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 설정과 자기 관리, 도전과 변화 추구…투수로 복귀하는 내년 또 한번의 진화 기대감
#통산 3번째 MVP 유력
투수와 타자를 같이 하며 ‘이도류 신드롬’을 일으켰던 오타니는 지난해 9월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재활로 인해 올해는 투수 활동을 잠시 쉬고, 지명타자로서 타석에만 집중하고 있다.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MVP 투표권을 행사하는 전미야구기자협회 기자들은 “수비를 전혀 하지 않는 지명타자가 MVP를 수상하는 것은 어렵다”며 회의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제 오타니는 통산 세 번째 MVP가 확실한 상황이다. 현지 지역신문 LA타임스 빌 플라슈케 기자는 “오타니는 야구계 최고다. 만장일치로 내셔널리그 MVP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MLB 역사에서 만장일치로 MVP를 두 번이나 수상한 것은 오타니가 유일하다. 만약 세 번째도 만장일치로 선정된다면 이 역시 전설적인 기록으로 남게 된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오타니는 올 시즌 투수로 나설 수 없는 대신,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가 선택한 새로운 무기는 도루였다. 주법을 교정하고 더 많은 도루를 할 수 있게끔 준비했다. 사실 홈런과 도루는 양립하기가 어렵다. 파워가 좋을수록 스피드가 떨어지고, 스피드가 빠를수록 파워가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 세계 어느 리그에서도 50홈런-50도루를 기록한 선수가 없었던 이유다.
하지만 오타니는 불가능을 현실로 만들었다. 폭발적인 장타력과 스피드를 갖춘 타자로 거듭나며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것이다. 어떻게 불가능의 영역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2020년 오타니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를 이기고 싶다는 생각을 별로 해본 적이 없어요. 야구 선수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는 것이 기쁩니다. 예를 들어 구속을 몇 킬로미터밖에 못 던졌는데 연습해서 더 빨리 던질 수 있게 된다든지, 그런 것들이 즐거워요. 나 자신을 육성해가는 게임 같은 느낌도 있습니다.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 다른 사람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가 중요해요(2020년 3월 30일 ‘데상트재팬’ 특별인터뷰에서).”
#어록1 “경쟁보다 성장이 중요”
일본의 스포츠심리학자 고다마 미쓰오는 오타니의 성공 비결에 대해 “오타니는 라이벌을 의식하지도 않고 명성에도 그리 집착하지 않는다. 그의 목표와 보람은 오직 자기 자신을 뛰어넘는 데 있다”며 그의 남다른 사고법에 대해 주목했다. 흔히 ‘경쟁이야말로 자신을 성공으로 이끄는 요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어떤 분야에서든 경쟁심이 강한 사람보다 일 자체에 흥미와 호기심을 가지고 행동하는 쪽이 훨씬 성과가 좋았다”고 한다.
예컨대 이런 실험결과가 있다. 초등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콜라주 작업을 진행했다. 그룹 A에게는 ‘이것은 경쟁’이라고 알렸고, 그룹 B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유롭게 그리도록 했다. 그리고 완성된 작품을 전문가에게 평가받았는데, 결과는 의외였다. 경쟁을 의식한 그룹 A의 작품은 자유로운 발상이 부족했으며, 그룹 B에 비해 창의력이 낮은 것으로 판명됐다.
경쟁을 제일주의로 삼는 스포츠계에서도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가령 ‘지난달보다 15초 기록을 단축한다’든지 ‘자유투를 70% 성공시킨다’ 등 자신만의 구체적인 목표를 정한 선수는 단순히 승부에서 이기는 것을 목표로 하는 선수보다 더 빨리 달리고 슛을 성공시킬 확률도 높았다.
#어록2 “꿈에 한계를 두지 마라”
오타니의 성공에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목표 설정도 동력이 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인생에서 걸어온 길의 연장으로 미래를 상상하곤 한다. 이에 대해 오타니는 “꿈에 한계를 두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선입견은 가능한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끝이에요. 일단 해보고 거기서 한계가 오면 내 실력은 거기까지라는 뜻입니다(‘오타니 쇼헤이의 쇼타임’에서).”
오타니와 비슷한 사고법을 가진 또 한 명의 선수가 있다. 아시아인 최초로 MLB에서 3000개가 넘는 안타를 친 스즈키 이치로(50)다. 이치로가 고등학교 3학년 당시 세운 목표는 타율 10할이었다. 현역 시절에도 이치로는 “타율 10할에 조금이라도 다가가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언뜻 황당한 목표 같지만, 완벽한 타자가 되는 노력을 계속함으로써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끊임없이 노력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지독한 연습벌레’로 불린다는 점도 닮았다. 어느 기자가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묻자 이치로는 “노력하지 않고 뭔가를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을 천재라고 한다면 나는 절대 천재가 아니다. 하지만 피나는 노력 끝에 뭔가를 이루는 사람을 천재라고 한다면 나는 천재가 맞다”고 답했다. 오타니 역시 2019년 인터뷰에서 “어떤 재능이 있는 것 같냐”라는 질문에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는 능력이 있을 뿐이다. 우연하게도 그게 야구였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어록 3. “계속 변화를 추구하라”
야구평론가 사사키 도루는 “오타니에게는 주저하지 않고 도전하는 힘이 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오타니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보다 뭔가를 바꾸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변하지 않으면 전년도와 비슷한 결과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고, 도전하는 쪽이 즐겁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미국 잡지 GQ를 통해 이치로와 오타니의 일화도 알려졌다. 오타니는 MLB 데뷔 시즌이던 2018년 이치로와 만났는데, 당시 부진을 겪고 있던 후배에게 대선배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치로는 “너 자신을 잃지 마라. 스스로 이 자리까지 왔다. 지금까지 해오던 것을 유지하라”고 조언했다. 오타니가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은 ‘계속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이었고, 이치로의 충고를 곱씹은 결과 ‘항상 진화하라’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오타니는 불가능으로 여겨졌던 일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이에 MLB.com은 “오타니가 야구를 부수고 있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좋은 방향으로 야구의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중이라는 의미에서다. 내년에는 투수로도 복귀할 전망이다. 오타니의 진화가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지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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