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의 염료로 물들이는 깊고 신비로운 쪽빛 세상
만약 쪽빛의 ‘실체’가 궁금하다면, 전통 염색의 세계를 한번쯤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국가무형유산인 염색장(染色匠)이 현재 전문적으로 구현해 내는 색상이 다름 아닌 쪽빛이기 때문이다. 염색장이란 천연염료로 옷감을 물들이는 전통 기술을 지닌 장인을 말한다.
예부터 우리나라는 염색 문화가 발달했다. ‘삼국지’(오환선비 동이전 제30권) 부여조에는 부여족이 자수를 놓은 비단옷을 입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당시 실을 물들이고 염색한 옷을 입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라 때에는 염관에 11인의 염장(染匠)을 두고, 염곡전(染谷典)에서 염료 식물의 재배와 수확 등을 관장하도록 했다. 고구려의 염직 문화는 주, 적, 황, 녹청 등 다양한 색채로 웅장하고 화려하게 표현된 당시의 고분 벽화에서도 확인된다.
고려 때에는 도염서에 전문 장인인 염료공과 염색공을 두고 염색을 담당하게 하였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경공장에 청염장, 홍염장, 황단장 등 염색 장인을 색깔별로 분업화시켜 염색 기술이 보다 전문화·고도화됐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국가 관청에서 관리하던 염색 기술이 민간 수공업으로 퍼지면서 가내 비법으로 다양한 전통 염색이 전수, 발달됐다.
옷감을 물들이는 데는 천연염료가 사용됐다. 식물, 광물, 동물 등에서 채취한 원료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약간의 가공을 통해 만든 염료를 썼다. 전통 염색은 원료, 염료 등에 따라 여러 종류로 구분되는데, 그중에서 ‘쪽염색’은 염색 과정이 매우 어렵고 까다로워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분야로 꼽힌다.
쪽염색이란 ‘쪽’이라는 식물에서 추출한 염료를 가지고 옷감 등을 물들이는 염색 기술이다. 특히 쪽빛을 면에 입히는 작업은 여간 어렵지 않아 오래전부터 쪽염색이 귀하게 여겨졌다. 고려시대에는 쪽빛을 ‘천년의 빛깔’이라고 하였고, 조선 초 태종 시절에는 경천사상으로 인해 하늘빛을 물들이는 쪽염색을 많이 하기도 했다. 화가들이 쪽 염료로 그림을 그릴 정도였는데, 프랑스 기메 박물관에 소장된 조선시대의 ‘화조도 병풍’에는 꽃과 새가 쪽빛으로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사실상 쪽염색은 한해살이풀인 쪽을 재배해 염료를 채취하는 작업으로 시작된다. 팔월 초순경 60~70cm 정도 자란 쪽을 베어 물이 담긴 항아리에 넣고 삭힌다. 쪽을 담은 지 2일쯤 지나면 쪽대 밑에 우러난 초록색 물이 보이는데, 여기에 굴·조개 껍질을 구워 만든 석회를 넣으면 색소 앙금이 가라앉으면서 ‘침전쪽’이 생긴다.
침전쪽에 잿물을 넣고 다시 7~10일 동안 발효시키면 색소와 석회가 분리되면서 거품이 생긴다. 이 과정을 ‘꽃물 만들기’라고 하며, 여기서 분리된 색소를 염료 물감으로 사용하게 된다.
옷감이나 천에 쪽물을 들이는 과정에도 정성과 인내가 필요하다. 꽃물이 마련되면 우선 옷감을 ‘정련’한다. 정련 작업은 잿물에 옷감을 넣어 삶아, 천을 짤 때 사용했던 호료나 기름때를 빼고 염색이 고르게 되도록 섬유 올과 올 사이의 모공을 넓혀주는 과정이다. 정련한 옷감을 물에 적신 뒤 쪽물에 차례차례 담가 넣고 다시 전체를 들추어가며 골고루 물이 잘 들도록 착색시킨다. 착색 후 옷감을 건조시키고 다시 물들이는 작업을 최소 8회 이상 반복해야 진한 쪽색을 얻을 수 있다.
면 등의 옷감을 처음 꽃물에 넣으면 연녹색을 띠었다가 공기 중에 펴면 녹색, 파랑으로 변화해간다. 옛 문헌에서는 쪽염색으로 물들이면 나타나는 색깔을 벽색, 청색, 아청색, 남색, 갈매색, 검푸른색, 반물색, 심청색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쪽빛은 한마디로 푸른색 그 너머의 빛깔까지 아우르는 색깔이다. 쪽빛으로 물든 천이 때론 신비롭고 때론 청아하며 또 때론 소박하게 비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염색이 끝나면 맑은 물에서 염색된 천을 반복해서 씻어 잿물을 완전히 빼서 건조시킨다. 이렇게 염색한 쪽물은 옷이 훼손될 때까지 탈색되지 않는다. 명주나 무명, 면일 경우에는 염색된 천을 다듬이질하여 보관한다.
전통 염색은 19세기 중반 합성염료가 출현하고 근대화 이후에 화학 염색이 급격히 도입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한때 중단되기도 했던 쪽염색은 1970년대 후반 몇몇 장인들의 노력으로 그 맥이 되살아났다. 2001년 함께 초대 염색장으로 인정받은 고 윤병운 선생과 현 기능보유자이기도 한 정관채 선생은 모두 전남 나주에서 쪽염색을 가업으로 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한평생 쪽밭을 일구고 전통 염색을 계승, 발전시키는 데 힘써온 명인이다.
자료 협조=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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