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다크웹 등 IT 기술 활용한 해외 마약 조직 급성장…검·경 수사권 조정 여파 수사력 약화도
대검찰청이 발간한 ‘마약류 범죄백서’를 보면 2020년 마약류 밀수 사범 검거 인원 837명 가운데 검찰 검거 인원이 720명(86%)인 데 반해 경찰 검거 비중은 14%(117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마약류 범죄백서’의 전체 마약류 사범 검거 인원을 보면 2020년 마약류 사범 총 1만 8050명 가운데 경찰이 1만 2076명(66.9%)을 검거했고, 검찰은 5974명(33.1%)을 검거했다. 이 가운데 공급 사범이 4793명인데 역시 경찰이 검거한 2738명(57.1%)이 검찰이 검거한 2055명(42.9%)보다 많다.
같은 자료를 두고 검찰과 경찰은 각각 서로 유리한 자료를 꺼내들었다. 2021년 1월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마약 관련 직접 수사가 ‘500만 원 이상 마약 밀수’ 사건만 한정되면서 검찰은 “마약수사청 신설 등 대안 없이 검찰의 마약수사 기능이 폐지되면 수십 년 동안 쌓아온 마약 단속에 대한 전문 수사 능력과 국제 공조 시스템이 사장될 것이며, 이는 결국 국가의 마약 통제 역량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경찰은 “전국 3만 명의 수사 인력과 1만 1000명의 전문 인력을 바탕으로 마약범죄 상시 대응 역량이 충분하다”며 “마약 범죄 조직 전체를 적발해내는 노하우도 검찰보다 경찰이 앞선다”는 입장을 보였다.
대한민국이 마약 청정국에서 마약 오염국으로 전락하는 중요한 시점에 검찰과 경찰이 마약 수사를 두고 대립했다. 2017년 마약 압수량은 155kg이었지만 2021년에는 1296kg으로 무려 8배 이상 급증했다. 더욱 놀라운 부분은 10대 마약 사범의 급증이다. 10년 동안 무려 11배가 늘어났다.
2022년 9월 10일부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주도한 ‘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와 관련한 시행령 개정안’ 시행되면서 검찰의 마약 수사가 재개됐다. 그렇다면 검찰 마약 수사가 ‘500만 원 이상 마약 밀수’ 사건만 한정됐던 2021년 1월부터 2022년 9월 초까지 20개월 여 동안 국내 마약 범죄가 급증한 것일까.
그 당시 경찰도 눈부신 성과를 올렸다.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국내로 마약을 밀반입시키던 거대 조직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2020년 10월 필리핀에서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이 검거됐고, 2021년 4월에는 ‘탈북 마약왕’ 최 아무개 씨가 캄보디아에서 검거돼 국내로 송환됐다. 2021년 7월에는 이들에게 마약을 공급한 ‘동남아 마약왕’ 사라 김을 베트남 공안과의 공조 수사로 현지에서 검거해 국내로 송환했다. 이로써 ‘동남아 3대 마약왕’을 모두 검거했다.
대한민국이 마약 청정국에서 마약 오염국이 되는 데는 ‘동남아 3대 마약왕’의 영향이 매우 컸다. 텔레그램과 다크웹 등을 활용한 온라인 거래가 가능해 지면서 ‘동남아 3대 마약왕’을 비롯한 마약 조직 총책들은 굳이 우리나라에 들어올 필요 없이 동남아시아에서 마약을 대거 국내로 공급했다. 이들은 해외에서 원격으로 국내 유통망을 만든 뒤 던지기 수법 등으로 마약을 확산시켰다.
누구나 손쉽게 온라인에서 마약을 주문하고 받을 수 있게 되면서 급속도로 마약이 확산됐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이던 시절 마약 거래는 더욱 활성화됐다. 암호화폐(가상화폐)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마약 밀매 대금이 자유롭게 해외로 빠져나가는 통로까지 확보됐다.
항간에선 에로비디오 시장의 몰락이 마약 오염국을 야기한 원인이라고 보기도 한다.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지만 ‘해외를 기반으로 한 불법 행위’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2000년대 초반 에로비디오 시장은 검찰의 대대적인 단속으로 흔들리다 비디오 대여시장이 사라지면서 함께 몰락했다. 이후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국내 인터넷 성인방송으로 새로운 활로가 개척됐지만 다시 시들었다. 일부 업자들이 해외로 나가 해외 서버를 활용해 포르노 수준의 성인 방송을 일삼았다.
온라인이 확대하던 2000년대 초중반에 해외를 기반으로 한 불법 사업이 처음 시작됐다. 해외 체류하는 마약조직이 온라인을 활용해 국내로 마약을 밀반입하는 형태의 시작점이라 볼 수 있다.
또 국내 범죄자들이 동남아시아로 도피하는 상황이 수십 년 동안 이어지면서 해외 체류 범죄자들도 계속 늘어났다. 이들이 동남아시아 기반 해외 마약 조직의 기틀을 닦았다. 여기에 텔레그램과 다크웹, 가상화폐 등 새로운 IT 기술이 더해져 해외 기반 마약 조직이 급성장하면서 우리나라는 어느새 마약 오염국이 됐다.
경찰은 ‘동남아 3대 마약왕’을 모두 검거하는 등 해외 마약 조직 소탕에서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이들의 빈 자리를 새로운 총책들이 계속 등장해 채우면서 또 다른 마약왕이 됐다. 어렵게 국내 유통망을 일망타진해도 동남아시아에 있는 총책까지 검거하는 데는 한계가 분명했다. 경찰이 외국 경찰과 공조수사를 통해 분명한 성과를 낸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경찰의 수사권이 미치지 않는 해외라는 점 탓에 어려움이 있었다.
국내 마약 유통량이 급증하던 시기에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지면서 수사력의 한계가 더 두드러졌다. 검찰의 마약 직접 수사가 가능해진 2021년 9월부터 마약밀수 조직 데이터베이스(DB) 구축, 유관기관(검찰, 경찰, 관세청, 해양경찰청, 국정원 등)의 수사협의체 구축, 국제 공조 체제 강화, 처벌 강화 및 범죄 수익 박탈 등의 마약 수사력 재정비가 이뤄졌다.
2023년 2월 21일에는 대검찰청이 서울중앙·인천·부산·광주지검에 마약범죄 특별수사팀을 설치했다고 밝혔다. 검찰 69명, 관세청 6명, 식약처 3명, 서울시·인천시·부산시·광주시 각 1명, KISA(한국인터넷진흥원) 2명 등 총 84명 4개 팀이다. 그렇지만 마약 오염국이 된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면 여전히 수사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전동선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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