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현 회장 | ||
‘직급/상무 성명/김희재 생년월일/196005×× 조직/미국본사 학력/이화여자 전공/기타.’
‘김희재 상무’는 다름 아닌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부인이다. 재계 15위의 재벌 총수 사모님이 남편 회사에 임원으로 이름을 올리는 건 흔치 않는 경우. 그 내막을 추적했다.
이재현 회장의 부인 김희재 씨는 지금껏 ‘평범한 결혼, 조용한 내조 스타일’로 언론 등에 알려져 왔다. 이 회장과 김 씨는 동갑내기로 대학 시절 미팅을 통해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장은 고려대학교 법대, 김 씨는 이화여자대학교 미대 장식미술과를 졸업했다. 김 씨의 모친은 ‘김치박사’로 유명한 김만조 씨. CJ의 김치 개발에도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래도 재벌가와는 격이 다르다면 다른 ‘평범한’ 집안으로 볼 수 있다.
결혼도 이 회장이 씨티은행 행원 시절 했다. 이 회장이 대학 졸업 후 “누구 덕을 본다는 이야기를 듣기 싫다”며 1983년 씨티은행에 취직했다가 할아버지 이병철 회장의 “왜 남의 집 살이를 시키느냐”는 불호령에 2년 만에 제일제당으로 입사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부인 김 씨는 결혼 후 지금껏 눈에 띄지 않는 내조를 해왔다. 신혼 때부터 시할머니 박두을 씨가 별세할 때까지 모셨고 최근까지도 장충동 집에서 시어머니 손복남 씨와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 회장이 CJ의 전신인 제일제당 임원으로 경영수업을 받던 시절, 이 회장은 밤늦게 집으로 직원들을 데려와 2차 술자리를 갖던 적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도 김 씨는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뒷바라지를 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 ‘조용한 내조자’였던 김 씨가 지난해 CJ 미국 본사(CJ아메리카·CJ America, Inc.) 상무에 오른 것이다.
CJ에 따르면 CJ아메리카는 1978년 LA에서 CJ의 판매지점으로 시작해 1년 후인 1979년 본사를 뉴욕으로 옮기면서 그 기능이 곡물 원료나 원당 등을 수입하는 데까지 영역을 넓히며 북미지역에서 CJ의 핵심역량을 확대해 가는 데 많은 역할을 담당해 온 해외 주력 계열사. 2003년 다시 LA로 본사를 이전한 뒤 현재 북미는 물론 중남미, 동남아시아, 중동 및 남아프리카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CJ아메리카의 판매부분은 식품, 제약, 바이오 등의 200여 개 이상의 CJ 제품과 다른 회사 제품까지 이들 시장에 소개하여 거래를 추진하고 있다. CJ아메리카는 이러한 판매 기능 외에도 식품과 식품 서비스, 제약, 바이오,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홈쇼핑, 물류 등의 CJ의 핵심역량과 관련된 북미 지역의 트렌드와 정보를 수집, 제공하여 신 시장 개척 및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한국 내 계열사들을 지원하고 있다.
CJ아메리카는 뚜레주르 브랜드를 앞세워 제빵사업(CJ베이커리)에도 나서고 있다. 2006년 10월 현재 LA 코리아타운과 LA 인근지역에서 4개 점포를 운영 중이다. CJ아메리카는 인터넷 사업(CJ인터넷)에도 진출,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해외 계열사에서 주부에서 임원으로 등극한 ‘김희재 상무’의 역할은 뭘까. 미술을 전공한 김 씨는 그동안 경영에는 관여해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그 역할에 대한 궁금증은 더 커진다. 김 씨는 지난 1월 초 출국한 상태고 지난해에도 10개월가량 해외에 머물렀다. 기자는 지난 10일 오전(한국시각) ‘김 상무’에게 직접 설명을 듣기 위해 미국 LA의 CJ 아메리카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김희재 상무’를 찾았지만 전화를 받은 직원으로부터 “그런 분은 안 계신다”는 말만 돌아왔다.
그럼 어떻게 된 일일까. 이에 대해 CJ의 홍보 관계자는 “미국 본사라는 개념은 없다. 사모님이 해외에 나가신 건 꽤 됐지만 1년 전쯤 임원으로 등재됐고 현재 CJ그룹 계열사인 CJ개발의 디자인 자문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CJ개발은 제주도의 나인브릿지 골프장을 소유하고 있는 종합 건설회사다. 설명대로라면 김 씨는 미국에 머무르며 미국 본사에 임원으로 이름을 올려놓고 한국에 있는 계열사를 위해 일한다는 말이 된다. 그렇게 못하라는 법은 없지만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이와 관련해 이 회장의 가정사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 회장의 딸 경후 씨(23)와 아들 선호 군(18)은 모두 미국 유학 중이다. 여기에 부인 김 씨도 미국에 장기체류했다. 게다가 세 명은 지난 1월 초 모두 비슷한 시기에 출국했다. 지난해 자녀들과 비슷하게 맞물리는 해외 일정을 보였다. 김 씨가 유학 중인 두 자녀와 미국에 함께 머무르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한 셈이다.
통상적으로 대기업의 해외 주재원(임원급)에겐 주택과 함께 억대인 국내 연봉의 1.5배(체재비 포함)가 지급된다. CJ 측에 따르면 김 씨가 관광리조트 사업을 하는 CJ개발의 일을 하는 것인지, 공시대로 CJ아메리카의 일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두 곳 모두의 일을 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때문에 일각에선 김 씨의 CJ 미국 법인 임원 등재가 유학 중인 자제들과 뒷바라지 하는 사모님을 위해 그룹 차원에서 ‘생활비 지원’ 등 뒷바라지를 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없지 않다.
‘김희재 상무’의 등장에 대해서 다른 시각도 있다. 이 회장의 누나 이미경 부회장을 주목하기도 한다. 이 회장은 CJ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CJ(주) 지분 19.73%를 보유하고 있어 안정적 지배구조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누나인 이 부회장의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99년 엔터테인먼트 사업 초기 투자 실패가 거듭되면서 해외 파견 형식으로 국내 무대에서 사라졌던 이 부회장은 2005년 CJ엔터테인먼트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전격적으로 국내 경영현장에 컴백했다. 사실 이 부회장은 지난 1995년 CJ의 이사 자격으로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인 드림웍스 설립을 주도해 CJ의 지분 참여를 성공시키는 등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그의 국내 복귀에는 이 회장의 모친인 손복남 씨의 의중이 컸다는 얘기가 흘러나올 정도로 재계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문제는 CJ가 엔터테인먼트 사업 분야 비중이 그룹의 3대 축으로 커지면서 이 회장과 ‘쌍두마차’로 올라섰다는 점이다. 때문에 재계 일각에선 남매 간 ‘계열분리설’ 등 섣부른 추측까지 회자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CJ 측은 “견제카드니, 계열분리설이니 얘기는 처음 듣는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어쨌거나 재벌 총수 사모님이 남편 회사에 상무로 등극해 한동안 ‘말들’이 많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