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류 약속에 NPB 선택…팔꿈치 부상으로 잠시 타격에 전념하자 무시무시한 괴력 뽐내
'거포'의 파워와 '대도'의 빠른 발을 동시에 가져야 하는 50홈런-50도루는 130년이 넘은 MLB 역사에서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초인'의 경지다. 1회 더블스틸로 3루를 훔쳐 도루 50개를 먼저 채운 오타니가 7회 2사 3루에서 총알 같은 시즌 50호 홈런을 때려내 대기록을 완성하자 론디포파크를 가득 메운 팬들은 몇 분간 이어진 기립박수로 경의를 표현했다. 오타니 역시 헬멧을 벗고 더그아웃 앞으로 나와 홈 팬과 원정 팬 모두에게 정중한 감사 인사를 했다.
다저스가 이날 20-4 대승으로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하면서 오타니는 MLB 진출 7년 만에 처음으로 가을야구를 경험하게 되는 겹경사를 누렸다. 그는 평소 몸 관리를 위해 술과 담배를 입에도 대지 않는 선수로 유명한데, 이날은 클럽하우스 파티에서 모처럼 샴페인 한 잔을 시원하게 '원샷'하면서 최고의 하루를 자축했다는 후문이다.
#장신 가족의 특별한 유전자
오타니는 이견의 여지 없이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를 몰고 다니는 야구선수다. 지난해까지는 베이브 루스 이후 최초의 이도류(二刀流·투수와 타자를 겸업하는 선수)로 활약하면서 숱한 새 역사를 써내려갔고, 팔꿈치 수술 여파로 타격에만 전념한 올해는 사상 최초의 50홈런-50도루 고지에 오르면서 '세상에 없던 타자'로 거듭났다. 대기록 달성 경기를 중계한 현지 캐스터는 오타니의 50번째 홈런이 터지자 '유례를 찾기 어렵다'는 의미의 '원 오브 어 카인드(one of a kind)'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이전까지 없었던 위업, 특별한 순간, 오직 하나뿐인 선수! 오타니가 50-50 클럽의 문을 열었다!"라고 목놓아 외쳤다. 오타니가 9회 3연타석 홈런으로 시즌 51호포를 날려보낸 뒤엔 "이건 현실이 아니고, 오타니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거듭 감탄했다.
실제로 오타니는 어린 시절부터 심상치 않은 재능을 뽐냈다. 1994년 7월 5일 일본 이와테현 오슈시에서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가족 모두가 운동 신경이 좋아 그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 받았다. 아버지 도루 씨는 젊었을 때 미쓰비시중공업 사회인 야구단에서 뛰었다. 20대 중반 어깨 부상으로 일찍 야구를 접었지만, 지금도 자동차 제조사에서 일하면서 사회인 야구 시니어리그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어머니 가요코 씨도 미쓰비시중공업 사회인 배드민턴부 선수 출신이다. 전국대회에 지역 대표로 출전했을 정도로 실력이 좋았다. 또 오타니보다 일곱 살 많은 형 류타 씨는 도요타자동차 사회인 야구단 소속이고, 두 살 많은 누나 유카 씨는 학창시절 배구선수로 활약했다.
'탈 아시아급' 체격을 자랑하는 오타니의 큰 키(193㎝)에도 이유가 있다. 아버지가 182㎝, 어머니가 170㎝, 형이 187㎝, 누나가 168㎝로 모두 일본인 평균 키를 훌쩍 뛰어넘는 장신이다. 아이들에게 야구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게 꿈이었던 아버지 도루 씨는 어린 시절부터 삼남매와 함께 캐치볼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유독 놀라운 속도로 체격이 좋아지는 막내를 보면서 "프로 선수가 될 만한 재능이 있다"고 판단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한 64개의 계획
초등학교 3학년 때 선수 생활을 시작한 오타니는 2년 만인 5학년 때 이미 최고 시속 110㎞의 공을 던지면서 천재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당시 야구부 포수였던 오타니의 초등학교 동창은 일본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쇼헤이는 그때부터 공이 빨라 어린 내가 제대로 받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도 오타니는 한 번도 화내지 않고 '다음엔 잘 받아줘'라며 웃어보이곤 했다. 야구를 떠나 인간적으로도 존경할 만한 친구였다"고 증언했다.
오타니는 중학교 시절에도 강속구 투수로 지역 내에서 유명세를 탔고, 하나마키히가시고교에 진학한 뒤 본격적으로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오타니가 이 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평소 롤 모델로 삼았던 기쿠치 유세이(휴스턴 애스트로스)가 다녔던 학교라서였다. 오타니보다 세 살 많은 기쿠치는 고교 졸업 당시 일본 프로야구 6개 구단의 1순위 지명을 받은 끝에 세이부 라이온즈 입단을 선택한 초특급 왼손 유망주였다. 그 직후 기쿠치의 모교에 입학한 오타니는 "신인 드래프트에서 8개 구단 1순위 지명을 받아 기쿠치 선배를 뛰어넘겠다"는 1순위 목표를 세웠다.
당시 고교생 오타니가 만든 일명 '만다라트(목표 설정과 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 계획표는 지금까지도 야구와 인생에 관한 그의 장인 정신을 가장 잘 압축한 본보기로 여겨진다. 이 표에는 '8개 구단의 1순위 지명' 목표를 향한 8가지 세부 과제와 64가지 실행 계획이 담겼는데, 세부 과제 안에는 몸 만들기·제구·구위·시속 160㎞·변화구·멘탈 등 야구와 관련된 요소뿐 아니라 인간성·운 등 평소 생활을 잘 꾸리기 위한 다짐들까지 포함돼 있다. 특히 '운' 항목의 실행 계획에는 인사 잘하기, 쓰레기 줍기, 야구부실 청소하기, 심판에게 예의 있게 대하기, 물건을 소중하게 쓰기, 긍정적으로 사고 하기, 책 읽기 등의 지침을 적어놨다. 그는 빅리거가 된 뒤에도 이 계획표를 착실하게 지키며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천부적인 재능에 그보다 더 대단한 성실성과 추진력을 갖춘 오타니는 고교 1학년 때 단숨에 최고 시속 147㎞를 찍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2학년 때는 구속이 시속 151㎞까지 올라 역대 일본 고교 2학년 선수 최고 기록을 경신했고, 3학년이던 2012년 여름에는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이와테 대회 준결승전에서 일본 아마추어 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시속 160㎞를 찍는 데 성공했다.
#'이도류' 카드가 바꾼 운명
스스로의 예상보다 더 빨리 성장한 오타니는 메인 목표를 상향 조정했다. 고교 졸업 후 일본 프로야구를 건너 뛰고 곧바로 MLB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품었다. 고교 3학년 때 LA 다저스, 뉴욕 양키스 등 MLB 명문 구단의 러브콜을 받으면서 그 꿈에 한발 더 다가갔다. 이 때문에 오타니는 2013년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일본 구단들을 향해 "MLB에 진출할 계획이니 날 뽑지 말아달라"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삿포로돔을 홈구장을 쓰는 니혼햄 파이터스가 끝내 그를 1순위로 지명했다. 이때 오타니를 설득하러 찾아간 구리야마 히데키 당시 니혼햄 감독은 "투수와 타자에서 모두 일류 선수로 만들어 주고 싶다"며 '이도류' 카드를 내밀었다. 투수와 타자 중 어느 쪽도 포기하기 어려웠던 오타니가 '투수 오타니'만 원하던 빅리그 구단들의 제안을 뿌리치고 마음을 돌린 계기였다. 실제로 오타니는 훗날 "고교 시절 나는 투구보다 타격에 더 자신이 있었다. 항상 '왜 나는 투수로서의 평가가 더 높을까'라는 의문을 갖곤 했다"고 털어놨다.
결국 오타니는 투타 겸업을 약속한 니혼햄과 계약금 1억 엔·연봉 1500만 엔·옵션 5000만 엔(일본 언론 추정치)이라는 거액에 사인했고, 니혼햄 에이스였던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남기고 간 등번호 11번을 물려 받았다. 이어 프로 2년 차인 2014년부터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해 오타니는 투수로 11승 4패 평균자책점 2.61, 타자로 타율 0.274 10홈런을 각각 기록하면서 일본 프로야구에서 한 시즌 10승과 10홈런을 동시 달성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그러자 오타니의 투타 겸업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일었다. 그때만 해도 야구 기술이 발전한 현대 야구에선 '무모한 도전'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에이스가 4번 타자까지 도맡는 고교야구와 선수 각자가 자신의 포지션에 전문화된 프로야구는 큰 차이가 있다는 얘기였다. 또 반대하는 야구인의 대부분은 "오타니가 투수에 전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레전드 포수 노무라 가쓰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하나도 못 잡을 수 있다. 시속 160㎞의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고 했고, 빅리그에서 아시아 출신 타자 중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스즈키 이치로 정도만 "그 정도의 타격을 할 줄 아는 선수는 많지 않다"며 '타자 오타니'에 한 표를 던졌다.
하지만 오타니가 점점 더 좋은 성적을 내자 논란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오타니는 2015년 다승(15승)·승률(0.750)·평균자책점(2.24) 타이틀을 거머쥐면서 퍼시픽리그 투수 3관왕에 올랐고, 이듬해인 2016년에는 일본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10승-100안타-20홈런을 동시 달성하면서 니혼햄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2017년은 부상 여파로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지만, '이도류' 오타니에 대한 평가는 '반대'에서 '유보'로 확실히 옮겨갔다.
#MLB에서 새로 쓴 투타겸업 신화
니혼햄에서 5년을 뛰고 해외 진출 자격을 얻은 오타니는 2017년 12월 포스팅(비공개 경쟁입찰) 시스템을 통해 마침내 MLB 진출 꿈을 이뤘다. 자신에게 입찰한 7개 구단과 모두 면담한 끝에 이번에도 투타 겸업을 약속한 LA 에인절스와 계약했다. 다만 영입 전쟁이 치열했던 데 비해 큰 돈은 받지 못했다. 25세 미만의 해외 출신 선수에게 적용되는 특별 규정에 따라 첫 세 시즌은 빅리그 최저 연봉 수준의 금액을 받고, 이후 세 시즌은 연봉 조정을 통해 새로운 계약을 해야 했다.
오타니가 MLB에서 뛴 첫 3년 동안 투수와 타자로 동시에 활약한 기간은 2개월 정도에 불과했다. 2018년 시즌 도중 팔꿈치를 다쳤고, 시즌이 끝난 뒤 토미존 서저리(팔꿈치 인대접합수술)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2020년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정규시즌이 7월에 개막했는데, 초반 두 경기에 투수로 나섰다가 다시 팔에 불편함을 느꼈다. 부상이 끊이지 않는 오타니를 향해 다시 "투수에 전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시점이다.
그러나 오타니는 꿈을 놓지 않았다. 연봉 조정을 통해 에인절스와 재계약한 뒤 계속 구단을 설득해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 그 결과 그는 2021년 만장일치로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했다. 투수로 23경기에서 130과 3분의 1이닝을 던져 9승 2패 평균자책점 3.18을 기록했고, 타자로는 155경기에서 타율 0.257·홈런 46개·100타점·103득점·도루 25개를 해냈다. 투타에서 빅리그 역사상 그 어떤 선수도 남기지 못한 발자취를 새겼다.
이 뿐만 아니다. 오타니는 에인절스와의 계약 마지막 시즌이던 지난해 또 한 번 만장일치로 아메리칸리그 MVP에 선정됐다. 특히 타자로 135경기에서 타율 0.304·홈런 44개·95타점·출루율 0.412·장타율 0.654을 기록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홈런·출루율·장타율은 리그 1위, OPS(출루율+장타율·1.066)는 MLB 전체 1위였다. 투수로도 23경기에 선발 등판해 10승 5패, 평균자책점 3.14의 성적을 남겼다. 만화보다 더 만화 같은 오타니의 거대한 센세이션에 "역대 최고의 야구선수" "야구 그 자체" "인간이 아닌 외계인 같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타격에 전념하자 50-50 클럽 개설
자유계약선수(FA)가 된 오타니는 예상대로 MLB FA 계약의 역사까지 새로 썼다. 지난해 12월 LA 다저스와 전 세계 프로스포츠 사상 최대 규모인 10년 총액 7억 달러(약 9219억 원)에 사인했다. 미국 언론들은 스토브리그 내내 "오타니가 MLB 역사상 처음으로 5억 달러 벽을 넘어설 것"이라고 내다봤는데, 실제 계약 규모는 그 예상을 뛰어넘는 7억 달러짜리 '잭팟'이었다. 심지어 오타니는 계약 총액의 97%에 해당하는 6억 8000만 달러를 계약 기간 종료 후인 2034년부터 10년 동안 분할 수령하기로 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다저스가 자신의 비싼 몸값을 지불하느라 또 다른 대형 FA 선수 영입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에인절스에서 뛴 6년간 한 번도 가을야구를 경험해보지 못한 그는 "반드시 우승하고 싶다"는 열망이 누구보다 강했고, 다저스 이적 첫해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해 그 소원의 첫 관문을 통과했다.
정작 오타니는 올해는 투수로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지난 시즌 막판 다시 토미존 서저리를 받아 1년 동안 치료와 재활을 해야 했다. 그러나 잠시 공을 내려놓고 온 힘을 타격에만 쏟은 오타니는 타석과 누상에서 예년보다 무시무시한 괴력을 뽐냈다. 둘 중 하나도 해내기 힘든 50홈런과 50도루를 동시에 달성한 역대 첫 메이저리거로 기록됐다. 심지어 그 후 9월 26일까지 홈런 2개와 도루 5개를 더 추가해 올 시즌 성적을 53홈런-56도루로 늘렸고, 이치로가 보유했던 아시아 타자 한 시즌 최다 도루 기록에 어깨를 나란히 했다.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는 오타니가 50-50을 달성한 뒤 공식 성명을 내고 "오타니는 수년 동안 새로운 시대를 열어왔지만, 빅리그 최초의 50-50은 단순히 그의 놀라운 파워와 스피드 재능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다. 그보다는 그의 인품, 모든 탁월한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계획성과 노력, 헌신이 두루 반영된 결과"라고 극찬했다. 오타니는 "그동안 많은 기록을 만들어 온 선배 선수들을 존경하게 됐다. 매번 이전 타석의 기억을 지우고 눈앞의 타석에만 집중했기에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담담한 소감을 남겼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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