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년대 제주를 배경으로 제주에서 나고 자란 ‘요망진(똑똑하고 야무지다라는 뜻의 제주도 방언) 반항아’ 애순과 우직하게 애순만을 바라보는 ‘팔불출 무쇠’ 관식의 삶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담아낸 ‘폭싹 속았수다’에서 아이유는 10대부터 30대까지의 젊은 애순, 그리고 애순의 딸인 금명으로 1인 2역을 맡아 열연했다. 언젠가 시인이 돼 제주도 섬 밖을 나가고자 한 꿈 많은 10대 소녀 애순과, 소꿉친구인 관식과 함께 가정을 꾸려 첫 딸 금명을 비롯한 세 아이의 엄마가 된 30대 애순의 상반돼서 조금 더 서글픈 모습은 ‘호로록 봄’, ‘꽈랑꽈랑 여름’ 두 개의 장에서 그려진다.
“처음에 애순이와 금명이를 한 번 나누고, 애순이의 안에서도 10대부터 30대의 모습을 구분 지으려 했어요. 어떤 장면을 탁 틀어도 ‘지금 애순이는 몇 살이겠네, 언제겠네’라고 이해할 수 있도록 캐릭터가 확실하게 달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면서 또 문소리 선배님이 연기하신 중년의 애순과 맞닿는 지점이 그라데이션처럼 자연스럽게 보였으면 했어요. 아무래도 애순은 ‘본격적인 엄마’지만 동시에 ‘오애순’ 개인으로서 오롯이 서 있는 모습도 함께 표현해야 했거든요. 그저 금명이 엄마가 아니라 ‘애순이는 애순이’라고 보일 수 있게 표현하는 게 저에게 있어 가장 큰 숙제였던 것 같아요.”

그토록 자기를 사랑한 엄마, 아빠한테 어쩜 저렇게 못되게 말을 할 수 있는지. 초반에 금명이 등장할 때마다 시청자들은 철없는 딸에게 분노하면서도 동시에 그 모습에서 그간 부모님을 소홀히 대했던 스스로를 읽어내며 멋쩍어 하기도 했다. 이런 반응을 모르지 않았던 아이유는 “제가 봐도 금명이는 너무 못됐다”라며 손을 내저었다.
“사실 촬영 초반엔 표현을 조금 덜어내서 너무 많이 못돼 보이지 않게끔 사리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이렇게 못되게 말해도 돼요? 애순이가 금명이를 어떻게 키웠는데…’ 그러면 감독님은 ‘더 해야 해!’ 하셨죠(웃음). 모두들 자라는 과정에서 얼마나 부모님 가슴에 대못 박는 말을 많이 하며 컸겠어요? 그리고 아직 스무 살인 금명이 입장에선 당연히 그렇게 말할 수 있고, 앞으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려면 더 못되게 굴어야 한다는 게 감독님의 말씀이었어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금명이가 못된 말을 하고 나면 반드시 내레이션이 붙어요. 나중에 엄마와 아빠를 모두 보낸 뒤 금명이가 회상하며 엄마의 인생을 되짚는 건데, 그걸 모두 합쳐서 보면 금명이를 이해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시청자 입장에선 그냥 금명이가 읽는 이야기로만 들리지만, 16회까지 다 보고 나면 엄마 아빠를 모두 보낸 뒤 50대가 된 금명이가 하는 말이란 걸 알 수 있어요. 아빠 관식이 죽기 전 이야기해준 엄마 애순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읽는 건데, 우리가 알고 있는 어린 금명이의 목소리면 안 되고 미묘한 무게감을 가지고 있어야 했어요. 사실 워낙 양이 많다 보니 녹음하면서 어떤 신에선 살짝 기교를 부리거나 조금 장난스럽게 하고 싶은 부분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감독님이 딱 잡아주셨죠. ‘지금 금명이가 50대 이후라는 거 기억하고 계시죠?’ 그럼 저는 ‘죄송합니다!’ 그러고 다시 녹음하고(웃음).”
‘폭싹 속았수다’의 전 에피소드가 모두 공개되고 조금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아이유를 향해 대중들은 여전히 ‘애순아!’를 외치고 있었다. 그만큼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작품과 캐릭터를 만들어낸 데에는 배우의 ‘혼을 깎는’ 노력이 있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작품 촬영 기간이 가수 활동 기간과 맞물리면서 그는 애순과 금명, 그리고 아이유를 오가면서 연기도 했고, 앨범도 냈으며, 콘서트까지 준비했다. “지금 하라면 다시는 못할 것 같다”며 고개를 흔들면서 아이유는 그토록 치열한 인생의 여름을 뒤로 하고, 이제는 하나씩 거두어나갈 때가 된 것 같다며 웃어보였다.
“연예인으로 계속 활동한 사람으로서 그간의 저를 돌아보면 ‘참 꽈랑꽈랑한 여름이었지’ 싶을 때가 있어요. 그땐 정말 미친 듯이 일했고, 삼일 밤을 새도 다음 날이면 또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지금은 하루 밤만 새도 너무 힘들어서 다시 하라면 못하죠(웃음). 사실 ‘폭싹 속았수다’를 찍을 때도 어떻게 보면 제가 무리했던 거예요. 저라는 연예인의 장점은 꾸준함과 성실함에 있는데 ‘꾸준하지도 못하면 네 장점이 뭐니?’라면서 속으로 스스로의 뺨을 찰싹 때리면서 달렸어요. 20대 때는 그래도 됐지만 이제는 저도 나이를 먹어서 똑같이는 못하고(웃음), 아마 지금의 제 계절은 수확을 앞둔 ‘자락자락 가을’이지 않나 싶어요. 꽈랑꽈랑했던 여름 같지는 않더라도 앞으로 천천히 겨울을 준비하며 수확해 나가는, 그런 시점인 것 같아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