하향 평준화시켰다는 쓴소리도 나온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