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그룹 60주년 기념행사를 각각 개최한 김영대 대성 회장(왼쪽)과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날 오후 김영대 회장은 창업주이자 부친인 고 김수근 명예회장 전기 <가보니 길이 있더라> 출판기념회를 가졌고 김영훈 회장은 김 명예회장의 회고록 <은혜 위의 은혜>를 출간했다. 김영대 김영훈 회장은 김 명예회장의 장남과 삼남. 언뜻 형제간 역할분담을 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들은 현재 누구보다 치열한 ‘정통성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지난 2000년 10월 말, 김수근 당시 대성그룹 회장은 경영권 이양을 며칠 앞두고 영대 영민 영훈, 세 아들들을 회장실로 불러들였다. 장남 영대에겐 모기업인 대성산업을, 차남 영민에겐 서울도시가스, 삼남 영훈에겐 대구도시가스를 넘겼다. 그러면서 삼형제의 우애를 고려해 형이나 동생이 맡은 기업에는 나머지 형제를 이사로 등재되도록 조치했다.
1942년생인 장남 영대는 경북사대부고와 서울대 행정학과를 나와 서울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1970년 대성산업 이사로 시작해 30년간 경영수업을 받으며 그룹 부회장에 올랐다. 차남 영민(1945년생)은 서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미국 유학 후 79년 대성탄좌개발에서 일을 시작해 해외사업을 담당(사장)하고 있었다. 삼남 영훈(1952년생)도 경기고와 서울대 행정학과를 거쳐 미국 미시간대에서 법학과 경영학 석사를, 하버드대에서 신학 석사를 땄다. 경영수업은 88년 대성산업 상무로 시작해 그룹 기획조정실 사장을 맡고 있었다.
자식농사가 너무 잘된 게 문제였을까. 그렇게 계열분리를 끝내고 4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김 명예회장이 사망한 뒤 ‘황금분할’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장남인 김영대 회장의 대성산업이 보유한 서울도시가스 지분(62.94%)과 대구도시가스 지분(26.3%)의 정리가 문제였다.
김영대 회장 측은 “경영권 프리미엄과 자산가치를 감안해 시가 이상의 가격에 팔아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영민 영훈 두 동생은 “즉시 주식을 시가에 팔고 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포기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때 장남 대 차남·삼남으로 편이 갈리며 주식 매수전과 주총 표대결에 이어 법정분쟁으로까지 비화됐다. 3개월가량 지속된 이 분쟁은 결국 원로들의 적극적인 중재를 통해 두 동생들의 주장대로 정리됐다. 그러나 형제간의 골은 패였다. 이후 장남과 삼남 간의 치열한 경쟁은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켜왔다. 특히 ‘대성그룹 회장’ 호칭 문제를 둘러싼 신경전은 유명하다.
김영대 회장 측은 장자이면서 모기업인 대성산업과 함께 당연히 ‘대성그룹 회장’도 물려받아 썼다. 하지만 김영훈 회장 측은 “그룹을 분할, 경영한다는 합의만 있었지 누가 ‘대성그룹 회장’ 명칭을 쓸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면서 ‘대성그룹 회장’으로 가장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쳤다. 일반인들까지 헛갈리게 한 이 문제는 지난 10일 김영대 회장이 ‘그룹’을 떼어내면서 일단락됐다.
김영대 회장의 대성과 김영훈 회장의 대성그룹. 두 기업집단의 사훈은 ‘성실 봉사 진취’로 똑같다. 이는 김수근 명예회장의 경영이념을 계승하겠다는 것. 하지만 실제 경영 스타일은 열 살이라는 나이 차이만큼 다르다. 김영대 회장은 전문화에 방점을 찍은 보수적 스타일인 반면 김영훈 회장은 문화사업 쪽에도 나서는 등 사업 다각화에 힘쓰고 있다.
김영대 회장의 대성은 현재 건설사업부 등 10개 사업부를 두고 있는 대성산업을 비롯, 대성산업가스 대성쎌틱 대성나찌유압공업 한국캠브리지필터 대성계전 등 총 12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대성 측은 지난해 매출이 약 1조 1800억 원이며 순이익은 770억 원이라고 밝힌다. 주력 계열사인 대성산업은 2005년 매출 7984억 원에서 지난해 8328억 원으로 성장했다.
김영대 회장은 올해 해외 유전 개발과 중국 열병합발전소 건설 등 글로벌경영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또한 서울 신도림동 연탄공장부지에 개발 중인 대형 복합타워에 거는 기대도 크다. 연탄 사업을 위해 확보해둔 땅이 부동산 개발의 기폭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큰형님에 맞서는 김영훈 회장의 대성그룹은 대구도시가스 경북도시가스 대구에너지환경 알앤알건설 등 23개 계열사를 이끌고 있다. 주력 계열사인 대구도시가스 매출액은 2005년 4334억 원에서 지난해 5090억 원으로 불어났다.
전경련 문화산업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있는 김영훈 회장은 영화 등 문화산업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그는 지난 87년 설립된 바이넥스트창업투자(옛 대구창업투자)를 통해 <올드보이> <말아톤> <웰컴투동막골> 등 대박 영화에 투자했다. 2006년엔 코리아닷컴을 인수해 문화 콘텐츠 사업에, 시나이미디어를 통해 IT산업에 진출해 있다. 글로리아트레이딩에선 아동복을 생산해 패션업에도 진출했다.
글로벌화도 큰형님에게 뒤지지 않으려 하고 있다. 대성그룹은 몽골의 사막화를 방지하기 위해 태양광과 풍력을 에너지원으로 한 ‘칭기즈칸 테마파크’를 진행 중이다.
“기업이 이익을 못 내면 사회의 죄악이라는 사실을 명심해라.” 김수근 명예회장이 아들들에게 대성그룹을 분리해 물려주면서 한 말이다. 김영대 김영훈 형제의 정통성 전쟁은 결국 누가 기업을 올바르게 크게 키우느냐에 달려있는 듯하다. 룰만 지킨다면 누구에게나 득이 될 만한 경쟁인 것이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