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3년 초 담철곤 회장의 당시 그룹 부회장 승진 축하연. 왼쪽부터 이혜경-현재현 부부, 이관희 씨, 이화경-담철곤 부부. | ||
동양그룹 창업주 고 이양구 회장은 슬하에 혜경(동양메이저 고문), 화경(미디어플렉스 사장) 딸만 둘을 두었다. 한국전쟁 직전 설탕 수입 계약을 하고 전쟁통에도 목숨처럼 간직했던 계약서로 ‘설탕왕’에 오른 이 회장. 그는 당시 얻은 딸들을 보며 제과업에 뛰어들었을 정도로 딸들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다. 딸 가진 부모 마음이야 똑같겠지만 이 회장은 사윗감을 고르는 데 더욱 신중해야 했다. 언젠가 딸들과 함께 동양을 물려받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맏사위는 당시 부산지검의 현재현 검사. 그는 고려대 초대 총장을 지낸 현상윤 씨의 친손자. 이화여대 의대 교수를 역임한 현인섭 씨의 3남 2녀 중 셋째다. 1949년 2월생인 현 회장은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 3학년 재학 중 제12회 사법시험에 붙었다. ‘현 검사’는 1976년 김옥길 전 이화여대 총장 소개로 이양구 회장의 장녀 혜경 씨와 만나 결혼, 동양가로 들어온다. 이듬해인 1977년 검사에서 동양시멘트 이사로, 법조인에서 경영인으로 대변신을 하는데 장인의 경영 참여 요청에 고민을 하다 결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진다.
법조 엘리트 코스를 밟아오던 ‘현 이사’에게 이양구 회장의 경영수업은 혹독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낮에는 함께 현장을 누볐고 밤에는 강의를 들었다. 이어 1981년엔 미국으로 건너가 스탠퍼드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따며 이론무장까지 했다. 현 회장은 83년 동양시멘트 사장, 88년 동양증권 회장을 거쳐 앞서 밝혔듯이 89년 동양그룹 회장에 올랐다.
둘째 사위 담철곤 회장은 1955년 6월생. 그의 선친은 화교 출신으로 대구에서 한의원을 경영했다. 이화경 씨와는 담 회장이 서울로 유학 오면서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로 만나 10년 이상 열애 끝에 1980년 결혼에 골인했다.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마케팅을 공부한 담 회장은 결혼하자마자 동양시멘트에 입사했다가 1년 뒤 동양제과로 회사를 옮겨 구매부장 상무 전무 부사장 등을 차근차근 밟아 89년 사장에 올랐다.
이양구 회장이 타계한 1989년부터 2001년까지는 ‘한 지붕 두 사위’시대. 현 회장은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았지만 시멘트와 금융 부문을 담당했고 담 회장은 제과와 엔터테인먼트 쪽을 맡았다. 때문에 2001년 계열분리는 잡음 없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계열분리는 당시 둘째의 ‘분가’ 필요성에다 미디어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려던 동양제과가 ‘30대 재벌 케이블TV 인수금지’ 조항을 피하기 위해 이뤄졌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계열분리 당시 매출 4조 5000억 원대의 동양그룹과 7000억 원대의 오리온그룹은 엄청난 덩치 차이에도 재계에서는 담 회장 쪽이 유리하다고 점쳤다. 담 회장이 맡은 동양제과(오리온)는 창업 후 지금까지 탄탄한 기업이었다. 게다가 담 회장은 동양제과에서 벌어들인 실탄으로 ‘미래산업’인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덩치를 키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현 회장의 시멘트는 이양구 회장이 인수할 때부터 엄청난 부채 때문에 늘 그룹의 발목을 잡아온 골칫덩이. 99년 시멘트와 건설을 합병, 동양메이저로 다시 태어났지만 재무구조는 더 악화돼 있었다. 당시 부채규모가 1조 7000억 원대에 이르고 실적도 안 좋아 연 900억 원에 가까운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금융부문도 카드 매각은 지지부진하고 외자유치를 추진 중이던 증권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계열분리 5년여가 지난 지금. 사위들의 희비는 다시 엇갈리고 있다.
2005년 매출 1조 6000억 원대로 계열분리 때보다 두 배 넘게 덩치를 키운 오리온그룹. 계열사 수도 13개에서 26개로 늘렸다. 하지만 주력 오리온의 영업이익은 2002년 537억 원에서 지난해 273억 원으로 계속 줄어들었다. 신사업인 엔터테인먼트 분야도 미디어플렉스가 1분기 적자로 돌아선 데다 온미디어의 성적도 부진했다.
반면 동양그룹 매출은 4조 1000억 원대로 덩치는 좀 줄었지만 애물단지였던 동양메이저가 지난해 흑자로 돌아섰다. 금융부문에서도 동양종금증권이 CMA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4조 3000억 원대 업계 최고 잔고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또 법 개정으로 내년쯤 동양생명이 상장되면 그룹 전체가 수혜를 받는다.
이런 자신감 때문일까. 직접 광고에 출연하는 등 적극적인 담 회장과 달리 그동안 조용한 행보를 보여 왔던 현 회장은 지난해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했는가 하면 재벌총수 골프모임을 주최하는 등 대외 활동의 폭을 넓히고 있다.
부부CEO로 함께 경영전선을 지키고 있는 담 회장의 오리온그룹은 최근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뛰고 있다. 우선 오리온은 1분기 영업이익이 117억 원을 기록하는 등 실적이 개선됐다. 또 보유 부동산 개발을 추진, 돌파구로 삼겠다는 복안이다.
동양그룹은 6월 15일 창립 50주년 기념식을 치른다. 동양시멘트 설립일이 기준. 헌데 오리온그룹은 이미 지난해 9월 1일 50주년 행사를 가졌다. 동양제과 설립일(1956년 7월 25일)과 오리온그룹 출범(2001년 9월 1일)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런 미묘한 기류를 ‘경쟁 본격화’로 읽는 건 무리일까.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