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1일부터 시행, 유치경쟁 막 올라…ETF는 증권사, 수수료 경쟁은 자본력 갖춘 은행이 유리
#중도해지 수수료 없이 그대로 이전 가능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는 퇴직연금 가입자가 보유하고 있는 상품을 그대로 다른 금융사로 옮길 수 있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시행 이전에는 퇴직연금 사업자를 바꾸려면 운용 중인 상품을 매도 및 해지하거나 만기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펀드 환매 후 재매수 과정에서 금융시장 상황 변화로 손실이 생길 가능성이 있고 상품 중도 해지에 따른 비용이 발생했는데, 실물이전 제도 시행 이후에는 가입자가 부담하는 손실이 줄어드는 셈이다.
11월 6일 기준 총 44개 퇴직연금사업자 중 37개사가 실물이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BNK부산은행·BNK경남은행·삼성생명·하나증권은 차세대 시스템 구축, 광주은행·iM(아이엠)은행·iM증권은 전산시스템 구축 및 테스트 지연을 이유로 추후 서비스를 개시한다.
실물이전을 할 때에는 동일한 제도 내에서만 이전이 가능하다. 확정급여형(DB)은 확정급여형으로만, 확정기여형(DC)은 확정기여형으로만, IRP(개인형 퇴직연금)는 IRP로만 이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가운데 개인이 갈아탈 수 있는 건 운용주체가 근로자인 확정기여형과 IRP이다.
특정금전신탁 형태의 원리금보장상품(예금, GIC[신탁제공형], ELB[주가 연계 파생 결합사채], DLB[기타파생 결합사채] 등), 공모펀드(머니마켓펀드 제외), ETF 등이 이전 대상이다. 이관회사와 수관회사가 동일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면 실물이전이 가능하다. 보험계약 형태의 퇴직연금(자산관리) 계약, 디폴트옵션 상품, 사용자가 운용·자산관리업무를 각각 다른 사업자로 지정한 언번들형 계약 등의 경우는 현금화를 해야만 타 금융사로 이전이 가능하다.
보험사는 실물이전 대상이 아닌 보험형 자산관리계약이 적립금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의 수혜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생명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 퇴직연금 중에서 신탁계약만 현물이전이 가능하다”며 “생명보험사 중에서는 삼성생명이 신탁계약 비중이 압도적이지만, 차세대 전산시스템 구축 문제로 실물이전이 내년 5월부터 가능하기 때문에 제도의 효과는 그 이후에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은행과 증권사, 어디가 유리할까
결과적으로 퇴직연금 유치 경쟁은 은행과 증권사 간 구도로 형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ETF 부문에서는 증권사가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은행·보험사에 비해 증권사가 제공하는 ETF 상품이 다양하다. 은행 퇴직연금 계좌에서 매수할 수 있는 ETF 상품은 대략 100~150개이지만, 증권사에서는 600~700개가량이다. 또 은행·보험사 퇴직연금 계좌로는 ETF 실시간 거래가 불가능하지만 증권사에서는 가능하다는 점도 이점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펀드 같은 투자 상품은 증권사가 전문적으로 취급해왔기 때문에 관련 수요가 증권사로 쏠릴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다”며 “동종업계 내에서도 퇴직연금 관리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용자들은 이번 실물이전 제도를 계기로 다른 증권사로 옮기는 게 더 수월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ETF 등 투자 상품을 다변화하려고 노력하지만, 증권사에 매료된 고객이 이탈하는 우려가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리스크를 원치 않는 고객이 있을 수 있고 결과적으로 수익률이 얼마냐가 중요할 텐데, 장기적으로 안전하게 자산 관리를 하면서 수익을 낸다는 점을 강조할 것 같다”고 말했다.
운용·자산관리 수수료, 펀드 총비용 등 퇴직연금 수수료가 얼마나 되는지도 선택에 영향을 미칠 요인으로 꼽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총비용부담률은 은행이 0.412%로 가장 높았다. 생명보험은 0.333%, 증권사는 0.325%, 손해보험사는 0.306%이었다. 예를 들어, 퇴직연금 계좌에 들어간 돈이 1억 원이고, 퇴직연금 수수료율이 연 0.3%라면 매해 30만 원을 금융사에 지급해야 한다. 금융사마다 수수료가 몇 십만 원 차이가 생길 수 있는 셈이다.
앞서의 은행업계 관계자는 “금융사마다 수수료가 다르지만, 수익률도 다르다”며 “수수료, 비용 등을 합친 실수익이 얼마인지를 고객들이 따져본 뒤 실물이전 여부를 결정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앞서의 증권업계 관계자도 “증권사들의 퇴직연금 수수료는 이미 낮은 상황”이라며 “대다수의 증권사는 수수료 인하로 경쟁하기보다는 실물이전 프로모션 등으로 경쟁하고 있다”고 했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확정기여형이나 IRP 계좌 이용자는 수익률이 높은 증권사로 이전할 가능성이 크지만 개인마다 투자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머니무브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물론 자본 규모가 증권사, 보험사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은행이 수수료를 더 낮출 수 있는 여력이 있다”며 “자본력이 다소 떨어지는 증권사가 무한정 수수료를 낮출 수 없기에 고객 유치 측면에서는 은행이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노영현 기자 nog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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