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조원 자산가 “자유는 인생의 사명”, 12개국 수십 쌍에 정자 기증 기행…최근 마약·성범죄 방조 예비기소
“나에게 부자가 되는 것은 결코 중요하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자유로워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능한 다른 사람들도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하는 게 내 인생의 사명이었다.”
지난 4월, 두바이에서 가진 극우 논객 터커 칼슨과의 인터뷰에서 두로프는 이렇게 자신의 의지를 밝혔다. 그가 텔레그램을 설립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표현의 자유’와 ‘익명성 보호’에 가장 큰 가치를 두었던 두로프의 이런 전략은 적중했다. 텔레그램은 왓츠앱, 스냅챗 등이 이미 탄탄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메신저 플랫폼 분야에 뒤늦게 뛰어든 후발주자였지만, 틈새시장을 공략한 결과 현재 월 사용자 수만 10억 명에 달할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스태티스타’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텔레그램은 왓츠앱과 스냅챗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이 다운로드되는 메신저 앱이다. ‘포브스’가 추정하는 텔레그램의 기업 가치는 300억 달러(약 40조 원)가 넘는다. 텔레그램의 정규직 직원 수가 불과 50여 명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분명 놀라운 성과다.
수익은 대부분 광고와 2년 전에 시작한 프리미엄 구독 프로그램을 통해 창출되고 있다. 두로프는 '파이낸셜타임즈' 인터뷰에서 “우리가 수익 창출을 시작한 주된 이유는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라고 밝힌 바 있다.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독립성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탄탄한 자본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텔레그램 본사를 여타 유럽 국가가 아닌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세운 이유도 비슷한 맥락에서였다. 두로프는 “두바이는 모두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 또한 UAE는 지정학적으로 강대국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립국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메신저 플랫폼과 다른 텔레그램의 또 다른 특징은 대화방 규모가 거의 무한대로 커질 수 있다는 데 있다. 가령 최대 20만 명까지 대화방 참여가 가능하며, 이런 확장성은 인권운동가들이나 혹은 테러 단체가 텔레그램을 애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텔레그램의 이런 특성들은 사실 양날의 검과도 같다. 암호화, 익명화, 개인정보 보호,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보장 등이 장점이라면, 이를 악용할 경우 자칫 범죄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단점으로 꼽힌다. 실제 지금까지 텔레그램을 이용한 범죄 행각들은 많았다. 우리나라 n번방처럼 불법 음란물을 유포하거나 음모론의 온상이 되기도 하며 신나치주의자들, 소아성애자들, 테러 단체들이 비밀리에 정보를 공유하는 곳이 되기도 한다. 가장 최근에는 영국의 극우보수단체들이 텔레그램을 통해 조직적으로 활동하면서 폭력 사태가 확산됐는가 하면, 딥페이크를 이용한 불법 합성물이 대거 퍼지면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다른 플랫폼보다 불법 콘텐츠에 대한 관리가 소홀하다는 지적이 빗발치자 텔레그램 측은 “우리 회사의 콘텐츠 관리 수준은 업계 표준에 부합한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라고 말하면서 ‘디지털 서비스법’ 등 EU의 규정을 준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두로프는 이와 관련해 2015년 인터뷰에서 “궁극적으로 개인정보 보호는 테러리즘과 같은 나쁜 일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중요하다”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사실 두로프가 최근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건 텔레그램의 범죄 관련 여부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난 8월 24일, 프랑스에서 갑자기 체포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던 것. 파리 외곽의 르부르제 공항에 도착해 전용기에서 내리자마자 긴급 체포된 두로프는 현재 텔레그램에서 벌어지는 각종 범죄를 방치한 혐의를 받고 있다. 두로프가 프랑스에서 체포될 수 있었던 건 그가 프랑스 국적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현재 그가 받고 있는 혐의는 마약 불법 거래, 아동 성학대물 유포, 미성년자 성범죄 방치, 자금 세탁, 범죄자들에게 암호화 서비스 제공 등이다. 요컨대 프랑스 수사 당국이 범죄자들의 대화 내역과 신원 정보를 넘겨줄 것을 요구했지만 텔레그램 측이 이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결국 회사 대표로서 책임을 묻기 위해 두로프를 긴급 체포했다고 밝힌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에 관한 ‘허위 정보’가 텔레그램을 통해 유포되고 있다”면서 “정치적으로 내린 결정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8월 28일 예비 기소됐던 두로프는 현재 보석금 500만 유로(약 74억 원)를 내고 석방된 상태다. 다만 일주일에 두 번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아야 하며, 만일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에는 최대 징역 10년 및 50만 유로(약 7억 원)의 벌금형이 부과될 예정이다.
두로프 측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두로프의 변호를 맡은 다비드 올리비에 카민스키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소셜네트워크 회사의 대표가 자신과 관련도 없는 범죄 행위에 가담했다고 취급받는 건 터무니없다”라고 항의했다. 해당 플랫폼에서 벌어지는 범죄 행위에 대해 플랫폼 CEO에게 형사적 책임을 물을 수 있냐는 것이다.
두로프가 체포됐다는 소식에 몇몇 유명인사들도 즉각 규탄하고 나섰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두로프와 칼슨이 대화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과 함께 ‘#파벨에게자유를(FreePavel)’이라는 해시태그를 올렸는가 하면, 고 알렉세이 나발니 야당 지도자가 설립한 ‘반부패 재단’ 소속 정치 활동가인 조지 알부로프는 “두로프의 체포는 현재 혐의에 비추어 볼 때 매우 부당할 뿐만 아니라 언론의 자유에도 상당한 타격을 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에드워드 스노든은 이번 체포를 “언론과 협회의 기본 인권에 대한 공격”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두로프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상트페테부르크 출신인 두로프는 마크 저커버그, 에반 스피겔 등 다른 플랫폼 대표들과 달리 그간 베일에 싸인 신비한 인물로 여겨져왔다. 그도 그럴 것이 언론에 노출되는 경우가 극히 적은 데다 스스로 나서서 인터뷰를 자처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지난 4월 그가 칼슨과 가진 한 시간가량의 인터뷰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라틴어 학자이자 언어학 교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 이탈리아로 건너가 유년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던 두로프는 2001년 옛 소련이 붕괴되자 다시 러시아로 돌아왔다.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했으며, 2006년 페이스북의 성공에 자극을 받아 형 니콜라이와 함께 러시아판 페이스북인 프콘탁테(VK)를 공동 설립했다. 이 도전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VK는 빠르게 러시아 최대 소셜네트워킹 사이트로 성장했으며, 러시아를 넘어 동유럽까지 세력을 확장해나갔다. 두로프가 ‘러시아의 저커버그’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2013년에는 내부 고발자이자 전 국가안보국 계약직 직원인 스노든에게 공개적으로 일자리를 제안해 전세계적으로 한 차례 주목을 받기도 했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의 성공가도는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러시아 정부가 플랫폼에 대한 통제를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가령 우크라이나에서 친러시아 정권에 반발하는 시민운동을 벌인 유로마이단 시위대의 신상 정보를 넘기고 이들의 계정을 삭제하도록 요구하고 나선 것. 여기에 더해 반푸틴 성향의 글들을 삭제 및 차단할 것도 지시했다. 이를 거부한 두로프는 이런 내용이 담긴 정부의 협조문을 공개 및 폭로하고 그 길로 망명길에 올랐다. 러시아를 떠나면서는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는 7가지 이유’라는 선언문을 발표하면서 러시아의 법원, 입법, 교육 시스템, 세금 정책 등을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러시아 정부가 인터넷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하고 푸틴 동맹국들이 VK를 장악하기 시작하자 아예 플랫폼 지분을 매각해버린 두로프는 당시의 쓰라렸던 심정에 대해 칼슨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처음 세운 회사여서 내게는 자식과도 같았다. 그래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차라리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누구의 명령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 또한 그는 “회사와 집을 한꺼번에 잃었지만, 그때로 돌아가도 주저 없이 다시 그렇게 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향한 곳은 독일이었다. 2015년 독일 시민권을 취득한 그는 이 밖에도 UAE, 프랑스, 카리브해 국가인 세인트키츠 네비스의 시민권도 보유하고 있다. ‘포브스’에 따르면 현재 그의 자산은 약 155억 달러(약 21조 원)로 추정된다. 전세계 부호 순위로는 120위 정도다. 하지만 돈보다 자유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그는 “나는 현금이나 비트코인 외에 부동산, 비행기, 요트 같은 자산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2014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는 “나는 지금 어디에도 재산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매우 행복하다”면서 “나는 스스로를 세계의 합법적인 시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그를 가리켜 기행을 일삼는 괴짜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거의 대부분 검은색 복장을 하고 다니는 탓에 그를 가리켜 ‘매트릭스’의 ‘네오’라고 부르기도 한다. 2012년에는 5000루블(약 7만 원)짜리 지폐를 종이비행기로 접어서 날리는 기행을 일삼기도 했다. 철저한 금욕주의자인 까닭에 무소유와 채식주의를 지향하며, 알코올은 물론이요 기호용 약물, 카페인, 패스트푸드 역시 일절 입에 대지 않고 있다. 때로는 최소 6일 동안 물만 마시는 단식을 통해 창의력을 향상시키기도 한다.
가장 충격적인 기행은 정자 기증 습관이다. 2010년부터 자신의 텔레그램 계정을 통해 정자를 기증하기 시작한 그는 지금까지 12개국 수십 쌍의 부부에게 정자를 기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해서 전세계에 100명 이상의 아이들이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두로프는 “나의 생물학적 자녀들이 서로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DNA를 오픈소스로 공개하고 싶다”라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현재 미혼인 두로프는 전처인 다리아 본다렌코와의 사이에 1녀1남을 두고 있다. 2021년 러시아판 ‘포브스’는 두로프의 두 자녀를 러시아에서 여섯 번째로 부유한 상속인으로 선정했다. 전 여자친구인 이리나 볼가 사이에도 세 자녀를 두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일부 누리꾼들은 최근 언론에 나타난 그의 모습을 본 후 성형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두로프가 성형 수술과 함께 모발 이식을 받았다는 것이다. 반면 가발이라고 주장하는 누리꾼은 “이건 모발 이식이 아니다. 머리카락이 굵고 풍성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가발을 착용하고 있는 듯하다”라고 주장했다. 실제 두로프의 최근 모습은 과거 사진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달라 보인다. 머리숱도 더 풍성해졌을 뿐만 아니라 상반신 노출 사진도 종종 올라오면서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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