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성은 자신이 갱년기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우울증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갱년기의 주된 원인은 ‘성호르몬의 감소’라고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40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서서히 하락하기 시작하며, 평균적으로 1년에 1%씩 감소한다. 이런 이유에서 실제 60~80대 남성들의 20%는 남성호르몬이 부족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호르몬 수치가 감소하는 속도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어떤 남성들의 경우에는 이미 30~40대의 이른 나이에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급격히 떨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남성 갱년기’라고 명확하게 정의내릴 수 있는 연령대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남성 갱년기 증상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남성 갱년기 증상은 여성들이 겪는 갱년기 증상과 흡사하다. ‘호르몬 센터 뮌헨’의 설립자이자 내분비학자인 알렉산더 룀믈러는 50대 이상의 여성들이 찾아와서 상담을 할 때마다 이런 말을 종종 듣는다고 말한다. “요즘 들어 남편이 내가 갱년기 때 겪었던 증상과 똑같은 증상을 겪고 있어요.”
남성 갱년기 증상으로는 관절 및 근육통, 근무력증과 함께 몸에 별다른 이상이 없는데도 갑자기 열이 나거나 땀이 쏟아지는 발한 증상이 있다. 또한 수면장애, 집중력 저하, 피로감, 무기력증, 우울, 불안감 등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기도 한다. 신경이 예민해지거나 심장 박동수가 증가하는 한편 수염이 듬성듬성 자라거나 피부가 건조해지고 예민해지기도 한다. 또한 성기능 장애를 호소하거나 성욕이 감퇴하기 때문에 부부관계도 뜸해진다.
문제는 이런 증상이 나타나도 스스로 갱년기라고 생각하는 남성들이 드물다는 데 있다. 룀믈러는 “남성들은 보통 그런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단지 직장이나 일상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여긴다”면서 “많은 남성들이 자신이 갱년기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이런 갱년기 증상을 우울증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실제 한 여성은 70세인 자신의 남편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생각하고 요양원에 입원시켰지만 훗날 갱년기 진단을 받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호르몬 수치를 측정한 결과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매우 낮게 나왔던 것. 말하자면 가족들은 물론 전문의들 역시 우울 증상을 호르몬과 연관 지어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종의 ‘오진’이었던 셈이다. 결국 3개월 동안 호르몬 보충 요법을 받았던 그 남편은 다시 건강을 되찾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에 ‘뮌헨 호르몬 센터’의 외르크 푸흐타 남성호르몬 임상전문의는 “40세가 넘으면 남성들도 1~2년에 한 번씩 호르몬 수치를 주의 깊게 측정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무기력한 기분이 들 경우에는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성들이 갱년기 증상을 무시하고 지나가는 또 다른 이유에 대해 울름의 호르스트 호무스 비뇨기과 전문의는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산부인과를 주기적으로 찾지만, 남성들은 남성과 전문의를 찾지 않는다는 데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처럼 자신이 갱년기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않을 경우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 보통 갱년기인 경우 실시되는 치료법으로는 ‘호르몬 보충 요법’이 있다. 피부에 젤을 바르거나 주사를 맞는 방법 등이 있으며, 이 가운데 가장 간편한 방법은 데포 주사(약물이 체내에 장시간 방출되도록 하는 피하 또는 근육 주사)가 있다. 데포 주사는 10~12주마다 한 번씩 주사를 맞기 때문에 번거롭지 않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호르몬 보충 요법을 받아야 하는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어느 정도일까. 현재 국제전문협회는 혈중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8nmol/ℓ이하일 경우 호르몬 보충 요법을 권장하고 있으며, 정상적인 호르몬 수치는 12~35nmo/ℓ다.
한편 남성들에게 테스토스테론 수치만큼 중요한 것은 여성호르몬으로 알려져 있는 에스트로겐이다. 룀믈러는 “많은 사람들이 남성은 여성에 비해 에스트로겐을 극히 일부만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라며 “젊은 남성들의 경우에는 젊은 여성들과 에스트로겐 수치가 거의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에스트로겐 수치가 급격히 낮아질 경우에는 열감이 느껴지거나 불안감을 느끼며, 기분이 요동을 친다. 룀믈러는 “특히 심혈관계 질환뿐만 아니라 발기가 잘 안 되는 것 역시 에스트로겐 수치와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에도 호르몬 보충 요법으로 호르몬 수치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이밖에도 부신에서 생성되는 생식 호르몬인 DHEA와 성장호르몬이 부족할 경우에도 남성 갱년기가 시작될 수 있다. 신체 내에서 남성호르몬으로 전환되는 DHEA는 20대에 최고로 생성되다가 나이가 들면서 점차 감소하며, 70~80대에는 10~20%만 생성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갱년기가 시작되는 것이 유전적인 문제일 수 있다는 전문가들도 있다. 푸흐타는 “남자건 여자건 언제 갱년기가 시작되는지는 유전자가 대부분 결정한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30대 초반의 남성의 경우 건강한 생활방식과 정상 체중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게 나올 경우 이는 유전자 때문일 수 있다.
한편 호르몬 보충 요법을 실시할 경우에는 ‘과연 전립선암 발병 확률이 높아지느냐’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가 진행 중이며, 이렇다 할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둘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하는 라인홀트 셰퍼 비뇨기과 전문의는 “테스토스테론 수치와 전립선암이 관계가 있다면 아마 모든 20대의 젊은 남성들이 위험군에 속할 것이다. 왜냐하면 남성 호르몬 수치가 가장 높은 시기가 바로 20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